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와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평론
이전의 칼럼에서는 《오디세이》의 내용만을 예측하는 글을 썼지만, 이번에 새로 개봉한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까지 보고 나서는 《오디세이》의 주제인 ‘영웅’이 비단 크리스토퍼 놀란만의 메시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놀란의 《오디세이》는 예상대로 오디세우스의 자유의지와 인간 문명에 대한 진단을 다루었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병사들을 모두 살려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무모한 만용과 그리스인의 관습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오만한 아집 때문에 키클롭스에서부터 칼립소의 섬에 다다를 때까지 그의 계획은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다.
그 지혜롭다는 오디세우스였지만 전능한 신들의 형벌과 분노 앞에서는 무력했다. 그는 전우들과 부하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고 그들의 원망 앞에서 침묵해야 했다. 결국 아테나 여신이 이르는 대로 자신의 고집을 내려놓고 포세이돈에게 속죄하기 위해 뗏목 하나에 몸을 맡긴 채 이타카로 돌아온다. 모든 것을 운명에 내맡긴 채.
아테나는 오디세우스에게 모든 것을 자기 자신 홀로 짊어질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한편으로 잔인하게 트로이를 멸망시킨 전쟁조차 그 자체로 정당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렇게 흘러갔을 뿐이었음을 말한다. 그곳의 신전에서 살해된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난 아테나는 인간은 선택할 수는 있어도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고 말한다.
영웅으로서 오디세우스는 그 이전에 인간이 되어야만 했다. 시련을 통해 그는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타카에 돌아온 오디세우스를 그저 하나의 ‘홈커밍 쇼’를 마친 영웅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트로이 전쟁 이후의 오디세우스는 돌아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날로 나아가기 위해 온 것이다. 서쪽 땅으로 추방되어 전우들을 기리기 위해서.
조지프 캠벨은 『천의 얼굴을 한 영웅』에서 고래의 배 속에 들어가는 영웅과 예언자들의 이야기를 설명하며 문턱의 통과를 일종의 자기 소멸이라고 말한다. 신전으로 들어간 숭배자의 세속적 성격이 문밖에 남겨지듯 영웅 역시 자신이 지금까지 붙들어온 자아를 그대로 가지고 문턱을 넘을 수는 없다.
그래서 고래의 배는 단순한 시련의 장소가 아니다. 영웅이 상징적으로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장소에 가깝다. 무덤이면서 동시에 자궁인 셈이다. 그 안에서 사라지는 것은 영웅의 육체라기보다 자신이 누구라고 믿어온 오래된 자아다.
오디세우스에게 고래의 배는 특정한 한 장소라기보다 트로이에서 이타카까지 이어지는 귀환의 여정 전체였을 것이다. 트로이의 승장, 지혜로운 왕, 자신의 판단으로 부하들을 끝까지 이끌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은 그 여정 속에서 계속 실패한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더 완벽한 계략이 아니라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역시 제목에 걸맞게 영웅의 변모를 다룬다. 영화 시작 직후 등장하는 빈 커피컵 속에는 스파이더맨, 아니 피터 파커의 편지가 들어 있다. 차원의 일그러짐을 막기 위해 스스로의 존재를 모두가 잊게 만든 대가였다. 이제는 자신을 기억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옛 연인 MJ에게 보내는 애틋한 편지. 이것이 영화 내내 인간 피터 파커가 겪는 외로움의 정체다.
피터는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영웅의 삶과 정체성에 집착한다. 하지만 때아닌 거미 인간의 2차 성장으로 충동성과 폭력성이 짙어진 스파이더맨은 자신의 신체적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억제기까지 만들어야 할 정도로 힘들어한다.
그런 피터가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외로움을 이겨내는 계기는 악역이자 희생자인 진 그레이였다. 진 그레이는 뮤턴트 중에서도 사람을 염동력으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는데, 그 능력 때문에 부모에게 버림받고 같은 능력을 지닌 언니마저 정부 조직 데미지 컨트롤의 실험체가 되어 죽는다.
홀로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복수를 기다려온 진 그레이에게 피터 파커는 메이 숙모가 돌아가시기 전 남겼던 기억을 보여주며 말한다. 세상은 혼란스럽고 두려울 것이며 사람들은 너를 이용하려 들지도 모르지만, 세상에는 분명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너는 아무런 조건 없이 그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그 말은 진 그레이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었다.
진 그레이 대신 날아온 총알에 맞아 중상을 입은 스파이더맨이 다시 일어났을 때, 뉴욕의 수많은 시민들이 자신을 응원하는 모습을 본다. 인간 피터 파커는 그제야 자신 또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피터에게 고래의 배는 모두에게 잊힌 뒤 홀로 남겨진 세계였다. 그는 인간 피터 파커의 삶을 버리고 스파이더맨이라는 정체성만을 남기려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없앤 자리에 영웅만 남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스파이더맨이라는 정체성까지 함께 흔들렸다.
《오디세이》와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가 보여주는 것은 결국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홀로 짊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영웅일지라도 자신의 과오와 바카라임을 마주했을 때 나약함을 인정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청할 수 있다.
캠벨에게 자아에 대한 집착이 소멸한 영웅은 현상 세계의 대립을 통과하고 돌아온다. 그러나 그 귀환은 원래 자리로의 복귀가 아니다. 떠났던 장소로 돌아오더라도 돌아온 사람은 떠나기 전의 사람과 같을 수 없다.
오디세우스도, 피터 파커도 이전보다 완전한 존재가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누구든지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 하나의 영웅적 원형이자 행위자다. 물론 우리가 오디세우스나 스파이더맨처럼 세상을 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더 이상 이전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순간은 찾아온다. 그때 우리는 각자의 고래의 배를 지나간다.피터 파커처럼 천의 얼굴 중 한 사람으로서 죽음과 부활의 변증법을 이어가며, 사랑하고 사랑받아온 사람들과 함께 그 길을 걸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