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도시락'은 안녕.
"엄마, 다음부터는 현장학습 갈 때 도시락 싸지 마."
"……응? 왜?"
"요즘 애들 중에 누가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을 가져와? 애들이 다 놀린단 말이야. 그냥 편의점에서 사 먹는 게 훨씬 나아."
새벽 6시. 주방 불을 켜고 식탁 위에 단무지와 맛살, 햄, 시금치와 당근을 내어놓던 손길이 순간 공중에서 멈추었다. 팬 위에 올려놓은 계란지단의 노릇하고 포근한 향도, 갓 지은 밥에 털어 넣던 깨소금의 고소함도 한순간에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까지. 나의 '도시락 공장'은 늘 정성과 애정으로 분주했다. 메추리알에 검은깨로 눈을 박고 당근 벼슬을 올려 꼬꼬닭을 만들던 날들. 방울토마토 모자를 씌운 인형을 고정하고, 비엔나소시지마다 섬세하게 칼집을 내어 여덟 다리로 웃는 문어를 조르르 줄 세우던 아침들이었다. 유부초밥과 꼬마김밥 사이사이 귀여운 픽을 꽂아 넣을 때면 늘 마음이 설렜다. 현장학습을 가서 도시락 뚜껑을 열고 환하게 웃을 아이의 동그란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장장 10년이 넘는 세월. 나는 그 아기자기하고 조그마한 세계 속에서 '도시락 전담 셰프'라는 당당하고도 단단한 이름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오늘, 중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오랫동안 정성 들여온 직바카라이 허무하게 끝이 났다. 은퇴 통보였다. 퇴직금도, 화려한 퇴임식도 없이 툭 던져진 말 한마디로 나는 40대에 명예퇴직을 당했다.
아이가 집을 나서고 텅 빈 주방에 홀로 앉아, 덩그러니 남은 김밥 말이를 바라보았다. 서운함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진짜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아이는 이제 엄마가 만들어준 작고 다정한 울타리를 넘어, 또래라는 거친 바다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내 품 안에 놓여있던 아이의 세상이 저만치 넓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조금만 더 늦게 커주지, 나는 아직 도시락 만들기가 재미있는데…….’
오후가 되어 현장학습을 마친 아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가방을 툭 던져놓고 주방으로 들어서더니, 식탁 위에 남아있던 참치김밥을 슬그머니 바라본다. 그러고는 젓가락도 없이 손으로 김밥 한 조각을 쏙 집어 입에 넣었다.
"역시 엄마 참치김밥이 제일 맛있긴 하네."
우물우물 김밥을 씹으며 씩 웃는 녀석. 아침에 서운해하던 엄마의 눈빛을 기억하고 있던 걸까. 나름대로 눈치를 챙겨 건네는, 엉성하지만 귀여운 화해의 표현이었다. 김밥 한 줄을 후다닥 먹더니 형들을 만나기로 했다며 농구공과 물을 챙겼다. 현장학습은 어땠는지, 친구들과는 재미있었는지 아이 뒤를 졸졸 따르며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짧은 대답뿐, 나와의 대화는 싱겁게 끝이 났다.
아이가 나가자마자 차를 마시기 위해 전기포트에 물을 올렸다. 오랜 시간 다관에 차를 우려내다 보면 흙 속에 차의 기운과 향이 고스란히 배어들어 '차심(茶心)'이 든다고 한다. 차심이 깊게 든 다관은 맹물만 부어도 은은한 향을 내어놓는다. 지난 10년간 아이의 도시락을 싸며 내 손과 마음에 밴 시간들도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캐릭터 도시락은 이제 손을 떠났지만,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따뜻한 김밥 한 줄을 건넬 수 있는 '엄마'라는 이름의 다관에는 이미 짙고 그윽한 사랑의 차심이 깊게 들어있는 게 아닐까.
베란다 창가로 다가섰다. 저 멀리 농구공을 들고 공원으로 향하는 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제 내 품을 떠나 저만의 세상으로 걸어가는 아이의 등 뒤로, 따스한 오후의 햇살이 사정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김밥 한 줄이면 된다는
중1 아드님
꼬꼬도 문어도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