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법 집행관이 살인 사건을 조사하러 아파트에 들어간다. 용의자를 붙잡았으니 데리고 나오면 될 것 같다. 그런데 건물 전체가 봉쇄된다. 이곳을 지배하는 범죄조직의 두목이 그들을 죽이라고 명령한 것이다.
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 <드레드>의 한 대목이다. 드레드와 신참 앤더슨의 직함은 ‘판사’다. 이 세계에서 판사는 현장에 나가 범인을 붙잡고, 유죄를 판단하고, 처벌까지 집행한다. 도시의 법을 직접 행사하는 두 사람이 범죄조직의 구역에 들어온 셈이다.
그들이 갇힌 피치 트리스는 200층짜리 거대한 주거 건물이다. 두목 마마는 부하가 붙잡히자 건물을 봉쇄한다. 드레드와 앤더슨에게는 빠져나가야 할 전장이지만, 주민들에게는 집이다. 두 사람을 잡겠다는 명령에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출입까지 막힌다.
범죄영화에서 익숙하게 보던 사건이 여기서 조금 달라진다. 악당이 경찰을 피해 도망가지 않는다. 자기 구역을 닫고, 들어온 경찰을 사냥한다. 누군가는 출근해야 하고, 누군가는 가족에게 돌아가야 하겠지만, 그런 사정은 봉쇄를 멈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조직폭력배가 등장하는 작품을 볼 때 우리는 흔히 보스를 먼저 본다. 얼마나 잔인한가. 누구를 배신했는가. 주인공보다 얼마나 강한가. 그런데 잠깐 주민 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다른 이야기가 보인다. 그곳에서는 누가 가게를 열 수 있고, 누구의 눈치를 보며 길을 건너며, 어려운 일이 생기면 누구에게 사정해야 하는가.
범죄조직이 도시의 정부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주민들이 일상의 결정을 그 조직의 허락에 맞춰야 할 때다. 흥미로운 것은 이 소재가 늘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로만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어느 영화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뜻밖의 영웅이 되고, 어느 만화에서는 초밥을 먹는 방법이 목숨을 건 문제가 된다.
주성치의 <쿵푸허슬>은 무술과 코미디를 섞은 영화다. 주인공 신은 도시를 휘어잡는 도끼파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청년이다. 그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돼지촌에 들어와 소동을 일으키면서, 주민들과 도끼파의 충돌이 시작된다.
돼지촌에서는 사람들이 일하고 먹고 씻고 서로 간섭한다. 집주인은 호통을 치고, 이웃들은 티격태격한다. 이 소란에 익숙해질 무렵, 동네는 뜻밖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작진의 설명에 따르면 돼지촌에는 쌀집과 식당, 이발소와 양복점 같은 생활 상점이 배치된다. 이 밀집된 주거 공간은 도끼파의 화려한 카지노와 대비된다. 주성치는 평범하게 지내던 이웃이 실은 무술 고수였다는 어린 시절의 기억도 이야기한다. 영화 속 황당해 보이는 설정에 실제 이웃에 대한 기억이 들어 있는 것이다.
싸움이 시작되자 평범하게 보였던 주민들 가운데 무술 고수들이 드러난다. 시끄러운 집주인 부부에게도 숨겨진 실력이 있다. 관객이 조금 전까지 우스워하며 보던 사람들이 갑자기 믿음직해진다. 겉모습만 보고 만만하게 여겼던 도끼파도 사람을 잘못 건드린 셈이 된다.
이 반전은 강한 사람이 등장해서만 통쾌한 것이 아니다. 이미 얼굴을 익힌 이웃이 동네를 지킬 사람으로 바뀐다. 처음 볼 때에는 숨은 실력에 놀라고, 그 사실을 알고 다시 볼 때에는 평범한 척 살아가는 모습 자체를 즐길 수 있다. 같은 인물을 두 번 다르게 보는 재미다.
