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살아 돌아왔다. 이번 생에서는 사고를 막았다. 주인공이 기억하는 장례식도, 그 장례식에서 시작된 동맹도 사라졌다. 축하할 일이다. 그런데 구한 친구가 지도 한 장을 펴며 말한다. “우리 이 원정 같이 가자.”
공략집에 없는 퀘스트가 열렸다. 공략집을 망가뜨린 사람은 주인공 자신이다. 이 글을 위해 만든 도입이다.
Peggy Sue는 미래의 기억을 지닌 사람이 과거의 자기 삶을 다시 살아가는 이야기다. 회귀한 인물이 오를 주식을 사고 시험의 정답을 맞히는 장면에서는 경험이 곧 힘이 된다. 하지만 장편을 버티게 하는 것은 그 힘이 어디까지 유효한가다. 기억을 활용해서 세상을 고칠수록 기억과 세상 사이의 오차가 커진다.
이름의 출처인 영화 〈페기 수 결혼하다〉에서 페기는 성인의 경험을 지닌 채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다. 실패한 결혼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옛 연인은 미래의 실망까지 달고 나타난다. 반면 눈앞의 상대는 아직 그 일을 저지르지 않은 청년이다. 회귀자는 둘을 동시에 보지만 상대는 그런 이중 노출의 이유를 모른다.
이 차이가 재밌는 장면을 만든다. 어린 자신에게는 몰랐던 선택지가 보이고, 나이 든 자신이 너무 쉽게 판정했던 사람도 다시 보인다. 인생을 다시 산다고 반드시 같은 인물의 더 우수한 버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몰랐던 것과, 나중에 안다고 착각한 것을 함께 수정하게 된다.
이를 창작에 쓸 때 미래의 악행을 현재의 확정된 죄로 취급하면 갈등을 너무 빨리 정리하게 된다. 배신하기 전의 동료를 제거하는 주인공은 유능할 수 있지만, 그 행위로 배신할 이유를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잘못 때문에 버림받은 사람에게는 회귀자의 비밀 설명이 들리지 않는다.
만화 〈도쿄 리벤저스〉의 타케미치는 과거를 바꾸어 히나타의 죽음을 막으려 한다. 초반에 제시되는 도약은 12년 전의 자신에게 돌아가는 방식이다. 문제는 미래에서 배운 정보를 가져가는 것과, 바뀐 인생을 전부 경험한 기억을 가지는 일이 다르다는 점이다. 돌아온 현재에서 그는 자신이 무엇을 바꾸었는지 다시 조사해야 한다.
여기서 회귀는 승리를 위한 자동 저장 기능이 아니라 수사 방법이 된다. 원인을 추정하고 과거에 개입한 뒤 결과를 확인한다. 예상한 변수만 움직이지 않는다. 타인의 결정은 물론이고, 자신이 직접 통제하지 못하는 기간의 과거 자신도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일은 시험 정답을 암기하는 일보다 훨씬 불확실하다.
만화 〈나만이 없는 거리〉의 사토루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 카요를 둘러싼 사건을 바꾸려 한다. 성인의 지식이 생겼다고 아이의 몸과 슬롯적 위치까지 성인이 되지는 않는다. 범죄를 의심하는 말이 권위를 얻지 못하고, 보호가 필요한 친구를 돕는 데도 어른들의 행동과 신뢰가 필요하다. 출판사 1권 소개
두 작품을 붙여 보면 회귀자의 제약을 나누어 볼 수 있다. 무엇이 바뀌었는지 모르는 정보의 제약과, 알고 있어도 실행할 권한이 없는 지위의 제약이다. 둘을 모두 지우면 주인공은 정답을 발표하는 사람이 된다. 적절히 남기면 누군가에게 믿어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사람이 된다.
비주얼 노벨 〈슈타인즈 게이트〉에서는 과거로 정보를 보내는 D메일과 기억을 과거의 자신에게 보내는 타임리프를 구분해야 한다. 같은 시간 개입이라도 이동하는 것이 다르다. 정신적 시간여행 Mental Time Travel은 몸 전체가 아니라 의식이나 기억이 과거의 몸으로 가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Peggy Sue는 그 결과 자기 삶을 다시 선택하는 서사의 형태에 초점을 둔다.
