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받았지만 영 못 미더운 구원자 The Chosen Zero:
용의 전사를 발표하는 자리에 쿵푸의 고수들이 모인다. 애니메이션 〈쿵푸팬더〉의 포는 그 자리에 들어가고 싶어 몸부림치다, 뜻밖의 방식으로 모두의 시선 한가운데 떨어진다. 우그웨이가 그를 선택하자 축하보다 당혹감이 먼저 퍼진다. 예언의 주인공은 정해졌는데 훈련을 맡을 사람의 표정이 좋지 않다.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The Chosen One의 약속은 대개 세계를 구할 가능성이다. The Chosen Zero는 그 약속과 눈앞의 사람 사이에 큰 간격을 둔다. 겁이 많거나, 기술이 부족하거나, 성격이 나쁘거나, 일 자체를 하기 싫어할 수 있다. 부족함의 종류를 구분해야 웃음 뒤에 남길 이야기도 달라진다.
제목의 재추첨이 어렵다는 말은 그런 곤란함을 요약한다. 잘못 골랐다고 선언하고 끝내면 사람 하나가 교체될 뿐이다. 사람들이 그를 기다렸고, 다른 후보들은 탈락했으며, 적이 다가오고 있다면 선발 결과를 바꾸는 일에도 비용이 생긴다.
포는 시푸가 익숙하게 가르치던 제자가 아니다. 몸의 쓰임과 동기가 다르다. 시푸가 음식에 반응하는 포의 행동을 보고 훈련 방식을 바꾸면서, 처음에 결함처럼 보였던 특성이 학습의 단서가 된다. 포를 다른 제자의 모양으로 줄이는 대신 그가 움직이는 이유를 찾아낸다.
이 변화 때문에 훈련 장면의 웃음도 단순한 몸집 놀리기에 머물지 않는다. 보는 사람은 포가 왜 이전에는 실패했고 지금은 움직일 수 있는지 이해한다. 마지막에 강해졌다는 선언보다 힘이 생기는 과정을 납득하게 된다. 용의 문서에 숨겨진 특별한 비법이 없다는 발견도 이 과정과 만난다. 권위를 지닌 물건이 자기 행동을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선택을 의심하는 주변 사람을 전부 속 좁은 악역으로 만들 필요도 없다. 그들에게는 지금까지 노력해온 시간과 위험을 걱정할 이유가 있다. 의심이 합리적일수록 신뢰를 얻는 행동도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선택받았다는 증명서가 실력의 증명서로 바로 바뀌지 않는 것이다.
〈레고 무비〉의 에밋은 지침에 맞춰 생활하는 평범한 건설 노동자다. 저항의 조각을 얻은 뒤 ‘특별한 존재’로 취급되지만, 자유롭게 창조하는 마스터 빌더들 사이에서는 자기 생각을 내놓는 일부터 어렵다. 동료가 기대한 구원자의 능력이 그에게 없는 듯 보인다.
그런데 각자 뛰어난 동료들도 함께 움직이는 일에는 서툴 수 있다. 에밋이 알고 있던 규칙과 협력의 방식은 다른 사람들이 무시했던 능력이 된다. 이때 성장의 방향은 모든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 되는 쪽과 다르다. 자기 특성을 팀의 문제와 연결하는 쪽이다.
예언이 만들어진 것이었다는 사실 역시 단순히 앞의 이야기를 취소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 말을 믿고 이미 움직였기 때문이다. 선택의 권위가 사라진 뒤에도 누구와 무엇을 할지는 남는다. 허위의 예언을 폭로하는 장면과 실제 행동의 가치를 지키는 장면을 함께 놓으면, 운명 없이도 계속할 이유를 보여줄 수 있다.
실사 영화 〈비버리 힐스 닌자〉의 하루는 예언 속 위대한 닌자로 기대받으며 자랐지만 좀처럼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그가 미국으로 떠나자 고베이가 뒤를 따라가 보호한다. 하루에게는 자신이 해냈다고 보이는 일에 다른 사람의 수고가 섞일 수 있다.
이 구조는 무능한 인물의 우연한 성공을 웃음으로 만들면서, 그 성공을 유지하는 사람의 노동도 보여준다. 관객이 조력자의 개입을 알면 주인공의 자신감이 다른 뜻으로 들린다. 비밀을 모르는 주인공에게는 기적이고, 아는 관객에게는 누군가가 또 야근한 결과다.