도끼파는 자기 조직의 체면을 걸고 싸운다. 주민들은 장사하고 살아가던 곳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래서 액션 장면의 주변부에도 마음이 간다. 부서지는 가게에서는 조금 전까지 누군가 일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내다보는 복도와 창문도 얼굴을 아는 이웃들이 사는 곳이다. 앞에서 웃으며 구경한 생활이 싸움 장면에 들어와서는 응원할 이유가 된다.
돼지촌의 소란은 그렇게 두 가지 일을 한다. 인물들의 우스운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이 계속 살아갔으면 하는 동네를 만든다. 시끄럽고 가난하더라도 도끼파에게 넘겨주고 싶지는 않은 곳이다.
돼지촌에서는 주민 사이에 숨어 있던 힘이 밖으로 나온다. <드레드>의 피치 트리스에서는 이미 주민을 지배하던 힘이 건물 전체를 움직인다.
마마가 붙잡힌 부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건물을 봉쇄하는 순간, 익숙한 장소가 무서워진다. 집의 안전을 위해 존재할 법한 문과 벽이 집 안의 사람을 가두는 데 쓰인다. 외부의 위험을 막아줄 것 같던 건물에서 위험한 사람과 함께 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동네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이라면 다른 길로 돌아갈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다. 수직으로 쌓인 주거 건물 안에서는 이동할 통로가 정해져 있다. 어느 층에 있는지, 위아래로 움직일 수 있는지, 다음 통로에 누가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관객도 두 사람을 따라가며 머릿속으로 빠져나갈 길을 찾게 된다.
봉쇄 직전까지 두 사람은 용의자를 데려가려던 쪽이었다. 봉쇄 뒤에는 자신들이 사냥당하는 쪽이 된다. 마마의 한 번의 명령으로 추격하는 사람과 쫓기는 사람의 자리가 뒤집힌다. 영화가 긴장감을 만드는 데 건물 전체를 쓰고 있다는 뜻이다.
그 안에는 사건과 관계없는 주민들도 있다. 그들은 갱단의 거래에 참여해서 위험해진 것이 아니다. 그곳에 산다는 이유로 위험해진다. 총격전을 보며 두 사람이 살아남기를 바라다가도, 저 벽 너머가 누군가의 방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싸움의 규모가 다르게 느껴진다.
돼지촌과 피치 트리스는 모두 사람들의 집이다. 돼지촌에서는 동네 사람을 다시 보게 되는 반전이 통쾌함을 만든다. 피치 트리스에서는 집을 둘러싼 벽과 문을 다시 보게 되는 변화가 답답함과 공포를 만든다. 건물의 모양과 그 안에서 가능한 행동을 함께 보면, 두 영화의 액션이 왜 다른 기분을 남기는지 이해할 수 있다.
드레드 자신에게도 불편한 점이 있다. 그는 범인을 붙잡은 뒤 다른 사람의 재판에 맡기는 인물이 아니다. 죄를 판단하고 처벌할 권한까지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마마와의 싸움에서 그를 응원하면서도, 그가 법을 집행하는 도시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을지는 망설이게 된다. 영화는 살아남았으면 하는 영웅과, 함께 살고 싶은 이웃이 꼭 같은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남긴다.
출입문을 잠그는 대신 식탁을 지배하는 두목도 있다. 앤서니 부르댕과 조엘 로즈가 쓰고 랭던 포스가 그린 만화 <Get Jiro!>다. 가까운 미래의 로스앤젤레스에서 유명 셰프들은 범죄조직의 우두머리처럼 도시를 지배한다.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도시가, 음식을 둘러싸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도시가 되어 있다.
도시를 나누어 지배하는 두 세력의 차이부터 심상치 않다. 한쪽은 세계 여러 지역의 요리를 결합하고, 다른 쪽은 유기농과 채식 같은 식생활 원칙을 고집한다. 양쪽 모두 뛰어난 스시 요리사 지로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보통 음식 이야기라면 취향의 차이로 끝날 일이, 여기서는 어느 조직에 들어갈 것인지의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지로가 음식 전쟁에 휘말린 선량한 장인인 것은 아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한 사건에서 손님은 간장에 와사비를 섞고 초밥 밥을 푹 적신 뒤 캘리포니아롤을 주문한다. 지로는 자기 음식 예절을 어긴 손님의 목을 벤다. 옆의 손님은 그 광경에 겁을 먹으면서도 초밥을 계속 먹는다.
