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조의 ‘핵’

by와이아트



이승조(1941-1990)는 1960-1980년대 한국 미술계에서 ‘파이프’를 연상시키는 <핵(核, Nucleus)> 연작을 제시하며 추상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한 작가이다. ‘파이프’는 그의 추상회화에 등장하는 원통형의 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style_6305dd6cc5bd8.jpg이승조, <핵 85-21>, 1985. (출처: 국제갤러리)


이승조는 194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해방 시기 가족과 함께 남하했고, 6.25 전쟁 때 부산을 피난을 갔다가 서울에 정착했다. 오산중학교 2학년 시기 미술교사의 눈에 띄어 미술반 활동을 통해 수채화와 유화 기법을 습득했다. 당시 미술교사였던 김창복은 이승조의 실력을 크게 칭찬하면서 정물화의 기본적인 구도 설정과 세밀하면서도 밀도 있는 표현 기법을 전수했다고 한다.


이승조는 스승의 가르침에 부응하여 1959년 제8회 《국전》 서양화 부분에 <굴비>라는 작품을 출품하여 입선하기도 했다. 실제 작품은 남아 있지 않고 도록으로만 확인할 수 있지만 데생과 세심한 명암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느껴진다.


이승조는 1960년 홍익대학교 서양학회에 입학하면서 앵포르멜 회화를 배워 나간다. 앵포르멜은 예술가의 사고와 감정을 표현하는 미술을 추구하는 경향을 뜻하는데, 당시에는 앵포르멜 회화가 주류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이승조 또한 처음에는 앵포르멜 회화를 수용해 나갔다.


* 잠깐! 앵포르멜이란?

: 불어로 ‘비정형(Informel)’을 뜻하는 앵포르멜은 한 마디로 “정형성을 거부한다”라는 의미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새로운 회화운동을 뜻한다. 당시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근본적인 허무감과 좌절감이 팽배해 있던 상황이었는데, 미술계에서도 자발성, 형태의 자유로움, 그리고 실존적 문제를 고민하면서 예술가의 사고와 감정을 표현하는 미술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 주도적인 흐름으로 나타난 것이 앵포르멜이었다.




오리진(Orgin)


이승조는 대학교 3학년 때인 1962, 8명의 동급생들과 함께 ‘오리진(Orgin)’이라는 동인을 결성한다. ‘근원, 기원’이라는 뜻의 ‘오리진’은 영문의 ‘O’에 한자 ‘원(元)’의 기호적 의미를 부여한 것인데, 이름 그대로 “모든 근원적인 것에 대한 모색”을 선언하며 창립한다.


핵 10.jpg이승조, <핵 10>, 1968.


오리진은 이승조의 예술세계에서 출발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미술계는 앵포르멜 경향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획일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앵포르멜이라는 매너리즘을 탈피하고자 신세대 미술학도들은 ‘오리진’을 발족시킨 것이다.


“모든 질서는 근원적인 데 있고 이에 환원된다. 이에 우리는 일체의 인간사적 조건에 구애됨이 없이 자신이 물려받은 유전자의 순수성과 삶을 구출할 수 있는 소지를 마련하고 심화된 평범을 추구한다.”

- 오리진 창립취지문 中



오리진은 창립 1년 뒤인 1963년, 창립전을 열고 앵포르멜 경향에 대한 거부를 표출하고자 했다. 물론 처음이다 보니까 여전히 앵포르멜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고, 완전히 새로운 조형성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승조에게는 추상미술이 추구하는 순수성과 근본 질서를 인지하고 각성하는 데 도움이 된 전시였다고 전해진다.


창립전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9인의 동인들은 졸업과 군 입대 문제로 흩어지게 된다. 4년간의 공백기가 있긴 했지만, 1967년 오리진의 2회전을 의미하는 《한국청년작가연립전》을 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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