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추적하라는 의뢰 Hired to Hunt Yourself:
왕이 비밀 조직의 수장을 찾아 죽이라고 명령한다. 충성스러운 신하라면 곧장 수사에 나서야 한다. 영화 〈아이언 마스크〉의 아라미스에게는 작은 문제가 있다. 그 수장이 자기다. 임무를 잘하면 죽고, 못하면 의심받는다. 능력과 충성심을 인정받았다는 사실부터 불행의 원인이 된다.
Hired to Hunt Yourself는 한 사람이 가진 두 신분을 한 사건 안에서 충돌시킨다. 변장만 잘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수사에 참여하는 순간부터 자신을 숨기는 행동과 유능함을 증명하는 행동이 서로를 방해한다. 여기서 좋은 후크는 정답을 감추는 수수께끼보다, 정답을 아는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다룰지에 있다.
만화 〈데스노트〉에서 L은 키라일 가능성을 의심하는 야가미 라이토를 수사에 참여시킨다. 라이토는 자신의 비밀을 지키면서 L의 정체에 접근할 수 있다. L도 가까이에서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다. 초대하는 사람과 초대받은 사람 모두 이 자리가 유리하다고 계산한다.
그래서 협력 장면에도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진행된다. 겉으로는 같은 범인을 쫓지만, 각자는 상대가 가진 정보와 추론의 속도를 잰다. 라이토가 모든 단서를 무시한다면 수사관으로서의 설득력을 잃는다. 반대로 지나치게 정확히 판단하면 그 지식을 어디서 얻었는지 문제가 된다. 정답을 모르는 척하는 일에도 적정한 수준이 필요한 셈이다.
비밀 정체를 다루는 Secret Identity만으로는 이 압박이 생기지 않는다. 평소 신분과 숨긴 신분이 같은 회의실의 의제가 되어야 한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내 이름이 공식 수사 자료에 올라가는 순간, 사적인 비밀은 여러 사람이 함께 검토하는 대상이 된다.
영화 〈무간도〉에는 경찰 내부의 범죄 조직원 유건명과 범죄 조직 내부의 경찰 진영인이 데칼코마니처럼 배치되어 다. 양쪽 조직 모두 내부의 정보 유출을 의심한다. 두 사람은 자신이 잠입한 조직의 내부자 수색에 휘말린다. 수색하는 조직에 협력하는 척해야 하지만, 그들이 찾는 첩자가 바로 자신이다.
이 배치는 경찰과 범죄자라는 구분만으로 안심할 곳을 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상관에게 보고하는 행동이 한쪽 신분에서는 충성이고 다른 쪽에서는 배신이다. 누구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어떤 정보를 늦게 전달했는지가 생존과 연결된다. 거짓말의 문장만큼 통화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중요해진다.
관객은 두 사람의 사정을 알기 때문에 작은 보고에도 긴장을 느낀다. 이런 정보 차이를 Dramatic Irony라고 부른다. 범인의 정체를 관객에게 먼저 알려도 이야기는 약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 정확한 추론을 할 때마다 응원할지 두려워할지 복잡해진다. 진실을 밝히는 사람이 이 장면에서는 주인공의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필립 K. 딕의 소설 〈스캐너 다클리〉에서 잠입 수사관 밥 아크터는 ‘프레드’라는 업무상 신분으로 활동한다. 수사관의 정체를 감추는 장치는 동료에게서 그를 보호한다. 그런데 그 보호 때문에 상부는 프레드에게 밥 아크터를 감시하라는 일을 맡길 수 있다.
처음에는 자신이 무엇을 숨겨야 하는지 아는 사람의 곤란함이다. 약물로 인한 인지의 손상이 깊어지면서 그 전제가 무너진다. 아크터는 감시 화면 속 자신을 보면서도 관찰자와 관찰 대상의 관계를 온전히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데스노트〉의 계산하는 수사관과 달리, 여기서는 계산에 필요한 자기 인식부터 불안정하다.