식당에서 취향이 까다로운 사람을 만나본 경험이 있다면 이 과장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알 수 있다. 먹는 순서나 간장 찍는 방법을 알려주던 사람이, 그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목숨까지 빼앗는다. 사소하게 느껴지는 잘못과 터무니없이 큰 처벌 사이에서 잔혹한 농담이 생긴다. 옆자리의 손님이 끝내 초밥을 놓지 않는 모습은 이 도시 사람들이 음식에 얼마나 사로잡혀 있는지 한 번 더 과장한다.
부르댕은 이 작품에 관한 인터뷰에서 음식 선택이 정치화되고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방식을 풍자했다고 설명한다. 쉽게 말하면 무엇을 먹느냐로 어느 편 사람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자신의 취향과 편견도 풍자의 대상에 넣었다고 한다. 요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느 순간 남을 심판하는 태도가 되는지, 만든 사람 자신에게도 겨누는 농담이다.
이 장면을 알고 나면 지로를 영입하려는 두 세력도 다르게 보인다. 솜씨 좋은 요리사를 얻는 일은 손님을 더 모으는 경쟁인 동시에, 자기편의 영향력을 키우는 일이다. 지로는 자기 방식대로 요리하고 싶어 하지만, 그 역시 손님이 자기 방식대로 먹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조직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사람에게도 작은 독재자의 면모가 있는 셈이다.
범죄조직의 세력 다툼이라는 익숙한 이야기에 음식 취향이 들어오자, 편을 고르는 재미도 꼬인다. 어느 요리가 더 맛있을지는 상상할 수 있어도, 어느 요리사의 규칙 아래에서 살고 싶은지는 선뜻 답하기 어렵다. 지로의 솜씨를 감탄하며 볼 때조차 그의 식당에 앉고 싶지는 않을 수 있다.
돼지촌에서는 이웃의 숨은 실력이 통쾌함을 만들고, 피치 트리스에서는 갇힌 공간이 긴장감을 만든다. 지로의 도시에서는 우리가 아는 음식 예절이 터무니없이 커지면서 웃음과 불편함을 함께 만든다. 범죄조직이 생활을 지배한다는 공통점은 같아도, 무엇을 생활의 중심에 놓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된다.
이번에는 도시 전체의 생활이 무너진다. 만화 <배트맨: 노 맨스 랜드>에서 배트맨이 활동하는 도시 고담은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는다. 정부는 도시를 포기하고 외부와 연결된 다리를 끊는다. 주민들은 집을 떠나거나 고립된 도시에 남아야 한다. 남은 도시에서는 범죄조직들이 영역을 나누고, 음식과 거처, 전기가 귀중한 자원이 된다.
평소라면 배트맨이 악당을 붙잡은 뒤 경찰이 뒷일을 맡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 여기서는 그 기대부터 흔들린다. 고담의 경찰을 이끄는 고든과 남은 경찰들도 자기 구역을 지키며 다른 세력과 경쟁하는 처지가 된다. 경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도 도시 전체를 보호할 힘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이 시기의 한 이야기에서는 피난처마저 위험해진다. 사람들의 공포를 이용하는 악당 스케어크로는 피난민들이 모인 시설에서 심리 조작을 벌여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 재난을 피해 모인 사람들이 함께 버텨야 할 곳을 공격하는 것이다.
피난민 시설이라는 장소를 알고 보면 악당의 행동이 더 섬뜩해진다. 그 안의 사람들은 이미 살던 집이나 생활을 잃었을 수 있다. 이제 서로를 의심하고 다투게 된다면, 어렵게 찾은 피난처에서도 안심할 수 없다. 스케어크로가 흔드는 것은 사람의 마음과, 그 사람들이 함께 머물 수 있는 환경이다.
