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꿈꾸고 있는 관찰자
방금 예약된 글을 작업하면서 내가 왜 이렇게 빠져 들어 헤매고 있는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냥 운 좋게 신문사 들어가서 성장하고 그러고 칼럼니스트나 논설위원이 되고 싶었다.
2000년이 다가오는 시점, 난 학교 근로장학생으로 복학해서 교수님들의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일종의 집사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운 좋게 연락되는 명예교수님은 그 당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셨고, 언제나 원고지에 펜을 들어 한 신문사의 칼럼을 연재하셨다. 어찌나 그 모습이 지적이면서 동경했는지 모른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일주일 간의 신문과 뉴스를 보면서 어떤 자신의 생각만으로 글을 기고하고 그것이 신문에 나오는 것이 얼마나 내가 부러워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맞춤법 검사는 내 몫으로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사뭇 강의하실 때의 열정과는 다른 차가움에 간혹 놀라면서도 그렇게 깊이 세상을 보고 계셨다.
난 그런 생활을 동경하다 작은 신문사에 들어갔다. 거기서 발행인 겸 사장인 나이를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분이 원고지와 펜과 담배를 가지고 벌이는 숙고 과정을 잠시나마 먼 언저리에서 보면서 나도 그곳까지 갈 수 있을까? 라며 동경했던 그 시절! 난 학창 시절, 그 교수님을 항상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견디면서 빨리 모든 것을 흡수하고자 노력했다.
난 다른 사유로 지금 백수가 되어 그냥 노트북 화면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그저 그런 삶보다 못하는 것 같은 세월의 무게가 적어도 나에게는 슬롯를 조금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해 주었고, 난 남들과는 다르게 이렇게 돌아서 다시 이 자리로 왔다. 운 좋게도 전혀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처럼...
지금 쓰는 글은 칼럼은 아니지만, 아마 이 글이 공개될 때 적어도 내가 처음 쓰는 칼럼이 발간되어 있을 것이다. 궁색한 변명 밖에 못하는 내 신세에 이런 공간이라도 열어준 온라인카지노!
고맙기도 하지만, 아무도 읽어주지 않으리라는 나름 서러움 또한 느끼며 이른 새벽 담배 한 대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