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집에 돌아왔는데 낯선 사람이 되어버렸다면

by김동은WhtDrgon

익숙한 땅의 이방인 Stranger in a Familiar Land:

오랜 여정을 끝내고 돌아온 사람에게 고향은 더 이상 예전의 생활을 보장하지 않는다. 집에 도착하는 일과 그곳에서 다시 살아가는 일이 갈라지는 순간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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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목적지는 그대로여도, 돌아오는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의 시간은 함께 멈추지 않는다

〈캐스트 어웨이〉의 척은 무인도에서 살아 돌아온다. 구조되기 전까지 그가 바라던 일은 분명하다. 사람을 만나고, 익숙한 세상으로 돌아가고, 사랑하는 켈리를 다시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일은 바다를 건넌 다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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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는 척이 죽었다고 생각한 채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다. 두 사람에게 감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시간을 취소할 수는 없다. 척의 생존은 기적이지만, 켈리가 그동안 살아온 삶 역시 실제다. 재회가 이루어졌다는 이유로 예전 관계가 복구되지는 않는다.


이 어긋남은 귀향 이야기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먼 곳에서 고생한 사람이 돌아오면 누구나 반기고, 떠나기 전의 생활을 돌려받는 결말도 가능하다. 그러나 어떤 작품은 현관문을 연 뒤에야 더 어려운 질문을 꺼낸다. 돌아온 사람에게 집은 아직 집인가.


돌아가는 동안에도 고향의 시간은 흐른다

보통 귀환을 목표로 삼는 이야기는 출발점의 가치를 먼저 정해 둔다. 그곳에 가족이 있고, 먹고살던 일이 있고,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 낯선 곳에서 겪는 위험은 그 평범한 생활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확인하게 한다. 관객은 주인공이 돌아가야 할 이유를 일찍 이해한다.


〈캐스트 어웨이〉도 척의 기존 생활을 충분히 보여 준다. 그는 시간에 쫓기며 일하고, 켈리와 보내는 시간도 넉넉하지 않다. 추락 사고는 그 일정을 통째로 중단시키지만, 섬 밖의 세계까지 중단시키지는 않는다. 영화의 제작사 소개 역시 바쁜 일상에서 고립된 생존으로 넘어가는 이 급격한 변화를 줄거리의 출발점으로 잡는다. 앰블린 작품 소개


척에게 켈리는 과거에 남겨 둔 사랑이면서 미래에 돌아가야 할 이유다. 반면 켈리에게 척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다. 한쪽이 재회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쪽은 상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한다. 두 사람이 같은 관계를 생각해도 그 관계가 차지하는 시간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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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켈리의 결혼을 배신으로 처리하면 이 귀향의 어려움은 지나치게 단순해진다. 척이 고생한 만큼 켈리가 계속 기다려야 한다는 계산도 성립하지 않는다. 돌아온 사람의 고통을 인정하는 일과 남아 있던 사람의 선택을 인정하는 일은 함께 가능하다. 재회 장면이 아픈 것은 둘 중 누군가를 악인으로 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집이 사라진 것과 집이 낯설어진 것은 다르다

‘익숙한 땅의 이방인’은 돌아갈 장소가 아예 없어진 상황과 구별된다. 고향이 파괴되거나 추방되어 접근할 수 없다면 귀환 자체가 막힌다. 반면 이 트롭스에서는 거리도 집도 대체로 남아 있다. 문제는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경험과 관계가 달라졌다는 데 있다.


이 차이는 장면 구성에도 영향을 준다. 폐허가 된 집은 한눈에 상실을 보여 준다. 멀쩡한 집은 더 작은 행동을 요구한다.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앉던 의자 앞에서 멈추거나, 모두가 웃는 이야기에서 혼자 반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고향 사람들이 반드시 냉정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성대하게 환영해도 그가 겪은 일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돌아온 사람 역시 자기 경험을 길게 설명할 마음이 없을 수 있다. 서로를 싫어하지 않는데도 대화가 겉돌면, 물리적인 귀환만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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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트 어웨이〉에서 문명슬롯가 제공하는 편리함은 이런 차이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섬에서는 음식과 불 하나를 얻는 데 긴 노동이 필요했다. 돌아온 뒤에는 그런 것들이 너무 쉽게 주어진다. 같은 사물을 바라보는 척의 감각이 달라졌기 때문에 풍요로운 환경조차 곧바로 편안한 환경이 되지는 않는다.