그래서 여기서 고담을 구한다는 말에는 할 일이 더 붙는다. 악당의 계획을 막는 동안에도 주민에게는 오늘 먹을 것과 잠잘 곳이 필요하다. 한 거리에서 영웅이 싸우는 동안 다른 거리에서는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배트맨이 아무리 강해도 동시에 모든 곳에 있을 수는 없다.
이런 변화를 따라가는 것은 익숙한 영웅을 새롭게 읽는 방법이기도 하다. 배트맨의 능력이 그대로여도, 그를 둘러싼 도시가 달라지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바뀐다. 고담은 영웅과 악당이 싸우는 배경인 동시에,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결정하는 곳이다.
<드레드>에서는 갱단 두목이 건물의 문을 닫았다. 여기서는 정부가 도시로 이어지는 다리를 끊는다. 문을 닫은 주체와 이유는 다르지만, 안에 남은 사람은 가까이 있는 권력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범죄조직의 말을 따르는 주민이 모두 그 조직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당장 그 구역에서 먹을 것과 잠잘 곳을 구해야 한다면, 겉으로 보이는 복종에도 사정이 생긴다.
그렇다면 범죄조직이 주민의 사정까지 들어주면 어떨까. 폭력을 휘두르는 대신 장사가 어려운 가게의 부담을 줄이고, 아픈 가족이 치료받을 곳을 알려준다면. C. M. 콘블루스의 소설 <The Syndic>은 이런 예상 밖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소설 속 북아메리카에서는 범죄조직들이 기존 정부를 몰아내고 영역을 나누어 지배한다. 주인공 찰스가 하는 일은 보호비를 걷는 것이다. 보호비란 조직이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가게 등에 요구하는 돈이다. 이 세계에서는 그런 조직이 이미 나라를 다스리는 자리에 있다.
한 주점 주인이 장사가 어려워 정해진 돈을 내기 힘들다고 하자, 찰스는 그 주에 받을 금액을 줄인다. 어려움이 계속되면 장부를 보고 정기적인 감액도 검토하겠다고 한다. 아픈 가족에게는 의료센터에서 자기 이름을 말해 보라고 권한다.
돈을 걷으러 온 조직원이 가게 주인과 사정을 조율하고 있다. 범죄조직이라는 말에서 예상했던 장면과 조금 어긋난다. 읽는 동안 찰스를 친절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고, 가게의 형편을 판단하는 담당자로 볼 수도 있다. ‘보호비’라고 부르던 돈이 세금처럼 느껴지는 순간, 이 세계가 우리가 아는 슬롯와 어디까지 비슷하고 어디서 다른지 궁금해진다.
여기서 떠올릴 수 있는 질문은 감면액의 크기보다 감면을 받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사정이 어려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기준으로 덜 낼 수 있는가. 아니면 찰스 같은 담당자의 호의를 얻어야 하는가. 친절한 사람을 만났다는 안도감과, 그 사람의 기분에 생활을 맡겨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은 함께 생길 수 있다.
소설은 다른 조직이 지배하는 지역의 생활도 보여준다. 그곳의 노동자 올리버는 의료비 지원을 거절당해 빚을 지고,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한다. 이동하려면 통행증도 필요하다. 같은 범죄조직의 통치 아래에 있어도 아플 때 누구를 찾아갈 수 있는지, 어디까지 자유롭게 갈 수 있는지가 다르다.
그러던 올리버가 해안에서 찰스와 그의 동행인 리를 발견한다. 두 사람은 적대 조직의 배에 갇혔다가 탈출해, 호수를 건너 지친 상태다. 찰스는 자신들을 도우면 곤란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올리버는 그래도 음식과 옷, 숨을 곳을 제공한다. 그림을 그리던 기술로 통행증까지 위조한다.
