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사를 알고 나면, 그 사람의 전화가 다르게 들린다
짧은 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가, 어느 순간 그 성장세가 눈에 띄게 완만해진 가상의 플랫폼 회사 '이어'를 김코치가 코칭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회사에서, 왜 어떤 문제는 문제로 불리지조차 못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발견하고 정의하고 해결해 가는지를 총 12편의 에피소드에 담아 정리해 봤습니다.
Prologue에서 나를 찾아온 것은 회사가 아니라 한 사람이었다.
그는 회사의 문제를 정의해서 가져오지 않았다. 그저 아팠고, 그 아픔이 어디서 오는지는 그도 나도 몰랐다. 그를 이해하려면, 그가 매일 아침 출근하는 그 회사부터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편에서는 판단을 잠시 접어두려 한다. "그래서 이 회사가 뭐가 문제다"라는 말은 지양하고자 한다. 대신에 ‘이어’가 어떤 회사인지, 무엇으로 여기까지 왔는지를 수집한 정보와 제공받은 내용들을 있는 그대로 정리하려고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올 장면들이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제자리를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
지난 십수 년간 여러 회사를 곁에서 지켜본 경험을 토대로, ‘이어’라는 회사는 ‘짧은 기간에 크게 성장했다가 어느 순간 멈칫한 회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을 보이는 듯했다.
설립 6년 차
임직원 약 150명
누적 가입자 약 400만 명, 월 활성 사용자(MAU) 약 80만 명
매출 약 220억 원(광고와 유료 멤버십), 영업이익은 손익분기 언저리
모바일 앱 중심, 클라우드 기반, 여러 외부 도구를 조합해 쓰는 환경
이어는 취미와 관심사를 기준으로 사람과 사람을 잇는 커뮤니티 매칭 플랫폼이다.
운동, 독서, 사진, 외국어, 재테크처럼 관심사를 기준으로 그룹이 만들어지고,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 안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앱은 위치를 기반으로 가까운 곳의 사람과 모임을 우선 보여주고, 관심사가 겹치는 사람을 서로에게 추천한다. 온라인에서 대화가 시작되고, 그 대화가 실제 만남으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 이어가 그리는 그림이다.
기본 이용은 무료다. 대신 유료 멤버십에 가입하면 광고가 사라지고, 인기 있는 오프라인 모임에 먼저 신청할 수 있으며, 직접 관심사 그룹을 열고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또한, 운영자는 ‘이어’를 통해 다양한 활동을 하며 사람도 이익도 얻을 수 있다.
회사의 돈은 크게 두 곳에서 나온다. 하나는 앱 안에 붙는 광고와 브랜드 제휴이고, 다른 하나는 매달 결제되는 멤버십 구독료다. 최근에는 오프라인 모임과 클래스에서 발생하는 수수료가 조금씩 더해지고 있다.
물론, 당X처럼 전 국민이 다 아는 서비스는 아니다. 다만 관심사 기반 커뮤니티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는 이름이 꽤 알려져 있고, 한 번쯤 써봤거나 들어본 사람이 적지 않다.
창업 초기의 이어는 조용한 회사였다.
흐름이 바뀐 것은 팬데믹이었다.
사람들이 집에 갇히고, 모임이 끊기고, 얼굴을 맞대는 일이 사라진 시기. 그때 사람들은 화면 안에서라도 자기와 같은 것을 좋아하는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관심사 맞는 사람을 이어주는 ‘이어’가, 운이 좋게 그 자리에 있었다.
혼자 시작한 운동, 혼자 하던 공부, 혼자 보던 영화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필요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한 사람이 들어오면 그가 아는 사람을 데려왔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불렀다.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사람이 사람을 불러왔고, 사용자는 빠르게 늘었다.
**이 시기를 회사 안에서는 이렇게 기억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제품이 제대로 통한 순간." 짧은 기간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고, 그 기억은 지금도 회사의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팬데믹이 끝났다.
사람들이 다시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자, 이어는 온라인에 머물지 않았다. 화면 안에서 이어준 사람들을, 실제 모임과 만남으로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회사는 이 확장을 다음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고, 지금 ‘이어’가 가장 힘을 쏟는 전략 방향이기도 하다.
오프라인 확장은 이런 모습이다.
관심사 그룹의 사람들이 실제로 모일 수 있도록 모임을 열고, 그 모임이 열릴 공간을 카페나 스터디룸, 클래스 공간과 제휴해 보다 쉽게 열 수 있게 돕고, 더불어 사람들이 쉽게 모일 수 있게 안내까지 함께 한다. 그리고, 멤버십 회원에게는 이 모임의 우선 신청권과 할인이 주어진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관계를 오프라인으로 넘기고, 그 오프라인 경험이 다시 멤버십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 이것이 회사가 그리는 다음 그림이다.