다만 모든 성취를 조력자가 대신하면 주인공은 이야기의 짐이 된다. 그가 자기 이름으로 바카라임질 순간이 있어야 한다. 초기의 도움을 숨기다가 공개하는 방법도 있지만, 끝내 도움받았음을 알고 다른 사람을 돕는 행동으로 돌려주는 길도 있다. 부족한 용사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 단독 승리일 필요가 없다.
게임 〈아케이넘: 오브 스팀웍스 앤 매직 옵스큐라〉에서 버질은 비행선 사고의 생존자를 위대한 존재의 환생으로 받아들인다. 플레이어가 어떤 인물을 만들었느냐에 따라 그 믿음과 눈앞의 사람이 묘하게 어긋난다. 신성한 환생이라는 설명과 영리하지 못한 인물의 반응이 함께 놓이면 예언을 해석하는 사람의 곤란함이 드러난다.
이것은 영화의 정해진 주인공과 다른 재미다. 플레이어가 선택한 성격과 능력치가 누군가의 엄숙한 확신을 시험한다. 설정을 소개하는 대화가 캐릭터 제작의 결과를 확인하는 장면이 되기도 한다. 같은 예언을 모든 인물에게 똑같이 읽어주는 것보다, 그 차이를 주변 인물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기억에 남는다.
부적격자라는 판단을 능력치 하나로 고정할 필요도 없다. 약하지만 협상에 능한 인물, 용감하지만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인물은 서로 다른 동료를 필요로 한다. 결함이 어떤 활동을 막는지 구체적이어야 파티원도 도울 방법을 찾는다.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의 알리스터는 왕위 계승의 가능성을 가진 인물이지만, 그 사실만으로 통치를 원하거나 준비를 마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신화적 구원자와 완전히 같은 사례는 아니다. 다만 출생으로 얻은 자격과 일을 감당할 의지가 어긋난다는 점에서 비교할 만하다.
왕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을 밀어 올리는 선택은 무능한 사람을 훈련시키는 것과도 다르다. 준비가 부족한 것인지,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것인지 구별해야 한다. 주변의 기대가 클수록 당사자의 거절은 쉽게 철없는 반응으로 처리된다. 그가 다른 역할에서는 이미 유능할 수 있다는 사실도 놓치기 쉽다.
예언이나 운명의 선택 없이도 자기 뜻으로 악에 맞서는 The Unchosen One을 곁에 놓으면 이 차이가 더 잘 보인다. 자격은 있지만 의지가 없는 사람과, 의지는 있지만 자격을 인정받지 못한 사람의 관계에서 이야기가 생긴다. 반드시 둘 중 하나를 가짜로 판정해야 끝나는 대립은 아니다.
TRPG에서 한 인물을 용사로 지정하면 나머지 인물들은 그 사람의 보조 역할로 밀릴 수 있다. 그러나 예언이 해줄 수 있는 일을 작게 정하면 다르게 구성할 수 있다. 가령 봉인의 문을 여는 권한만 용사에게 있고, 길을 찾고 협상하며 안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동료들에게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작품 사례가 아니라 같은 후크를 파티 전체로 넓히는 설계다.
선택된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것만으로 팀워크가 생기지는 않는다. 각자의 기여가 실제로 결과를 바꿔야 한다. 포에게 맞는 훈련을 발견한 시푸, 에밋과 협력하는 동료, 하루의 뒤를 지키는 고베이를 함께 보면 구원자의 성취에는 여러 종류의 일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언을 맞히는 결말보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이 어떤 근거로 그를 믿게 되는가다. 처음에는 신탁 때문에 옆에 섰던 사람이 나중에는 실제 행동을 보고 남을 수 있다. 그때 선택받았다는 말은 사람을 대신 평가하는 권위에서, 아직 해내지 못한 일을 함께 기다리는 약속으로 바뀐다.
기술 이름을 외치며 공격하기 — Calling Your Attacks: 공격을 실행하며 기술명을 외쳐 동작에 리듬과 인상을 더한다.〈드래곤볼 Z 어브리지드: Buu Bits〉(웹 영상): 오천이 기술 이름을 틀리게 말하고도 공격하자 트랭크스는 대체 왜 이름을 외치느냐고 따지고, 오반은 멋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실용적인 싸움꾼 — Combat Pragmatist: 정정당당한 형식보다 살아남고 이기는 데 유리한 방법을 택한다.〈레이더스〉(영화): 인디아나는 칼솜씨를 과시하는 상대와 칼싸움을 벌이는 대신 권총을 쏜다.
