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자도 쓰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
어느 여가수가 그랬던 것처럼
침묵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한소절도 부르지 않으면서 부르는 노래
한 글자도 쓰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
잉크 한방울 묻지 않은 글처럼
쓰지 않고 두드리고 있으니 나는 글을 쓴 적이 없다
자음을 두드리면 내 속의 것들이 기어 나오고
모음을 두드리면 네 겉의 것들이 묻어 나오고
가까스로 빗나가지 않을 정도로 두드릴 거에요
글을 북처럼 두드리고 그 두드림 위로 별처럼 글들이 쏟아지고 그 쏟아진 글들을 뒤집어쓰는 것이 글쓰기인가 보다
상대를 두드리지 못한 글들은 다시 내게로 돌아와 목덜미를 잡아당기며 다그친다
줄곧 글쓰기는 봉변을 면하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
거울 앞에 앉아 글을 써야 한다
비스듬히 써야 모양새가 바른 모자처럼 글을 살핀다
쓰는 것과 보는 것이 서로 바깥의 일
한 번 쓰는 것은 두 번 두드리는 일
한 글자도 쓰지 않는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