지금도 숫자는 나쁘지 않다.
매출은 멤버십과 광고 덕에 여전히 우상향이고, 지표 어디에도 빨간불은 없다. 굳이 찾자면, 신규 유입과 활성 사용자의 증가세가 몇 해 전만큼 가파르지 않다는 것 정도다. 팬데믹 시기에 밀려들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미 앱을 열지 않게 되었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의 수는 그만큼 빠르게 채워지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회사 안에서 이걸 문제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성장이 멈춘 게 아니라 잠깐 숨을 고르는 중이고, 이 정도 규모가 되면 속도는 원래 느려지는 법이라고. 지금은 오프라인 확장이라는 새로운 축이 있으니 곧 다시 오를 거라고. 다들 그렇게 알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어’의 조직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대표 아래에 제품, 개발, 마케팅, 운영, 사업(제휴) 조직이 있고, 각 조직을 맡은 리더와 실무자들이 있다.
제품 조직은 앱에 어떤 기능을 더하고 뺄지를 정하고, 개발 조직은 그것을 만든다. 마케팅 조직은 새로운 사용자를 데려오는 일을 맡아 광고를 집행하고 유입 경로를 관리한다. 운영 조직은 이미 들어온 사용자의 문의와 신고, 불편을 받아 처리하고, 커뮤니티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을 관리한다. 사업 조직은 오프라인 확장을 위해 공간과 브랜드, 클래스 파트너를 붙이고 제휴를 맺는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부지런히 움직인다. 기능을 만들고, 사용자를 데려오고, 문의에 답하고, 제휴를 맺는다. 회의도 많고, 처리해야 할 일도 늘 쌓여 있다. 겉으로 보면 열심히 돌아가는 회사다.
여기서 한 가지만 적어둔다. 새로운 사용자를 데려오는 자리도 있고, 들어온 사용자의 문의를 처리하는 자리도 있다. 그런데 고객과 시장 그 자체를 들여다보고, 그 관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바카라임지는 자리는 이 조직도 위에서 딱히 보이지 않았다. “혹시 이게 문제일까” 싶지만, 이게 문제인지 아닌지는 직접 부딪혀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그전에는 모든 게 의구심에 불과하다.
‘이어’는 자체 데이터 시스템을 크게 갖추고 있지 않다. 그래서 여러 외부 도구를 필요에 따라 조합해 쓴다.
제품 사용 데이터는 Firebase와 Amplitude, 마케팅 데이터는 GA와 각 광고 플랫폼에서, 사용자 문의와 커뮤니티 관리는 SaaS 기반 CS 도구로 처리한다. 결제와 멤버십은 내부 DB와 결제 대행사를 통해 관리한다.
오프라인 모임의 신청과 제휴 관리는 일부 전용 도구에, 일부는 아직 수기와 시트에 의존한다. 도구는 팀마다 필요할 때 하나씩 붙였고, 지금도 그 조합으로 돌아간다. 각 팀은 자기 도구 안의 숫자를 들여다보며 일한다.
그 외에 여타의 스타트업처럼 가장 잘 알려진 태그기반 커뮤니케이션 채널과 도구를 사용 중에 있다.
숫자는 다 봤다. 회사가 어떻게 컸는지도, 지금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도, 조직이 어떻게 생겼고 무슨 도구로 일하는 지도 봤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자료들과 데이터를 조합하여 대략적인 사업 구조, 과정, 흐름과 맥락 등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를 찾아온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아팠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이 회사는 겉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오히려 잘 굴러온 회사에 가깝다. 그래서 더 알 수 없었다. 멀쩡한 회사 안에서 한 사람만 아프다면, 그 사람이 예민한 것일까, 아니면 그 한 사람만 무언가를 먼저 본 것일까. 나는 후자일 가능성을 열어둔 채, 이 회사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나에게 미팅을 요청한 이가 내부에 제안을 넣었고, 그 제안을 회사가 수락해 줬다. 물론, 그들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어떤 문제도 없고, 만들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첫 미팅에서 나를 담당하게 될 C레벨이 해준 말 중에 인상 깊었던 말이다. 그런데, 회사들 중에 문제가 없는 회사는 없다. 오히려 문제가 없다는 회사가 더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그 문제를 인식조차 못하고 있거나, 애써 그 문제를 뒤로 감춰두고 누구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금기처럼 만들어놨을 가능성이 내 경험상 가장 많은 경우의 수로 많았으니까.
앞으로 나올 모든 이야기는 ‘이어’라는 회사 안에서 벌어진다. 방금 정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이어질 내용들을 읽으면, 왜 사람들이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도 무언가 자꾸 어긋나는지, 그 장면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멀쩡해 보이는 회사 안으로 들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장면부터 따라가 본다.
"분명 다들 열심히 하는데, 왜 나아지는 건 손에 안 잡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