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없는 사랑이 어디 있나' 서평
때는 바야흐로 2025년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온라인카지노에 막 적응하며 여기저기 활개를 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나를 이끄는 제목의 온라인카지노 북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절망 없는 사랑이 어디있나」(이하 '절망사')였다. 어떻게 이런 제목을 지을 수 있지. 그치, 사랑이 늘 행복만 한 건 아니지. 절망 없는 사랑은 없는 게 맞는데 그것을 끄집어내다니. 홀린 듯이 9화를 클릭했고, 그 자리에서 연재분을 다 읽었다. 그해 나의 여름은 온통 '절망사'였다. 마지막까지 유미의 세포들 보듯이 그래서 이서의 최종 짝은 누구인지 홀로 열심히 남편찾기를 하며 그녀의 행복 있는 사랑을 응원했다. 내가 온라인카지노에서 봤던 연재북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작품이었으며 내가 출판사 사장이었으면 출판하리라, 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할 정도로 '절망사'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나와 비슷한 안목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어느 출판사에서 '절망사'를 선점해갔다. '절망사'에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표지에, 반투명 띠지(이 띠지는 단가도 비싸다고 알고있다)까지! 애정이 그득했다. 그리고 옆에서 작가님이 엄청난 토고의 길을 홀로 걸으며 괴로워했던 것도 잘 안다. 그렇게, 여러 배송 이슈가 있었지만 마침내 내 손에 실물의 '절망사'를 쥐게 되었다.
첫 프롤로그를 읽는데 '오오오오....개간지...'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절망사'의 전체 내용을 예고편 보듯이 간지 철철나는 촌철살인의 문장으로 수놓아져 있어, 당연히 다음장으로의 기대감이 증폭되었다.
너 없이도 시간은 흘렀고 계절은 쉼 없이 반복되었다.
너라는 계절이 지나간 자리에서 나는 나만의 계절을 살아가고 있다.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는 너를 체념한 것이다.
절망 없는 사랑이 어디에 있나. (p.009)
그리고, 정말 일 년만에 다시 1장부터 보는데, 마음이, 왠지 힘들었다. 온라인카지노에서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너를 향한 이서의 마음이 상당히 절절했으며 '너'가 그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얄밉게도 여지만 은근히 주는 쓰레기에 가까워졌다. 내가 '절망사'를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서의 세 남자를 비슷한 층위에서 다른 각도로 바라본다는 점에 있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첫사랑 같던 '너', 나를 좋아하는 남자 '선배', 그리고 내가 좋아하게 된 남자 '도윤'까지. 모두가 다 그런 사랑을 겪는 건 아니지만 30년 이상 살았다면 누구나 살면서 이정도의 비슷비슷한 연애사를 겪게 되곤 한다. 그래서 이 글은 이유림 작가 개인적인 에세이이면서도 우리 모두의 사랑 이야기일 수 있는 '오토픽션'으로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바카라에서의 '너'는 이서의 감정을 벼랑 끝까지 몰고가게 한 주제에 이서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버렸다. 이렇게까지 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서 꼭 입맞춤까지 하고 난 다음에 아무렇지도 않게 '더는 안 되겠어, 이서야.'라고 말하는, 생각보다 잔인한 '너'. 나도 '너'와 비슷한 첫사랑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 아주 공감이 안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너'로 인해 이서가 느끼는 사랑의 절망이 그 깊이가 몹시 깊어진 것 같았다. 어느 한 문장을 발췌해서는 '너'와의 사랑에서 이서가 느끼는 절망을 설명하기에 어렵다. 문장과 문장이 돌무더기처럼 쌓여, 하나의 문단이, 챕터가 수선화에서 벚꽃에 이르기까지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잠시, 호흡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너는 나의 이상이었고,
온 마음을 다해 지키고 싶던 세계였다.
그게 사랑이든, 동경이든 그 경계 어디쯤이든. 너는 나의 구원이었다. (p.25)
마음 따뜻한 선배는 슬쩍 이서의 인생에 걸터앉았다가 내쫓기듯 방을 뺐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선배는 그때나 지금이나 안타까운 캐릭터다. 꼭 나를 순정넘치게 좋아하는 남자는 왠지 내 성에 안 찬다. 너무 좋은 사람인 걸 알겠는데 내 마음이 안 따라주는 그 간극이 잘 드러나는 인물이다.
"내가 왜 좋아요?"
"그냥."
선배는 고민하는 듯하더니 짧은 단어를 내려놓았다.
"그냥이 어디있어요. 저 그냥이라는 답 싫어해요."
이 부분만 봐도, 선배의 마음은 얼마나 티 없이 순수하며 이서는 얼마나 무관심한지 알 수 있다. 만약에 '너'가 '그냥'이라고 말했다면? 저렇게 대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이라는 단촐한 단어 뒤에 어떤 다른 의도가 있지는 않을까, 너에게 나는 무엇일까 이서는 한참 고민했었을 듯싶다. 하지만 난, 잘 안다. 나도 어릴 땐 내가 왜 좋아, 어디가 좋아 그런 질문을 하며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고 늙어보니 이제야 알겠더라. 좋아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때 그 사람에게 오롯이 좋아한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어떤 논리적인 이유를 찾지 못한 채, 그저 너여서 좋은 걸 어쩌라고. 그걸 표상하는 말이 '그냥'일 것이다. 거기서 난 선배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기에 선배는 언제나 나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그리고 드디어 '이도윤'에 이르러서 조금 내 마음이 편해졌다. 다시 내가 그 때 온라인카지노 북을 읽었을 때처럼, 내 원픽남자 이도윤답게 몽글몽글한 마음으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그래, 이도윤이 진국이지, 끄덕끄덕하며 기쁜 마음으로 바카라을 덮을 수 있었다. 온라인카지노 북에서는 이도윤도 가끔 점수를 깎아 먹는 행동을 하고 있었는데 바카라에서는 많이 중화되었다. (이건 아마도 실제 이도윤이 바카라을 읽을 것이라는 가정이 반영된 게 아닐까) 차라리 나는 그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남편이란, 가끔 남의 편 같아서 화딱지나긴 하지만 그래도 한번 뿐인 이 인생에서 내 편이 되어주겠다고 '남'에서 '내'로 넘어온 용기 있는 사람이니까.
서툴게 나를 받아냈고 때로는 밀어냈다. 무조건 감싸지 않았다. 가끔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중략)
50 대 50? 딱 절반씩 나눌 수 있는 관계?
내가 무슨 뜻밖의 포부를 가졌었나 싶었다. 그와 나는 input이 있으면 output이 있는 관계는 맞았다. 화가 들어가면 화가 나오고 분노를 집어 넣으면 분노가 나오는 관계. 하루는 내가 10 대 90. 다음날은 그가 90대 10. 계산기로 따져보면 플러스, 마이너스 평균 5대 5. (p.221~p.222)
욕심을 내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순간순간 그는 내게 울창한 숲이었고, 깊고 짙은 바다였다. 나는 그런 그에게 바람이 되어 그를 흔들었고 비가 되어 그에게 흘러들었다. 나는 그를. 그리고 그는 나를. 앞으로도 오랫동안 서로를 놓을 수 없음을 잘 알았다. (p.257~258)
바카라을 다 읽고나니 이제 강이서는 좀 행복해졌을까,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잠시 잔향처럼 머물렀다. 그녀의 성장을 따라가며 그녀의 사랑을 응원했던 것 같다. 이젠 더 마음 고생하지 말고 그만 행복하기를.
이서의 사랑이 앞으로는 절망이 아니라, 잘, 무사하기를.
내돈내산 서평입니다. 도서 제공받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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