오카베에게 반복은 지식의 축적이면서 감정의 비대칭이다. 함께 겪었다고 느끼는 일을 눈앞의 상대는 겪지 않았다. 주인공이 절박할수록 다른 사람에게는 과잉 반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래서 회귀물의 고독은 혼자 비밀을 아는 데서만 나오지 않는다. 나에게는 오래 쌓인 관계가 상대에게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데서 나온다.
켄 그림우드의 소설 〈리플레이〉는 긴 생애를 다시 살아가는 경험을 거듭시킨다. 제프는 미래의 정보를 이용할 수 있지만, 성공과 쾌락만으로 반복의 의미가 채워지지는 않는다. 같은 시기를 다르게 산다는 것은 가능성의 확대인 동시에, 이전에 맺은 관계와 삶을 계속 잃는 일이다. SF 백과사전의 작가·작품 해설
이 두 작품을 단순히 ‘몇 번 더 시도하면 성공한다’로 읽으면 가장 쓰린 부분을 놓친다. 주인공에게 쌓인 시간이 타인에게도 쌓인다는 보장은 없다. 이번 생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되었어도, 지난 생의 누군가에게 사과할 길은 없을 수 있다.
과거의 작은 변경이 끔찍한 결과를 부르는 파멸의나비효과Butterfly of Doom을 회귀물에 붙이면 선택을 두렵게 만들기 쉽다. 그러나 바꾸는 일마다 반드시 더 나빠진다면 주인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합리적이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면 변화의 손해와 변화의 불확실성을 구분해야 한다.
도입에서 친구를 구한 일은 성공으로 남겨 둘 수 있다. 대신 친구가 살아서 하는 선택은 주인공의 기억 밖에 있게 한다. 새로운 원정은 더 큰 재앙일 수도 있지만, 지난번에는 없었던 해결바카라일 수도 있다. 미래를 모르는 상태가 곧 벌인 것은 아니다. 독자는 구원의 가치가 취소되지 않으면서도 다음 장면이 불확실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게임과 TRPG에 적용할 때도 진행자가 플레이어의 계획을 알아차릴 때마다 역사를 바꾸면 기억의 효용이 사라진다. 아직 개입하지 않은 사건에는 옛 정보가 유용하고, 개입한 지점부터는 오차의 이유를 추적할 수 있게 해 주는 편이 낫다. 미래 정보가 언제 낡았는지 발견하는 것 자체를 플레이로 만들 수 있다.
첫 회귀 장면을 고른다면 대박 날 주식 종목보다 사소한 만남 하나가 더 강할 수 있다. 지난 생에서는 늦어서 못 탄 버스에 이번에는 오른다. 구하려던 사람의 연락을 받으려고 창가에 앉았는데, 옆자리에서 처음 보는 아이가 말을 건다. 그 아이는 이미 바뀐 삶의 증거다. 주인공은 기억 속 정답을 더 찾을지, 처음 보는 아이에게 먼저 말을 걸지 결정해야 한다.
몸에 적어 둔 기록 — Human Notepad: 잊지 말아야 할 내용이나 메시지를 몸 위에 직접 적는다.〈메멘토〉(영화): 새로운 기억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는 레너드는 추적에 필요한 정보를 몸에 문신으로 남긴다.
숨기고 싶은 옛 활동 — Old Shame: 인물이 과거에 했던 일이나 만든 것을 부끄러워한다.〈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 Slap Bet〉(드라마): 로빈은 캐나다에서 로빈 스파클스라는 십 대 가수로 활동했던 사실을 친구들에게 숨기려 한다.
차마 보여 주기 싫은 옛 사진 — Embarrassing Old Photo: 과거의 사진이나 영상이 현재의 인물에게 민망함을 안긴다.〈일하는 세포〉(만화): 수지상세포가 다른 T세포들의 옛 사진을 보여 주자 신참 T세포가 용기를 얻는 반면 당사자들은 오한을 느낀다.