네 사람이 돌아왔지만 네 사람의 결말은 다르다

영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서 샤이어로 돌아온 네 호빗은 술집에 함께 앉는다. 주변의 일상은 계속되고, 그들의 모험을 모르는 주민들은 평소처럼 지낸다. 네 사람이 나누는 시선에는 그 긴 여정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친밀함이 있다. 동시에 그들만 알고 있는 경험이 다른 주민들과의 거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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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환영받지 못한 영웅의 억울함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샤이어가 평범한 일상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들이 지키려 했던 일이 이루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두가 전쟁의 공포를 알아야만 승리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평화를 되찾은 사람 자신이 그 안에서 편안히 살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로 남는다.


샘은 그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생활을 이어 간다. 프로도는 같은 방식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끝내 서쪽으로 떠난다. 두 사람은 같은 여정을 겪었지만 같은 정도로, 같은 방법으로 회복해야 할 의무는 없다. 샘의 정착 때문에 프로도의 떠남이 실패가 되는 것도 아니고, 프로도의 상처 때문에 샘의 행복이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다.


이때 씁쓸하면서도 행복한 결말은 감정을 반씩 섞는 기술이 아니다.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돌려받지 못했는지를 각각 남기는 방식이다. 세계는 구해졌고, 우정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모험 이전의 몸과 마음,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까지 되찾은 것은 아니다.


귀향 장면은 판본에 따라 다른 일을 한다

톨킨의 소설과 영화는 샤이어에 돌아오는 과정을 똑같이 처리하지 않는다. 소설의 「샤이어의 정화」에서는 돌아온 호빗들이 고향을 장악한 세력에 맞서야 한다. 긴 원정을 끝냈다고 마지막 행동의 바카라임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바깥세상에서 얻은 경험이 고향을 되찾는 과정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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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잭슨의 영화에서는 이 사건이 귀환 이후의 현실로 펼쳐지지 않는다. 그만큼 비교적 온전한 고향과 달라진 귀환자의 상태가 또렷하게 대비된다. 같은 인물의 귀향을 말하더라도 소설의 고향 해방과 영화의 조용한 술집 장면을 하나의 연속된 장면처럼 섞으면 곤란하다. 각 판본이 귀환 뒤에 남겨 둔 과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성장도 두 가지 모습으로 나뉜다. 이전에는 해결하지 못했을 일을 이제 해낼 수 있다는 성장이 있다. 예전의 생활이 더 이상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변화도 있다. 귀향은 그 사람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확인할 수도 있고, 강해진 뒤에도 해결되지 않는 손실을 보여 줄 수도 있다.


관객이 후자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도 이해할 만하다. 긴 위험을 견뎠다면 편히 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쉴 자격이 있다는 말은 곧바로 쉴 수 있다는 보장이 아니다. 작품은 그 간격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보여 주느냐에 따라 귀환 이후의 시간을 설득한다.


기다린 사람에게도 확인할 권리가 있다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가 이타카에 도착했다고 귀향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집을 차지한 구혼자들을 상대해야 하고, 페넬로페와도 다시 만나야 한다. 특히 페넬로페가 그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영웅의 신분을 선언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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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침대를 옮기라는 말을 꺼내 그의 반응을 살핀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만든 침대가 살아 있는 올리브나무에 기초해 있어 함부로 옮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 비밀을 설명하는 순간, 그의 대답은 다른 사람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공동생활의 기억이 된다. 이 확인은 작품 제23권에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오디세이아〉 제23권


이 장면에서 페넬로페는 보상처럼 대기하던 인물에 머물지 않는다. 그녀에게도 오랜 부재를 견딘 시간이 있고, 돌아온 사람을 확인할 판단이 있다. 오디세우스가 자신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듯, 페넬로페도 그 설명을 믿을 근거가 필요하다. 재회는 한 사람이 도착하는 행동과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는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침대라는 사물도 중요하다. 전쟁의 무용담이나 항해의 성취보다 두 사람이 함께 살던 공간에 관한 지식이 결정적이다. 바깥세상에서 무엇을 해냈는가와 이 집에서 누구였는가는 같은 질문이 아니다. 귀환자가 자신의 옛 관계로 돌아가려면 후자의 질문에도 답해야 한다.


