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난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최근 Google Stitch가 다시 회자되고, Claude 디자인 기능이 쏟아져 나온다. 불과 얼마 전 열광했던 ‘피그마 메이크(Make)’조차 벌써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린 건가 싶다. IT 커뮤니티가 이토록 무엇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활성화된 건 처음 본다. 그만큼 다들 조급하고 뜨겁다.
가장 많이 들리는 소리는 역시 “디자이너가 사라질 것이다”, “개발자가 사라질 것이다”라는 말들이다.
혹자는 말한다. AI가 아무리 디자인을 잘해도 인간 특유의 오묘한 센스는 따라잡기 힘들다고. 나도 처음엔 몇 번 써보며 동의했다. 기대했던 디테일보다는 단순히 ‘구현’에 의의를 두는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결국 AI가 그 디테일의 영역까지 전부 커버할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개발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인간의 코드 검수가 필요하다”는 말은 지금 당장의 위안일 뿐이다. 코드는 정답이 명확한 영역이다. AI에게 검수조차 필요 없어지는 시점은 반드시 온다.
디자인은 호불호가 갈리는 영역이라지만, 분기마다 나오는 ‘와’ 소리 나는 프로젝트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임팩트는 비슷비슷하다. 결국 높은 수준의 시각적 결과물(프로덕트, 광고 등)을 누구나 만들 수 있게 되면, 디자인이라는 직업 역시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소멸할 것이라 생각한다.
또 하나. 요즘 “디자이너도 AI 포트폴리오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이 들린다. 까놓고 말해 MCP를 연결하고, 컴포넌트를 등록하고, 프롬프트로 결과물을 도출해 본 경험이 있는지 묻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게 별 의미 없다고 본다.
AI의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앞으로 ‘딸깍’ 한 번에 엄청난 결과물이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지금 다들 열심인 MCP 연결이나 터미널 설정 같은 복잡한 과정들은, 머지않아 AI가 A부터 Z까지 알아서 해줄 영역이다. 그래서 나는 이 폭풍 같은 성장기 속에서 굳이 기술적 설정법을 익히느라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그 과정에 낄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에,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건 빠르게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기술이 아니다.
그 너머를 볼 줄 아는 ‘비저너리(Visionary)’의 역량이다.
“디자인 잘 뽑혔네”, “플로우가 맞네” 같은 차원의 확인이 아니라, 이 제품이 세상에 왜 존재해야 하는지, 그다음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눈이다.
어쩌면 IT에 대한 기술적 이해도가 전혀 없어도, 사업성을 판단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인물만이 살아남는 시기가 온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그런 인물들은 AI 이전에도 늘 중요했으니까.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폭풍이 지나간 자리, 기술이 평준화된 그 너머에 무엇이 남을지 고민하며 나는 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