가성비 가심비 최고의 효도 여행
추석을 맞아 시댁에 다녀왔다. 나한테는 시댁이 두 군데인데 지근거리에 시어머니가 사시는 곳이 하나, 다른 하나는 시아버님이 사시는, 차로 4시간이 넘게 걸리는 전남의 어느 섬이다. 이번엔 아버님이 거주하는 그 먼 곳으로 다녀온 것이다.
시어머니는 혼자서 아주 프리하게 지내시어 명절이라고 특별히 하는 행사가 없고, 시아버님이 계신 시댁에는 명절과 제사 행사가 있지만 가게 영업일이라든지 거리가 멀다는 핑계로 매번 찾아뵙지는 않고 대신 1년에 한 번 정도는 방문하려고 노력한다. 이 노력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노력으로 아무도 푸시하지 않는 사항이다. 심지어 시어머니와 J는 뭐 하러 가냐고 투덜댄다.
두 분의 이혼에 아버님의 젊은 시절 과오가 컸기 때문에 J는 아무런 아들로서의 바카라임감은 없고 아버님도 별말할 수가 없다. 당연히 며느리인 내가, 그것도 가부장제의 불합리성을 잘 배우고 자란 내가 그 바카라임감을 느낄 리도 없다. 그래서 결혼 첫 해는 작은아버님의 부인 사랑으로 권유가 있어서 제사도 두어 번 참석했지만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패스하며 지냈다.
그러면서 그간 차례, 성묘도 간소화되었지만 여전히 아버님은 성묘를, 특히 조부모님의 성묘를 중시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1년에 한 번은 아버님이 사시는 곳으로 우리가 찾아가 성묘를 하는 것으로 그래도 유교국가에서 자란 K장녀로서의 불편함을 씻는 것이다.
국민 대이동이 시작되다 보니 고속버스로 왕복 10시간 정도가 걸렸고 가서 만 하루 동안 아버님과 세끼 식사하고 또 3시간 여는 차로 이동하며 조상님들의 묘를 차례로 찾았다. 어떤 묘는 입구에 벌초가 되어 있지 않아 들어가지도 못하고 멀리서 절을 해야 했고 어떤 묘 앞에서는 장대비가 내려 절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도 아버님이 방문하자는 곳을 다 순례하고 서울 가는 버스 시간이 되어 돌아왔다.
투덜대는 J 앞에서 나는 "요즘 매출이 떨어지는데 조상님 은덕 좀 받아야지"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했지만 나도 하루 동안 한 그 의미 모를 지극히 수동적인 시간들에 헛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효도가 별 거 있나. 의미 유무를 따지지 않고 원하는 것을 함께하는 시간을 내 드리는 거지. 비싼 옷, 음식 사드리는 것보다 이게 더 기쁜 일 아닌가. J도 사실은 그걸 아니까, 저도 별수 없는 유교보이기에 투덜대면서도 아버지 하자는 대로 크게 저항 없이 따랐을 것이다.
우리가 저 아래에서 의미 모를 순례를 하고 있는 동안 싱글인 동생은 홀로 부모님 댁에 다녀왔다. 이직을 앞두고 있어 준비할 일도 많고 얼마 전에도 다녀갔지만 명절 되면 또 오길 바라신다며 기꺼이 그곳으로 향했다.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동생은 과거부터 나보다는 훨씬 부모님을 심적, 물적으로 위했다. 부모님 모시고 여행도 몇 번을 다녀온 효녀다.
그런 동생이 돌아와서는 투덜대며 말했다. 하루는 너무 할 일이 없어서 다 같이 앉아 넷플릭스로 드라마 정주행을 했는데 엄마가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며 시청을 했다고 한다.
"갑자기 왜 저렇게 만난 거야?"
"저 배우는 예전에 그 영화 나왔는데... 그때도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드라마 몰입도 깨고 너무 성가셔서 같이 보는 게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 모습이 눈에 훤히 그려졌다. 대단히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딱히 꼭 알아야 할 정보도 아니면서 계속 동생을 향해 묻는 엄마와 점점 짜증 게이지가 올라가는 동생, 그리고 아무것도 안 들린다는 듯 몰입해 있는 아빠의 모습이. 그리고 고망이가 가끔 나에게 분명히 아는 사실에 대해 그리고 궁금해할 만하지 않은 것을 거푸 묻는 모습도 겹쳤다. 이건 그냥 '지금 너랑 있는 게 너무 기쁘다'는 뜻이다. 그래서 동생에게 말해줬다.
아무 걱정거리 없이 그저 가볍고 즐겁게 나누면 되는 드라마 이야기인데 딱 하루, 아니면 딱 한 편만 최대한 맞장구 쳐주고 대답해주라고 두 편째부터는 관두더라도 한 편만 그렇게 하라고 말이다. 가족애도 잔정도 뭣도 없는 내가 효도를 논하는 게 굉장히 어색하지만 늙어가는 부모님에게 애틋한 감정 조금이라도 있다면 하루 정도는 힘내서 효도하자고. 대단한 거 없고 그저 따지지 않고 맞춰주는 거. 그게 가성비 가심비 좋은 효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