물론 이 고전의 부부 관계를 오늘날의 평등한 관계와 그대로 동일시할 수는 없다. 다만 기다린 사람의 판단을 서사에서 생략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귀향 장면에서 남아 있던 사람을 지우면, 돌아온 사람이 되찾고 싶어 하는 생활의 절반도 함께 지워진다.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도 충분한 결말이 된다

귀향 뒤에 반드시 불화와 상처가 있어야 좋은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1939년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는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낯선 세계의 친구들과 모험이 소중했다고 해서 그곳에 영원히 머물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익숙한 사람들 곁으로 돌아오는 선택도 그 여정을 거친 뒤에 새로 확인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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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결말의 힘은 출발점이 완벽했다는 주장에 있지 않다. 평소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관계가 떨어져 지내는 동안 다른 의미를 얻는 데 있다. 집에 돌아오고 싶다는 소망이 충분히 축적되었다면, 잠에서 깨어 사람들을 다시 보는 장면만으로도 결말이 성립한다. 반드시 마지막에 새로운 불행을 덧붙일 필요는 없다.


반대로 새로운 세계에 남는 선택이 귀향 이야기의 끝이 될 수도 있다. 〈아바타〉의 제이크는 나비족과 함께 살아갈 쪽을 택한다. 이 경우 처음의 소속이 언제나 최종 목적지라는 전제가 바뀐다. 어디에서 출발했는가보다 지금 어떤 관계와 삶을 선택하는가가 정착의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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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집을 원래 살던 주소 하나로만 정의하면 서로 다른 결말을 읽기 어렵다. 옛집으로 돌아가는 인물도 있고, 돌아왔다가 떠나는 인물도 있고, 다른 곳을 자기 집으로 삼는 인물도 있다. 어느 선택이 더 성숙한지를 미리 정하기보다, 작품이 그 선택까지 어떤 경험과 관계를 쌓았는지를 살펴야 한다.


귀환을 짧게 넘길 때 사라지는 것

많은 모험담은 목적을 이룬 뒤의 귀로를 빠르게 처리한다. 갈 때 만난 위험을 돌아올 때 똑같이 반복하면 사건이 늘어질 수 있다. 몇 번의 이동 장면이나 짧은 재회만으로 귀환을 마쳐도 관객은 충분히 이해한다. 돌아오는 길이 생략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결함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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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동의 생략과 적응의 생략은 다른 선택이다. 집에 어떻게 도착했는지를 줄이는 것은 여정의 속도를 조절한다. 집에 도착한 뒤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줄이는 것은 이야기의 결론을 바꾼다. 모든 관계가 저절로 복구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귀환 이후를 보여 주려면 새로운 대사보다 반복되는 생활이 유용하다. 식탁에서 누구와 앉는지, 어느 방에서 잠드는지, 예전에 하던 일을 다시 할 수 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거창한 환영식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변화가 다음 날의 식사에서 드러날 수 있다. 익숙한 행동의 작은 차이가 긴 모험의 결과를 보여 준다.


이때 귀환자를 언제나 현명하고 고향 사람들을 언제나 무지하게 그리면 변화의 의미가 좁아진다. 멀리 다녀온 경험이 남아 있던 사람의 삶을 평가할 자격까지 주지는 않는다. 돌아온 사람도 배워야 한다. 자신이 없던 동안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겪었고 어떤 생활을 만들었는지 알아야 다시 함께 살 수 있다.


끝난 모험과 시작되는 생활

척의 귀환이 아픈 것은 살아남은 일이 무의미해서가 아니다. 살아남았기에 이제는 이전과 다른 미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도가 떠나는 결말도 세계를 구한 일을 취소하지 않는다. 그 승리와 함께 남은 손실을 지우지 않을 뿐이다.


반면 샘과 도로시에게 돌아온 집은 다시 살아갈 곳이 된다. 같은 귀향이라도 도착 뒤의 생활은 달라질 수 있다. 그 차이를 인정하면 행복한 귀환과 쓸쓸한 귀환을 어느 한쪽이 더 진실한 결말이라고 겨룰 필요가 없다. 인물의 경험에 맞는 끝을 찾으면 된다.


