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라는 단어에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여러 가지 이미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인간을 압도하는 대자연의 모습에서 숭고를 느끼곤 한다. 현대미술 중에서는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 숭고미에 닿아 있다고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포스트모던 숭고’라는 미학 용어에 대해 알아보면서 이것이 어떻게 ‘숭고’와 어떻게 같고 다른지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먼저 ‘숭고(Sublime)’는 임마누엘 칸트에게서 온 것으로, 인간의 상상력 및 지각 능력을 압도하는 거대함과 힘 앞에서 느끼는 미적 감정을 뜻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좌절감(불쾌)을 느끼지만, 이내 그 거대함을 초월하는 인간 내면의 이성과 도덕적 우월성을 자각하며 쾌감을 경험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이러한 칸트의 숭고론을 비판적으로 해석하며 ‘포스트모던 숭고(Postmodern Sublime)’라는 개념을 내세우는데, 거대 서사나 절대적 진리를 해체하고,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파편화된 감각, 결핍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즉, 이성이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것’의 적용 대상을 칸트의 숭고론보다 더욱 확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포스트모던 숭고’를 느낄 수 있는 현대미술 작품 예시를 통해 이 개념에 좀더 다가가보자.
먼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으로 시작해보려 한다. 리히터는 ‘사진-회화’로 잘 알려진 예술가인데, 사진을 그림으로 옮기는 방식을 통해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담아내고 있다. 무언가가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구상과 추상의 중간 단계를 특징으로 한다.
포착하기 어려운 피사체를 보일 듯 말 듯 표현함으로써 흐릿한 흑백 사진의 외양을 흉내내고 있다. 위 작품은 <1977년 10월 18일> 연작 중 하나인데,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그림의 흐릿함은 관객들이 무의식적으로 초점을 맞추기 위해 위치를 조정하도록 강요하는 역할도 하며, ‘포스트모던 숭고’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