돈을 걷으며 남의 사정을 판단하던 찰스가 이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올리버는 자기 문제로도 벅찬 사람이지만, 두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무기를 잘 다루는지보다 통행증을 제대로 그릴 수 있는지가 절실해지는 순간이다.
이 대목에서 통행증도 두 번 다르게 보인다. 처음에는 올리버의 이동을 제한하는 서류였다. 그가 펜을 들자 두 사람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된다. 생활을 통제하던 물건이, 그 모양을 알고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의 손에서 탈출을 돕는다. 돼지촌의 평범한 이웃에게 숨은 무술이 있었듯, 이 소설에서는 지친 노동자의 기술이 예상 밖의 힘을 발휘한다.
이 작품들을 보고 나면 액션 장면에서 눈길이 머무는 곳이 조금 늘어난다. 누가 더 강하게 때리는지 보다가, 그들이 싸우는 가게의 주인은 어디로 갔을지 생각하게 된다. 주인공을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고마운 조연이라는 생각에 앞서, 어떤 생활을 하던 사람이 무슨 마음으로 나섰는지 궁금해진다.
그런 관심이 싸움의 재미를 줄이지는 않는다. 가게에서 일하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면 그가 몸을 내놓는 순간을 더 응원하게 된다. 통행증이 왜 필요한지 알면 종이에 선을 긋는 손에도 마음을 졸일 수 있다. 작은 사정 하나를 이해하고 나면, 전에는 지나쳤던 장면이 이야기의 중요한 순간으로 다가온다.
처음의 피치 트리스로 돌아가 보자. 문이 닫히면 여전히 드레드와 앤더슨이 걱정된다. 이번에는 그 문을 집으로 드나들던 사람들도 함께 떠오른다. 두 사람이 떠난 뒤에도 그곳에서 생활할 사람들이다. 문이 다시 열리는 장면을 기다리는 동안, 탈출에 성공한다는 것과 평범하게 집을 나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 일인지 생각하게 된다.
도시를 차지하려는 야망 — Take Over the City: 한 도시의 지배권을 차지하는 것이 악당이나 조직의 목표가 된다.〈워리어스〉: 갱단 지도자 사이러스는 여러 조직을 모아, 서로 싸우는 대신 힘을 합쳐 뉴욕을 장악하자고 제안한다. 골목의 싸움이 도시 전체를 향한 야망으로 커진다.
이 도시의 진짜 주인은 나다 — I Own This Town: 공식 직함과 관계없이, 한 인물이 도시의 권력과 사람들을 사실상 좌우한다.〈갱스 오브 뉴욕〉: 갱단 두목 빌은 선거로 보안관이 된 몽크를 공개적으로 살해한다. 시민의 투표보다 자신의 폭력이 우위에 있다는 선언이다.
보호를 빌미로 한 갈취 — Protection Racket: 안전을 제공한다며 대가를 요구하지만, 거절했을 때 가장 먼저 위협하는 것도 그들이다.〈벅스 라이프〉: 메뚜기 두목 호퍼는 상납받을 식량이 사라지자 개미들을 위협한다. 주민이 생산하고 무장한 집단이 가져가는 관계가 곤충들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동네를 보살피는 범죄조직 — Neighbourhood-Friendly Gangsters: 범죄조직이 자기 지역 주민을 보호하거나 생활상의 도움을 제공한다.〈The Syndic〉: 보호비를 걷는 찰스는 주점 주인의 사정을 듣고 금액을 낮추며 의료센터까지 안내한다. 돈을 거두는 사람이 민원도 해결한다는 점이 묘한 설득력을 만든다.
범죄에 가담하는 경찰 — Dirty Cop: 법을 지켜야 할 경찰이 돈이나 권력을 위해 불법행위에 가담한다.〈배트맨 비긴즈〉: 형사 플래스는 노점상에게서 돈을 뜯고, 동료 고든에게도 부패에 동참하라고 권한다. 주민에게 경찰과 범죄자의 차이가 흐려지는 순간이다.