같은 화면을 되돌려 보는 행위도 달라진다. 보통의 수사라면 범인의 실수를 찾는 일이다. 자신을 감시하는 이야기에서는 잊고 있던 자기 행동을 확인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인물을 똑똑하게 만들거나 단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만으로 얻을 수 없는 불안이다. 증거가 많아질수록 자기 설명이 단단해지는 대신 갈라진다.
영화 〈노 웨이 아웃〉에서 톰 패럴은 살해된 여성과 관계를 맺었던 남자를 찾는 수사에 동원된다. 찾는 남자는 자신이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면 실제 살인자의 바카라임을 피하게 만들고 자신에게 혐의를 집중시킬 수 있다. 숨기는 사실과 유죄의 증거가 주변 사람에게는 같은 것으로 읽힌다.
이 구도에서는 수사를 방해하는 사람을 곧바로 범인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그는 살인을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불리한 해석을 막으려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증거를 없애는 행동이 무해해지는 것도 아니다.
Destroy the Evidence가 끼어들면 당장의 생존을 위해 지운 자료가 나중에 결백을 증명할 수단이었을 가능성도 생긴다.
〈아이언 마스크〉의 신분 충돌, 〈무간도〉의 이중 충성, 〈스캐너 다클리〉의 자기 인식, 〈노 웨이 아웃〉의 혐의는 같은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들키면 무엇을 잃는지 정해야 숨기는 행동에도 구체적인 성격이 생긴다. 목숨만이 아니라 친구의 신뢰, 수사권, 자기 기억이 걸릴 수 있다.
이 설정을 게임의 첫 의뢰로 옮긴다면 주인공이 정체를 알고 시작하는지부터 달라진다.
처음부터 안다면 증거를 관리하는 긴장이 생기고, 나중에 알게 하면 그동안 성실히 수행한 임무가 자기를 겨냥한 준비였다는 발견이 생긴다. 어느 쪽이든 단서를 전부 태우는 행동 하나로 끝나면 후크가 금방 소진된다.
이를테면 새로 만든 잠입 시나리오에서 상관이 목격자를 붙여주고, 동료는 주인공의 수사 실적 덕분에 승진을 기대할 수 있다. 수사를 중단하면 동료가 대신 위험에 들어가며, 거짓 범인을 내세우면 무고한 사람이 잡힌다. 숨기는 데 성공한 뒤에도 무엇을 바카라임져야 하는지가 남는다.
이야기를 오래 움직이는 것은 들킬 듯 말 듯한 우연의 반복보다 성공의 대가다. 수사를 잘해서 더 중요한 자료를 맡게 될수록 자신을 숨길 곳이 줄어든다. 마침내 범인을 잡아오라는 칭찬을 들었을 때, 주인공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보수보다 문을 지키는 사람의 수일 수 있다.
엿듣는 자에게 거짓을 들려주기 — Bluff the Eavesdropper: 도청이나 관찰을 알아챈 뒤, 들리는 대화를 꾸며 상대를 오도한다.〈번 노티스〉(드라마): 마이클은 발견한 도청기를 바로 끄기보다, 듣고 있는 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줄 통로로 삼는 방식을 설명한다.
진실을 말하게 하는 약 — Truth Serums: 숨기던 정보를 말하게 하는 약물이 심문과 비밀의 폭로에 사용된다.〈해리 포터와 불의 잔〉(소설): 덤블도어는 베리타세룸을 사용해 바티 크라우치 주니어에게 무디로 위장하고 해리를 함정에 빠뜨린 경위를 듣는다.
거짓말을 알아채는 사람 — Living Lie Detector: 말의 참거짓을 특별한 감각이나 능력으로 구별하는 인물이다.〈포커 페이스〉(드라마): 찰리는 주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놓는 거짓을 감지하고, 그 불일치를 따라 살인 사건에 접근한다.
