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는 쓰러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나는 엄마의 편애를 받았다. 막내에다가 자주 골골거려서 그런지 엄마는 유독 나를 더 챙기셨다. 유치원도 비싼 곳에 보내주셨고, 축구공, 장난감, 스케이트 등 내가 갖고 싶어하는 것은 거의 다 사주셨다. 두드러기가 나면 내 몸을 쓰다듬으시며 다 엄마에게 옮겨오라 말씀하셨고, 좋은 곳을 다녀오시면 그 기운 받으라고 거기 물건을 내게 건네 주셨다. 반친구들과 선생님들까지 다 챙겨주셨고, 학교 갔다 오면 웃으면서 꽉 안아주신 적도 많았으며, 언니들은 안 시킨 고액 과외도 시켜주셨다. 질투가 날 법도 한 언니들은 싫은 티 한번 내지 않았고, 툭하면 욱하고 제멋대로였던 나를 오히려 잘 챙겨주고 포용해주었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다. 아빠는 자식들에게 큰소리 한 번 치신 적 없는 자상한 분이셨지만 엄마는 달랐다. 엄마 사전에 오냐오냐는 없었다. 나는 무릎 꿇고 손들고 있거나 빗자루나 파리채 등 종류도 다양한 매로 맞았다. 엄마는 예의없고 버릇없는 것을 유독 싫어하셔서 막무가내였던 나를 그냥 넘어가시지 않았고, 언니들이랑 싸우면 듣지도 않고 나만 혼내셨다. 그 당시엔 억울했지만 다 내가 잘못한 거였다. 요즘에도 한 번씩 옛날 얘기가 나오면 내가 웃으면서 하는 말이 있다. 그 때 내가 더 맞았어야 했다고. 말로만 키워서는 안 될 인간이였단 걸 내가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어릴 때 엄마가 한 번 때린 적이 있어서 아직도 엄마가 싫다는 동료가 있었다. 그 직원은 결혼을 하고 애까지 있음에도 그 상처받은 마음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기는 사소한 말에도 방어기제가 발동하고 쉽게 상처받으며 자존감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많이 얻어터진 전력이 있는 나로서는 그게 왜 상처가 되노 싶었지만 더 들어보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직원은 딱 한 번 맞았지만 평생 사랑받는단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의 환경은 평생을 뒤흔들어 놓을 만큼 파급력이 크다. 그래서 정서적 불안과 결핍을 지닌 사람들은 유년 시절의 기억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내가 많이 맞았어도 아직까지 엄마 얼굴을 부비고 엄마 엄마거리는 이유는 엄마의 진심어린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방황을 하고 엇나갈 때도 부모님의 관심 덕에 정신차릴 수 있었고, 자신있고 용기있고 안정되게 살아온 것 역시 모두 가족이라는 뿌리가 묵묵히 지탱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에 의미 없이 찾아오는 인연은 없다. 특히 가족은 내게 사랑을 가르쳐주고 삶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 각별한 존재다. 그렇기에 겸손과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 주기적으로 되새기곤 한다. 망나니같던 내가, 훈계없는 애정과 애정없는 훈계 속에 자랐다면 여전히 미숙한 인간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런 내가 효녀로 소문 난 이유 역시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잘 크게 해주신 부모님 덕이 크다. 효도는 부모로부터 나오고 효도의 완성은 은혜를 잊지 않는 자식이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