처음 품은 사랑 — First Love: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이나 그 경험이 이후의 관계에도 기억으로 남는다.〈심슨 가족〉(애니메이션): 바트는 이웃집 로라에게 품었던 마음을 자신이 사랑했던 소녀에 대한 기억으로 떠올린다.
다시 만났지만 식어버린 마음 — Old Flame Fizzle: 과거의 연인이나 짝사랑을 다시 만나도 예전 감정이 돌아오지 않는다.〈스콧 필그림〉(만화): 스콧과 나이브스는 다시 키스해보지만 둘 다 예전 관계로 돌아가는 일이 맞지 않음을 느낀다.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다 — Not Quite Back to Normal: 변신에서 풀려나도 이전 몸의 특징이나 습관 일부가 남는다.〈힐다, 산속의 왕과 마주치다〉(애니메이션): 인간으로 돌아온 힐다는 여전히 트롤의 말을 알아듣는다.
계속 존재하지만 나를 잃기 — Loss of Identity: 기억과 성격처럼 자신을 규정하던 요소가 사라져 정체성이 무너진다.〈다크 소울〉(게임): 불사자들은 목적과 기억을 잃으며 망자가 되어 가므로, 다시 일어날 몸만 남는 것이 구원이 되지 않는다.
시간 자체의 끝 — Natural End of Time: 악당의 공격이 아니라 우주의 수명이 다하면서 세계가 끝에 이른다.〈닥터 후: 지옥으로 향하다〉(드라마): 닥터는 우주의 끝에서 오래 살아남은 애실드르를 만나며, 개인의 장수를 넘어선 시간의 경계에 도착한다.
만나기 전에 시작된 사랑 — Love Before First Sight: 직접 만나기 전에 편지나 목소리, 이미지 등을 통해 사랑에 빠진다.〈86 -에이티식스-〉(애니메이션): 레나는 통신 장치로 신과 대화하며 얼굴을 직접 보기 전부터 그에게 마음이 기운다.
빈자리를 남기는 편대 — Missing Man Formation: 대형의 한 자리를 비우거나 한 대가 이탈하는 비행으로 돌아오지 못한 동료를 기린다.〈탑건: 매버릭〉(영화): 아이스맨의 장례에서 네 대의 비행기 중 한 대가 위로 이탈하고 나머지는 앞으로 날아간다.
젊음 없는 영생 — Age Without Youth: 죽지 않는 능력에 노화 방지가 따르지 않아 몸은 계속 늙는다.〈걸리버 여행기〉(소설): 걸리버는 불사자인 스트럴드브러그를 부러워하다가, 그들이 늙음과 쇠약을 끝없이 견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네 삶을 대신 살고 싶다 — I Just Want to Be You: 부러워하는 사람을 닮는 데서 나아가 그 사람 자체가 되고 싶어 한다.〈파이널 판타지 VII〉(게임): 클라우드는 자신이 원했던 솔저의 모습과 친구 잭스의 모습을 자기 정체성에 뒤섞는다.
선악이 뒤집힌 평행세계 — Mirror Universe: 익숙한 인물들이 다른 도덕과 권력 관계를 가진 세계에서 살아간다.〈스타 트렉: Mirror, Mirror〉(드라마): 커크 일행은 잔혹한 제국의 우주선으로 옮겨져, 익숙한 동료들의 위험한 다른 모습을 상대한다.
유품이 알려 주는 삶 — Personal Effects Reveal: 죽은 사람의 소지품을 살피며 몰랐던 삶을 발견하거나 그 부재를 새삼 느낀다.〈왓치맨〉(만화): 로어셰크는 살해당한 블레이크의 집을 조사하다 숨겨진 장비를 발견하고 그가 코미디언이었음을 확인한다.
누군가에게 받은 물건 — It Was a Gift: 물건이 선물이었다는 사실로 주인과 준 사람의 관계가 드러난다.〈블리치〉(만화): 오리히메는 죽은 오빠가 선물한 머리핀을 소중히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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