모험은 위험한 장소를 벗어나며 끝날 수 있다. 생활은 그다음 날에도 계속된다. 귀향의 마지막 장면이 설득력을 얻는 순간은, 돌아왔다는 사실에 더해 그 사람이 이제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보일 때다.


함께 읽는 15가지 클리셰와 트롭스

다시 만나겠다는 약속 — Reunion Vow: 재회가 불확실한 이별 앞에서도 언젠가 다시 만나겠다고 맹세한다.〈디지몬 어드벤처〉: 아이들은 디지털 월드를 떠나면서 헤어지는 파트너들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집으로 향하는 여정 — The Homeward Journey: 새로운 목적지의 정복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모험의 중심이 된다.〈오디세이아〉: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 이후 이타카에 돌아가기까지 긴 여정을 겪는다.

다시 찾은 안식처 — Home Sweet Home: 긴 고난 끝에 집이나 새 보금자리에서 평온한 생활을 얻는다.〈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샘은 샤이어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결말을 맞는다.

기쁨과 상실이 남는 결말 — Bittersweet Ending: 중요한 성취가 이루어져도 되돌릴 수 없는 손실이 함께 남는다.〈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반지는 파괴되지만 프로도는 샤이어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난다.

집만 한 곳은 없다 — There’s No Place Like Home: 낯선 세계의 경험을 거쳐도 집으로 돌아가려는 바람이 이야기의 중심을 지킨다.〈오즈의 마법사〉: 도로시는 오즈에서 만난 친구들과 헤어져 캔자스로 돌아간다.

돌아갈 수 없는 고향 — You Can’t Go Home Again: 고향의 상실이나 접근 불가능한 상황 때문에 원래 살던 곳으로 귀환할 수 없다.〈스타워즈: 새로운 희망〉: 루크는 불탄 농장과 숙부 부부의 죽음을 확인한 뒤 이전 생활로 돌아갈 곳을 잃는다.

돌아온 참전 군인 — Returning War Vet: 전쟁을 겪고 귀환한 군인의 경험과 기술이 이후의 사건에 영향을 준다.〈람보〉: 전쟁에서 돌아온 람보는 작은 마을의 충돌 속에서 군에서 익힌 능력을 사용한다.

전쟁의 충격이 남은 군인 — Shell-Shocked Veteran: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 경험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는 군인을 그린다.〈람보〉: 구금 과정에서 받은 자극이 람보에게 전쟁 중의 폭력적인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다른 시대의 이방인 — Fish out of Temporal Water: 자신에게 익숙한 시대를 벗어나 달라진 생활과 규칙에 적응해야 한다.〈퍼스트 어벤져〉: 스티브 로저스는 깨어난 뒤 자신이 알던 시대가 오래전에 지나갔음을 알게 된다.

오래 기다린 재회 — Big Damn Reunion: 긴 이별과 위험 뒤의 만남을 큰 감정적 성취로 보여 준다.〈머나먼 여정〉: 피터는 돌아오지 못한 줄 알았던 섀도를 마침내 다시 만난다.

어린 시절의 집을 다시 찾다 — Childhood Home Rediscovery: 잊거나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장소를 찾아 과거와 다시 마주한다.〈카우보이 비밥〉: 페이는 옛집이 있던 자리를 찾아가 남아 있지 않은 생활의 흔적을 더듬는다.

여기에 남겠다는 선택 — I Choose to Stay: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보다 새로 만난 세계와 관계 속에 남기로 한다.〈아바타〉: 제이크는 인간의 기존 소속보다 나비족으로 살아갈 미래를 택한다.

정당한 왕의 귀환 — Rightful King Returns: 정통성을 가진 통치자가 돌아와 빼앗기거나 비어 있던 왕위를 되찾는다.〈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아라고른은 전쟁이 끝난 뒤 왕으로 즉위한다.

짧게 지나가는 귀로 — Boring Return Journey: 위험했던 출발 여정과 달리 돌아오는 과정은 빠르게 요약되거나 생략된다.〈호빗: 다섯 군대 전투〉: 빌보가 샤이어로 돌아오는 길은 앞선 모험에 비해 짧게 처리된다.

고향에 남겨 둔 연인 — My Girl Back Home: 먼 곳에 있는 인물에게 고향의 연인은 기다림과 귀환의 중요한 이유가 된다.〈오디세이아〉: 페넬로페와의 재회는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돌아가려는 바람의 중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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