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분석은 했는데 뭘 기획하지?

‘오후 4시’라는 숫자에서 기획자는 무엇을 읽을까


평택 데이터 시각화 프로젝트를 끝내고 요즘은 데이터를 분석해서 어떤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이어나가고 있다. 여러 가지 프로젝트 중 작년에 한창 진행해서 장관상을 받았던 프로젝트의 기록들이 휘발되기 전에 남겨놓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 업데이트를 진행해 봐야겠다.


데이터를 분석해서 서비스를 기획하라고 하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데이터를 구해 그래프를 그리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거기서 어떤 문제를 찾아 무엇을 제안해야 할지는 막막하다. 2025년, 나는 그 과정을 직접 해보고 싶어서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돌봄 서비스 기획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신청과 이용 실적을 비교하면서 분석 결과를 기획으로 연결하는 능력을 키워보고 싶었다. 이 프로젝트는 이후 장관상을 받았다. 돌아보면 그 과정에서 오래 붙잡았던 것은 하나의 질문이었다. ‘신청은 있었는데, 왜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이 질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작은 서로 형식조차 맞지 않는 두 데이터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여성가족부 공공데이터포털에서 신청 데이터와 실적 데이터를 가져왔다. 공공데이터라고 다 보물 같은 데이터는 아니다. 때론 ‘대체 왜 수집한 거지?’ 싶을 만큼 엉성하기도 하다. 신청 건수와 실적 건수가 서로 다른 포맷으로 쌓여 있었고 이상값도 많았다. 어떤 데이터를 살리고 어떤 데이터를 버릴지부터 판단해야 했다. 접두사와 조사를 제거하고, 날짜와 시간대 포맷을 통일했고, 6개월 이상 기록이 있는 기관과 시간대만 남겼다. 나는 두 데이터를 겹쳐 비교한 뒤 신청은 있지만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은 부분을 살펴보기로 했다.


[신청 데이터] - [실적 데이터] = [신청과 실적 사이의 격차]


내가 주목한 것은 이 격차였다. 다만 이 숫자를 곧바로 '매칭에 실패한 사람의 수'로 볼 수는 없었다. 취소나 중복 신청, 기록 누락의 차이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시스템 바깥으로 튕겨져 나간 사람들의 민낯이 숫자로 드러났다. 대부분의 분석은 교집합에 집중한다. 매칭된 사람들의 패턴을 본다. 하지만 진짜 서비스 기회는 차집합에 있었다. 매칭에 실패한 사람들, 시스템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 시장의 진짜 니즈는 결제 완료 창이 아니라 이 차집합에 숨어 있을 수 있다.


시간대별 신청 분포를 살펴보니 전국적으로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 그리고 오전 6시에서 8시 사이에 수요가 집중되었다. 일부 지역은 밤 8시에서 10시 사이에도 수요가 있었다. 신청과 실적을 비교했을 때는 신청이 있었지만 실적이 0건인 기관, 시간대 조합이 눈에 띄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곳이 포항시 가족센터의 오후 4~6시 구간이었다. 데이터는 ‘오후 4~6시’와 ‘포항시’를 가리켰지만, 왜 그런지는 데이터만으로 알 수 없었다. 여기서부터는 기획자가 맥락을 입혀야 했다.


솔직히 데이터상으로 포항이 나왔을 땐 좀 의외였다. 내가 포항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어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했다. 경기도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포항은 지도 위의 먼 지명일 뿐이었다. 데이터가 가리킨 지점을 처음부터 새로 공부해야 했다. 먼저 AI에게 포항의 산업 구조와 인구 구성을 물었다. 이 단계에서 AI는 무엇부터 찾아볼지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됐다. 다만 편한 만큼 위험하다. AI는 그럴듯한 문장으로 틀린 사실을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AI가 준 답을 그대로 쓰지 않고, 포항 지역 카페의 글들과 인구 통계를 따로 찾아 대조했다. 통계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과 지역 주민의 경험담을 구분해 읽었다. 여러 글에서 같은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그것만으로 지역 전체의 특성이라고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포항은 철강 산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였다. 이 산업 구조가 돌봄 수요와도 연결되어 있을까? 교대근무를 하는 부모에게는 일반적인 돌봄 시간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심 외곽에서는 이동의 어려움이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떠올랐다. 아직 검증하지 않은 가설이었지만, 포항의 신청과 실적 사이에 왜 격차가 생겼는지 살펴볼 실마리였다.


그런데도 이 가설이 필요했던 이유가 있다. 나는 ‘4~6시에는 매칭이 어렵습니다’라고만 알려주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무엇이 이용을 가로막는지에 따라 바꿔야 할 서비스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돌봄 인력이 부족한 것인지, 이동이 어려운 것인지, 신청 조건이 맞지 않는 것인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가설은 사용자에게 설명할 확정된 이유가 아니라, 다음에 무엇을 확인할지 정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데이터가 주지 않는 답 앞에서 기획자가 해야 할 일은 검증할 질문을 세우는 것이었다.


반면 4~6시에 대해서는 나에게 다른 종류의 경험이 있었다. 이 시간은 내가 아이를 키우며 반복해서 마주한 시간이다. 내가 경험한 어린이집에서는 오후 4시 무렵부터 하원 행렬이 시작됐다. 연장 보육을 이용할 수 있어도, 조금이라도 일찍 데려오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있었다. 같은 반 엄마들의 단체 카톡방에는 이 시간대의 초조함이 그대로 쌓였다. 회의가 길어져 뛰어오는 사람, 차가 막혀 발을 구르는 사람. 어느 날은 이런 메시지가 올라왔다. “우리 ○○이만 혼자 반에 남아있어요.” 나는 이 문장을 오래 기억했다. 이 카톡이 포항의 낮은 실적률을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오후 4~6시의 공백이 부모에게 어떤 무게인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4~6시가 마의 구간이라는 말은 내게는 통계에서 온 것이 아니라 여기서 왔다.


데이터는 어디를 더 들여다봐야 하는지 알려줬다. 지역에 대한 조사는 가능한 이유를 떠올리게 했고, 나의 경험은 그 시간의 절박함을 이해하게 했다. 하지만 이 셋이 같은 종류의 근거는 아니었다. 데이터가 뱉어낸 차가운 결과값(What)에 슬롯적 배경과 사용자 현실이라는 입체적 이유(Why)를 접목했다. 내가 겪어봐서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실제로 확인한 것은 달랐다. 그 차이를 놓치지 않으면서 숫자 너머의 사정을 묻는 것. 이 프로젝트를 통해 배운 기획자의 역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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