반복해서 레벨 올리기 — Level Grinding: 비슷한 행동을 거듭해 능력치나 경험치를 쌓는다.〈사우스 파크〉(애니메이션): 아이들은 강한 플레이어를 상대하려고 낮은 수준의 멧돼지를 계속 잡는 과장된 훈련을 한다.
초능력 없이 남는 실력 — Brought Down to Badass: 특별한 힘이나 장비를 잃어도 훈련과 경험 덕분에 여전히 만만치 않은 인물이다.〈레전드 오브 투모로우〉(드라마): 레이가 부적 없는 아마야의 능력을 묻자, 아마야는 자신이 무술 유단자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스스로 해내는 순간 — “Can Hold Her Own” Moment: 보호받을 것처럼 보인 여성이 직접 자기 능력을 증명한다.〈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게임): 왕자가 뒤처지지 말라고 하자 파라는 곧 그보다 앞서 달려간다.
여럿일수록 약해지는 적 — Conservation of Ninjutsu: 같은 종류의 적이 떼로 나올 때 개별 전투력이 낮아진다.〈폴리스 캅스 인 스페이스〉(연극): 두 경찰이 로봇 군단을 뚫고 나가지만 단 한 대의 우두머리 로봇에게 훨씬 크게 고전한다.
강적으로 막은 길 — Beef Gate: 길 자체는 열려 있지만 지나치게 강한 적이 사실상의 장벽이 된다.〈엘더스크롤 V: 스카이림〉(게임): 하이 흐로스가로 오르는 길의 서리 트롤은 준비가 덜 된 여행자를 막아선다.
혼자서 군대를 상대하기 — One-Man Army: 한 인물이 수많은 적을 혼자 감당한다.〈시라노 드 베르주라크〉(희곡): 시라노는 리니에르를 노리는 무장한 패거리를 혼자 상대한다.
흔들리지 않는 담력 — Nerves of Steel: 위험을 알아도 두려움에 판단을 빼앗기지 않는다.〈아처〉(애니메이션): 라나는 말로리가 총을 겨누어도 도망치지 않아 요원으로서의 자질을 보인다.
건드리면 폭발하는 말 — Berserk Button: 특정한 사소한 자극이 인물을 유난히 격분시킨다.〈공의 경계〉(소설): 아오자키 토우코는 자신이 혐오하는 별칭으로 불리는 일을 극도로 용납하지 않는다.
전차 경주 — Chariot Race: 고대의 전차 경주가 경쟁과 위험한 충돌을 함께 보여 준다.〈65층 나무 집〉(아동소설): 앤디와 테리 일행은 고대 로마에서 쓰레기통을 전차처럼 몰아 경주한다.
결함을 품은 시제품 — Flawed Prototype: 처음 만든 장치의 성능은 작동하지만 미처 해결하지 못한 결함이 사용자에게 돌아온다.〈퍼시픽 림〉(영화): 초기 예거에는 방사선 차폐가 부족했고, 펜테코스트의 과거 조종 경험은 이후의 건강 문제와 연결된다.
함께 가질 수 없는 강화 — Mutually Exclusive Power-Ups: 새로운 무기나 강화의 선택 때문에 다른 효과를 포기해야 한다.〈건스타 히어로즈〉(게임): 플레이어는 네 종류의 무기 가운데 두 개를 골라 사용하거나 결합하므로, 모든 조합을 동시에 지닐 수 없다.
빗나가면 자신이 다치는 공격 — Attack Backfire: 공격이 실패했을 때 기회만 놓치는 것이 아니라 공격자 자신도 피해를 입는다.〈포켓몬스터〉(게임): 무릎차기 기술이 빗나가면 사용한 포켓몬이 다치므로, 위력과 함께 실패의 대가도 계산해야 한다.
패배를 품위 있게 받아들이기 — Graceful Loser: 승부에서 진 사람이 결과를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며 약속한 바카라임을 진다.〈원피스〉(만화): 세뇨르 핑크는 자기 최강 공격을 견딘 프랑키에게 반격을 막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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