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는 이제 '돈을 찍어내는 기계'가 아니다. 오히려 막대한 돈을 필요로 한다. 시장의 신뢰가 흔들릴 때, 이는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인공지능(AI)은 인류의 삶과 일하는 방식을 통두리째 바꿔놓겠지만, 그런 미래지향적인 얘기를 접어두더라도 이번 AI 붐은 이미 금융 시장과 글로벌 경제에 지울 수 없는 선명한 낙인을 남기고 있습니다. AI 기술이 촉발한 전례 없는 투자 열풍과 이를 조달하려는 자금 전쟁은 시장의 지형도를 근본적으로 뒤바꿔놓을 것입니다. 이번 주 있었던 스페이스X(SpaceX)의 상장 소식은 기술뿐만 아니라 '금융의 패러다임' 자체가 완전히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최신의 신호탄에 불과합니다.
금융 시장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지난 20년 이상 증시를 지배해 온 핵심 기업들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알파벳(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이라는 네 개의 거인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앞의 세 기업(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메타)은 기업 역사상 가장 유례없이 완벽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졌다고 평가받았습니다. 난공불락의 진입 장벽,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 통제 가능한 수준의 투자 비용, 그리고 계속해서 커지는 시장이라는 완벽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 기업은 말 그대로 '돈을 찍어내듯' 벌어들였습니다. 2024년 한 해에만 세 기업이 합산해 벌어들인 잉여현금흐름(투자 지출을 제외하고 남은 순현금 이익)은 2,000억 달러(약 270조 원)를 넘어섰는데, 이는 10년 전보다 무려 4배나 늘어난 액수입니다.
아마존은 조금 다른 경우입니다. 전자상거래 부문은 마진이 낮고, 클라우드 컴퓨팅 부문은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아마존 역시 시간이 흐르며 강력한 현금 창출 기계로 진화했습니다. 2024년 아마존의 잉여현금흐름은 330억 달러로, 10년 전 고작 20억 달러였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도약이었습니다. 이 네 거물 기업은 미국 증시를 연일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린 견인차였습니다.
하지만 이 소프트웨어·인터넷 공룡들이 AI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사)'로 변신을 선언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데이터센터 구축에 집중될 이들 네 기업의 자본 투자 규모가 2023년부터 2027년 사이에 무려 6배나 폭증해, 무려 8,150억 달러(약 1,100조 원)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손에 쥘 수 있는 잉여현금흐름은 이전보다 70%나 급감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이 기업들이 과거의 황금 알을 낳는 거위 같던 비즈니스 모델을 버리고, 훨씬 불확실하고 수익성도 떨어지는 싸움터로 뛰어든 것이 비이성적인 선택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지금 AI에 투자하지 않으면 기존의 진입 장벽이 무너지고 자신들의 전성기도 끝장날 것이라는 냉혹한 현실에 베팅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대담한 도박이 결국 실패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름의 논리는 확실합니다. (흥미롭게도, 또 다른 현금 창출의 최강자인 애플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애플은 자체적인 AI 모델이나 데이터센터에 직접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지 않고도, 자신들이 쥐고 있는 강력한 소비자 하드웨어와 서비스 생태계를 활용해 AI 트렌드에서 이익을 챙길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새입니다.)
어찌 되었든 확실한 것은, 과거 시장을 지탱하던 이 강력한 '현금 복사기'들이 당분간은 이전만큼의 현금을 뿜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 주식 시장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이들 기업의 주식을 가장 대규모로 사들이던 '단일 최대 매수자', 즉 기업 자신들이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10년간 알파벳, 메타,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사주 매입에 쏟아부은 돈은 무려 8,000억 달러(약 1,080조 원)에 달합니다. (아마존은 자사주 매입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이 거대 기업들이 자사주를 사들일 때마다 나스닥과 S&P 500을 비롯한 전 세계 증시가 든든한 버팀목을 얻었습니다. 빅테크 주가의 향방이 전 세계 주식 인덱스의 움직임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최근 수십 년간 글로벌 금융 시장을 관통한 핵심 트렌드 중 하나는 '탈(脫)주식화(De-equitisation)'였습니다. 대기업들은 자사주를 사들여 유통 주식 수를 줄였고, 수많은 중소기업은 사모펀드가 막대한 빚을 끌어다 인수하면서 증시에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빅테크 기업들이 예전처럼 자사주를 매입하려면 빚을 내서 돈을 빌려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주식 시장 전체를 떠받치던 가장 강력한 지원군 하나가 사라진 셈입니다.
"앞으로 증시 조정은 반드시 올 텐데, 그때가 되면 이 기업들이 예전처럼 주가를 방어하기가 훨씬 어려워질 것입니다. 지난 2021~2022년 메타의 주가가 폭락했을 때 메타가 막대한 자사주를 확 쓸어 담으며 주가를 방어했던 그런 방식은 이제 쓰기 힘들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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