다른 집단의 소행으로 꾸미기 — False Flag Operation: 자신이 벌인 공격을 다른 세력이 한 것처럼 보여 갈등과 반응을 유도한다.〈강철의 연금술사〉(만화): 엔비는 아메스트리스 군인으로 변신해 발포함으로써 이슈발 전쟁을 촉발한다.
정보를 거래하는 사람 — Knowledge Broker: 정보망을 통해 다른 인물들의 사정과 비밀을 모으고 거래한다.〈매스 이펙트 2〉(게임): 리아라는 일리움에서 정보상으로 일하며 섀도 브로커의 정체와 행방을 추적할 자금을 마련한다.
유품이 알려 주는 삶 — Personal Effects Reveal: 죽은 사람의 소지품을 살피며 몰랐던 삶을 발견하거나 그 부재를 새삼 느낀다.〈왓치맨〉(만화): 로어셰크는 살해당한 블레이크의 집을 조사하다 숨겨진 장비를 발견하고 그가 코미디언이었음을 확인한다.
대신 서는 얼굴 — Body Double: 유명하거나 중요한 인물과 닮은 사람이 공개 자리를 대신한다.〈데이브〉(영화): 대통령의 대역을 맡은 데이브는 대통령이 쓰러지자 계속 그 신분을 연기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얼굴을 모르는 인물로 사칭하기 — Masquerading As the Unseen: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의 이름과 외형을 차지해 그 사람인 척한다.〈20세기 소년〉(만화): 가면을 쓴 친구가 죽은 뒤 또 다른 친구가 등장해, 대중이 얼굴을 모른다는 조건을 권력의 연속성에 이용한다.
호감을 이용한 접근 — Honey Trap: 사적이거나 성적인 관심을 이용해 표적의 신뢰와 정보를 얻는다.〈Tales of Suspense #52 (1964)〉(만화): 나타샤는 토니 스타크의 호감을 이용해 접근하며 동료가 스타크의 시설에서 벌이는 작전을 돕는다.
다른 사람에게도 말했나 — Have You Told Anyone Else?: 비밀을 전한 사람이 누구까지 아는지 확인하는 질문을 받으며 위험을 감지한다.〈커뮤니티〉(드라마): 누가 들어오는 것을 봤느냐는 관리인의 질문에 트로이는 아무도 없다고 하면 공격할 것이냐고 되묻는다.
너무 많은 것을 안 사람 — He Knows Too Much: 비밀을 아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람의 생존을 위협한다.〈아스트로 시티〉(만화): 잭 인 더 박스의 정체를 알아낸 좀도둑은 그 정보를 살 악당들이 자신을 살려 둘 이유가 없음을 깨닫는다.
악의로 퍼뜨린 말 — Malicious Slander: 거짓말과 왜곡된 소문으로 다른 사람의 평판을 무너뜨린다.〈시련〉(문학·희곡): 애비게일 일행의 마녀 고발이 무고한 사람들을 재판과 처벌의 대상으로 만든다.
되돌아오는 협박 — Blackmail Backfire: 비밀을 이용한 협박이 실패하고 협박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배트맨: 이어 원〉(만화): 고든이 불륜을 아내에게 먼저 고백하자 경찰청장이 사진으로 가정을 압박하려던 수법이 통하지 않는다.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태도 — Not Cheating Unless You Get Caught: 규칙 준수보다 부정을 감추는 능력을 진짜 조건으로 여긴다.〈안드로메다〉(드라마): 라데는 바둑에서 속임수를 쓴 자신에게 딜런이 화내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목소리 없이 전하는 신호 — Hand Signals: 손짓과 몸짓으로 정보를 전달해 말하거나 듣기 어려운 상황을 통과한다.〈콰이어트 플레이스〉(영화): 애벗 가족은 소리에 반응하는 괴물을 피하며 수어로 대화하고 경고를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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