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만 아프다고 했다
짧은 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가, 어느 순간 그 성장세가 눈에 띄게 완만해진 가상의 플랫폼 회사 '이어'를 김코치가 코칭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회사에서, 왜 어떤 문제는 문제로 불리지조차 못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발견하고 정의하고 해결해 가는지를 총 12편의 에피소드에 담아 정리해 봤습니다.
마감이 걸린 자료를 붙들고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참이었다. 진동이 세 번쯤 울리도록 두었다가 받았다.
"여보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잠깐의 뜸이 있었다.
"지인에게 김코치님 전화번호를 받았어요. 혹시 통화 괜찮으실까요?"
"네, 괜찮습니다."
"제가 상의드리고 싶은 게 좀 있어서요. 어떻게 연락드리는 게 맞나 한참 고민하다가 전화드렸습니다."
"네,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실까요?"
또 한 번, 이번엔 조금 더 길게 말이 없었다.
"회사 일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데. 혼자서는 정리가 잘 안 돼서요.”
아 그러시면 직접 얼굴 뵙고 이야기 나누시죠. 전화로 할 이야기는 아닌 거 같은데요."
그 말을 하고 키보드에 올려뒀던 손을 수첩으로 옮겨갔다.
"그러시죠. 언제가 편하십니까."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듯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에는 흐트러진 데가 없었다. 옷차림도, 표정도, 자리에 앉는 자세도 단정했다. 나는 내 소개를 먼저 했다. 누군가로부터 소개를 받았다고 해도 그 사람이 나를 정확히 알 리 없었으니까.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이런 자리에서 보통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짧게 설명했다. 그 사람은 자신의 명함을 건네면서 이름과 회사, 맡은 일을 차분히 말했다.
누구의 소개로 왔는지는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정보가 이 사람과의 대화에 오히려 편견을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리해서 말씀드리려고 몇 가지 적어 왔는데."
그러면서 접어 온 종이를 폈다. 최근 몇 달 사이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이 날짜별로 적혀 있었다. 그는 그것을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목소리는 끝까지 차분했다.
그러다 한 대목에서 잠깐 멈췄다.
"이건… 제 팀 얘기인데요."
종이를 쥔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거든요. 열심히 하고요. 그런데 요즘 하나둘 지쳐 가는 게 보입니다. 저도 그렇고요."
그는 종이를 다시 접었다.
"사실 오늘은, 제가 그만두는 게 맞는지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이런 회사에 더 있는 게 의미가 있나 싶어서요."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는 말씀하시는 내용과 말투, 표정에서 좀 다른 부분도 있는 거 같은데요.”
말을 고르는 듯 잠시 뜸을 들였다.
"맞아요. 막상 적어 놓고 말씀드리다 보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닌 것 같네요."
"그럼 추가로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요?"
"그냥… 회사가 좀 나아지면 안 되나. 그 생각이 자꾸 듭니다. 분명 나아지고는 있는데, 정확히는 뭐가 나아지고 있는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고 할까요."
그가 다녀간 뒤, ‘이어’라는 회사를 드러난 자료들을 통해 살펴봤다.
성장한 회사였다. 몇 해 전 짧은 기간에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그 이름을 아는 사람도 많았다. 지금도 수치는 나쁘지 않았다. 매출은 여전히 오르고 있었고, 지표 어디에도 빨간불은 없었다. 굳이 찾자면, 몇 해 전만큼 성장세가 가파르지 않다는 것 정도였다.
회사 안에서 이걸 문제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성장이 멈춘 게 아니라 잠깐 숨을 고르는 중이고, 이 정도 규모가 되면 속도는 원래 느려지는 법이라고. 다들 그렇게 알고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회사에서 회사의 어떤 부분이 아프다고 말한 사람은, 나를 찾아온 그 한 사람뿐이었다.
나는 아직 '이어'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지금도 모른다.
내가 가진 건 한 사람이 정성 들여 적어 온 종이 한 장 속 내용과 "회사가 전보다 나아지면 안 되나"라는 의지가 담긴 말뿐이다. 그가 원인을 알고 온 것도 아니었다. 그는 회사 생활에서 고통을 느끼고 있었고, 그 아픔이 어디서 오는지는 그도 나도 몰랐다. 다만, 그 고통을 계속 느끼기는 힘들다고 판단해서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가에 대해 상의하러 온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뭔가 후퇴하는 느낌 같아서 아직 회사 안에서 해볼 수 있는 것을 찾아 해봐야 한다는 마음도 함께 갖고 있었다. 이른바 내적 갈등.
이 시리즈는 "이어는 이런 회사였고, 이렇게 하면 됐다"라고 말하려고 쓰는 게 아니다.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해, 멀쩡해 보이는 회사 안에서 왜 한 사람만 아팠는지를 옆에서 따라가며 알아낸 기록에 가깝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를 발견, 확인, 정의하고, 이를 토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담아낼 계획이다.
독자들은 읽다 보면 익숙한 장면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여전히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회사, 아무도 문제라고 부르지 않는 정체, 그리고 그 안에서 혼자 이상하다고 느끼는 누군가. 어쩌면 그 누군가가 당신일 수도 있다.
이어는 짧은 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뒤, 성장세가 눈에 띄게 꺾였다. 그러나 회사 안에서 이 정체를 '문제'로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참고로 가장 위험한 위기는 위기처럼 보이지 않는다. 수치가 아직 나쁘지 않을 때, 경보는 울리지 않는다.
이때 유일한 경보는 한 사람의 통증이었다. 그마저도 회사에서 바카라임 있는 자리에 있는 이가 아니라, 중간 이상급에 있는 이가 느낀 내적 갈등이다.
당신의 회사에서 지금 가장 불편해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혹시 나는 아닐까.
그리고 회사는 그 불편함을 '개인의 문제'로 넘기고 있는가, 아니면 '신호'로 듣고 전에 하지 않던 어떤 조치를 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한 사람의 전화에서 시작했지만, 그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가 몸담은 회사를 알아야 한다.
다음 편에서는 '이어'가 어떤 회사인지, 무엇으로 그렇게 빨리 컸고,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 그 구조부터 들여다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