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력전에 대한 정의

by박재한
<히틀러, 퍼블릭 도메인>

- 제1차 세계대전

제1차 세계대전은 이전의 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신무기들이 대거 등장했다. 기관총, 독가스, 전차, 전투기, 잠수함 등 현대에서 쓰이는 무기들의 초기 버전들이 전선에 나와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하루에 수만 명씩 죽는 건 일상이 된 기간이었다.


세계대전에서는 서로를 이기기 위한 압도적인 물량과 인적 동원이 절실했다. 후방에서는 24시간 내내 전선으로 보급하는 물건들을 생산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국가는 모든 영역에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파악하고 체계적으로 동원할 준비를 이루어냈다. 이른바 총력전 체제가 구성된 것이다.


- 제2차 세계대전 속 각 국가의 태도

1942년 영국은 복지의 시발점이라고 불리는 베버리지 보고서가 발간되었다. 이른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불리는 이문건은 전쟁 중에 발표된 전후 복지국가의 청사진이었다. 이 보고서가 발표되는 중에는 여성의 80%가 군 보조부대와 농촌, 군수산업, 간호 등에 복무했다는 못다 한 이야기들도 있었으며, 식량배급제가 실시되었다면 이면도 존재한다.


1944년 미국은 이른바 제대군인 원호법(GI BILL)이 통과되었다. 국가가 군인의 미래를 약속한다는 취지의 이 법은 무료대학, 주택대출 보증, 실업수당을 골자로 한 군복무 복지제도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미국 또한 여성 노동인구 1,900만 명이 군수산업에 배치되었고, 여군 40만 명이 후방부대에서 복무했다. 아무래도 인구가 많고, 영토가 넓은 까닭도 있을 것이다.


1938년 일본은 후생성을 신설하고 국가총동원법을 통과시켰다. 복지를 관할하는 부처를 만듦과 동시에 총력전에 근거되는 법 또한 통과시킨 것이다. 후생성은 표면적으로는 국민체력의 향상과 슬롯복지의 확대를 말했지만, 속으로는 징병제 운영을 위한 병역 자원의 체력 관리적 측면도 있다. ㄷ결과적으로 이 국가들은 이념은 달랐지만, 평시에는 생산과 재생산을 위한 복지제도를 운영하다, 전시가 되면 총력전을 수행하기 위한 동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국가의 구조를 개편했다고 하는 점은 같다고 볼 수 있다.


- 당시 식민지 조선은 어땠을까?

1937년 7월 일본은 중국 대륙을 침략했다. 조기에 끝나는 줄 알았으나, 넓은 대륙과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었던 중국을 쉽게 이길 수 없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은 1938년 후반 전선 교착이 되었고, 내부가 분열되었던 중국이 일본을 함께 대항하자는 국공합작으로 인하여 중국은 아주 대단히 장기항전의 태도로 전쟁에 임하게 된다.


한편 일본은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전쟁에 인적, 물적자원을 더 동원하기 위해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하고 동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총력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 법은 일본 본토, 조선, 대만을 차례로 시행되었다. 시행 이후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비롯한 조선어 신문은 폐간되었다. 또한 출판물 통제도 시작되었으며, 임금, 가격, 생필품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식량 공출이 시작되었고, 배급제도 함게 시작되었다. 금속회수령도 1941년에 시작되어, 대문을 비롯한 모든 가정집의 철제 구성품들을 떼어갔다. (조부모님도 이를 목도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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