회사 하나가 지배하는 마을 — Company Town: 하나의 회사가 일자리와 주거, 상업을 장악해 주민의 생활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강철의 연금술사〉 원작 만화: 탄광도시 유스웰에서는 요키가 광산과 행정 권력을 함께 쥐고 주민을 착취한다. 에드워드가 광산의 권리를 주민에게 넘기는 일은 생계의 주인을 바꾸는 사건이다.
국가와 맞먹는 사조직 — N.G.O. Superpower: 국가에 속하지 않은 조직이 막대한 자원과 군사력을 갖고 독자적으로 움직인다.〈레지던트 이블 2〉: 제약회사 엄브렐라는 자체 특수부대를 보내 연구자 윌리엄 버킨을 공격하고 바이러스를 확보하려 한다. 기업의 이해관계가 군사작전으로 집행된다.
무법자들의 소굴 — Wretched Hive: 범죄와 부패, 폭력이 일상에 깊이 스며든 위험한 장소다.〈스타워즈: 새로운 희망〉: 루크와 오비완이 운송편을 구하러 간 모스 아이슬리의 술집에서는 시비가 곧 칼부림으로 번진다. 짧은 소동만으로 이 동네의 생활 규칙이 전달된다.
범죄조직들의 구역 전쟁 — Mob War: 범죄조직들이 영토와 사업, 지배권을 놓고 본격적인 무력 충돌을 벌인다.〈배트맨: 노 맨스 랜드〉: 고립된 고담에서 범죄조직들은 구역을 나누어 다투고, 고든과 남은 경찰도 영역을 확보하며 맞선다. 도시 지도가 세력들의 전선으로 바뀐다.
감시와 강압으로 유지되는 국가 — Police State: 경찰과 보안기관이 감시와 처벌을 통해 주민의 생활과 자유를 억압한다.〈브이 포 벤데타〉: 통행금지 시간에 외출한 이비는 비밀경찰에게 위협받다가 V에게 구조된다. 평범한 밤길 하나가 시민의 자유가 얼마나 좁아졌는지 보여준다.
판결부터 처형까지 한 사람에게 — Judge, Jury, and Executioner: 한 인물이나 조직이 유죄 판단과 형벌 결정, 집행을 모두 맡는다.〈드레드〉: 드레드는 범죄조직의 두목 마마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직접 집행한다. 범죄자를 처벌하는 통쾌함과 한 사람에게 집중된 권력을 함께 보게 된다.
아무도 나갈 수 없는 봉쇄 — Lockdown: 출입 통로를 닫아 특정 장소에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게 만든다.〈드레드〉: 마마는 부하의 연행을 막으려고 피치 트리스 건물을 봉쇄한다. 주민의 집이 거대한 감옥으로 바뀌면서, 출입문을 통제하는 힘이 곧 통치권이 된다.
취향이 목숨 걸 일이 될 때 — Serious Business: 일상의 취향이나 놀이를 통상적인 중요성을 훨씬 넘어서는 중대사로 취급한다.〈Get Jiro!〉: 서로 다른 음식 철학을 내세운 셰프 세력들이 지로를 영입하려 다툰다. 무엇을 먹느냐는 취향이 어느 권력에 속하느냐는 문제로 커진다.
잘못에 비해 지나친 응징 — Disproportionate Retribution: 상대의 잘못이나 무례에 비해 터무니없이 무거운 처벌과 보복을 가한다.〈Get Jiro!〉: 지로는 스시를 먹는 방식과 주문으로 심기를 거스른 손님을 참수한다. 음식 예절과 살인 사이의 엄청난 간격이 웃음과 섬뜩함을 동시에 만든다.
우스워 보였던 이웃의 숨은 실력 — Crouching Moron, Hidden Badass: 얼빠지거나 우스꽝스럽게 보이던 인물이 위험 앞에서 뜻밖의 뛰어난 능력을 드러낸다.〈쿵푸허슬〉: 아내에게 구박받던 집주인 남편이 강력한 무술 실력을 드러내며 적과 싸운다. 웃음거리였던 이웃이 동네를 지킬 사람으로 다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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