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시장 순대 할머니는 85살이다.
85살인데도 아침에 나와서 저녁까지, 김이 오르는 솥 앞에 앉아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떻게 저 나이에 저렇게 건강하게, 경제적 독립을 이루며 건강하게 살 수 있는가.
내가 아는 다른 할머니는 서울대를 나왔다. 2,000평의 펜션을 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졌고, 10년 넘게 병원에서 산소호흡기를 달고 누워 살다가 돌아가셨다. 나는 그 두 사람을 자꾸 나란히 놓아 본다. 학벌과 건강, 자본과 노동, 누워 있는 10년과 서 있는 10년.
순대 할머니와 오벨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순대 할머니의 표정에 순간 뻐김이 스쳐갔다가 가라앉았다. 이미 그녀는 스스로 가라앉힘을 안다. 오벨은 순대 한 점을 씹으면서 들었다.
오벨은 달라져 있었다. 홍티아트센터에서 이현정 작가의 전시를 보고 난 뒤부터다.
"저, 저는 아버지 장례식을 그 전시 같은 것으로 하고 싶어요."
"전시로요?"
"어차피 올 사람도 없잖아요. 아버지 사진 걸고, 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들 말을 녹음해서 틀어 놓고요. 목욕탕 굴뚝 사진도 크게 붙여놓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목욕탕 굴뚝을 등대처럼 만들어볼까 해요.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나는 그를 처음 만난 요양병원에서의 모습을 기억한다. 침대에 누워 점점 말을 잃어 가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증오하던 사람이었다.심지어 말도 못 하고 누워만 있는 삶, 그게 산 겁니까"라고 나를 몰아부쳤던 그였다.
왜 지금은 아버지의 시간을 찾아다니는가. 생선 가게를 하던 시절의 아버지를, 목욕탕을 하면서 알던 사람들을.
"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왜 이렇게 지루하게 만들어졌는지."
단지 그 이유일까.
오벨의 아내는 첫사랑을 찾아갔다. 사실 오벨의 딸은 오벨의 딸이 아니었다고 했다. 진짜 아버지를 찾아갔다. 오벨은 아버지와 함께 남겨졌다. 딸이 자기 자식이 아니라는 말을 아내에게 들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 뒤로 가끔 찾아오는 딸을 이전과 다르게 대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데도, 딸은 그 부조리함의 관계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딸의 죽음이었다.
"내가 이혼을 안 해 줬다면 딸이 죽지 않았을까요?"
"...."
어쩌면 말을 잃은 아버지의 존재가 그를 세상에 붙잡아 둔 것인지도 모른다. 복수심은 어디로 갔을까. 어떤 생각이 그에게 삶을 살도록 하고 있을까?
오벨이 나에게 물었다. "신지 님 아버님 자서전은 어떻게 되어가나요?"
"거의 한 작가가 7번 정도 구술을 받았고 이제 사진 넣고 바카라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니 거짓말이 많아요. 작가 앞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지 않으려고요. 오히려 오벨 님의 기록이 진실할 수 있을 겁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대하던 방식 그대로 전 아내를 대했더라고요. 그게 제일 미워요."
나는 한참 동안 기질의 유전 앞에 좌절하고 웅크린 남자를 보고 있었다.
"아내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눈을 얻은 작가가 있어요. 루이지 피란델로."
"모, 몰라요, 그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오벨은 스마트폰을 켜고 루이지 피란델로를 입력한다.
"금수저로 자랐죠. 아버지가 시칠리아에서 유황광산을 했으니까. 그런데 1903년에 광산이 무너졌어요. 산사태로 물이 들이닥쳤다고도 하고, 갱이 내려앉았다고도 하고. 어쨌든 하루아침에 재산이 공중으로 사라졌습니다. 아내의 지참금까지 통째로요."
"여자들은 현실적인 것에 가장 먼저 흔들리지요."
오벨은 다시 자기와 연결 짓기 시작했다.
"꼭 여자들이 아니라 감성과 욕망이 강한 존재들은 먼저 흔들리고 가장 빨리 눕지요"
"맞아요. 안토니에타. 평생 부유하게만 살아온 사람이었어요. 같은 시기에 막내를 낳다가 난산으로 몇 달간 하반신을 못 썼고요. 그 뒤로 편집증이 시작됩니다. 남편이 제자들과, 주변 여자들과, 심지어 하녀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확신했어요. 피란델로가 글을 쓰려고 방에 들어가면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고, 밤낮으로 감시했습니다."
"전 반대로 제가 그랬습니다. 알고 보니 그건 단순히 위처증이 아니라 사실이었어요 초등학교 친구였더라고요. 별로 친하지는 않았는데."
"피란델로는 그 생활을 16년을 견뎠습니다."
"제 아내는 20년 정도네요."
"1903년부터 1919년까지. 낮에는 학교에서 강의하고, 밤에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내를 돌보면서 그 집 안에서 글을 썼어요. 아내의 감시를 피해 가며 쓰는 삶 자체가 한 편의 부조리극이었죠. 큰아들이 전쟁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자 아내의 망상은 극에 달했고, 딸은 그 집에서 자살을 시도합니다."
오벨이 걸음을 멈췄다. 온천천 물소리가 잠깐 크게 들렸다.
"딸이요."
"19살이었어요. 어머니가 딸까지 의심했다고 하죠. 딸은 총을 구해서 스스로를 쏘았는데 살았습니다."
"제 딸은 16살…… 아 어떻게 그 긴 시간을 견뎌 내었을까?……."
그는 말끝을 흐렸다. 나는 기다렸다. 그는 잇지 않았다.
"1919년에 결국 아내를 로마 근교의 정신병원에 입원시킵니다. 안토니에타는 거기서 40년을 살았어요. 피란델로는 1936년에 죽었고, 아내는 1959년에 죽었습니다. 남편보다 23년을 더 살았어요. 88살까지. 40년 내내 그 병원에서요."
"피란델로는 경제적 지원과 바카라임은 죽을 때까지 다했습니다."
"그건 버린 것이 마찬가지일 수 있어요. 제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두고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오벨의 죄의식은 피란델로가 그대로 느꼈을 것이다.
"피란델로는 아내를 버리지 않고 등장인물로 만들었어요. 《여섯 개의 등장인물을 찾는 작가》, 《엔리코 4세》, 거기 나오는 광기와 가면, 우리가 믿는 현실이 과연 진짜인가 하는 질문, 그거 전부 그 집 안에서 나온 겁니다. 미쳐 가는 아내를 옆에서 보면서 인간의 자아가 얼마나 취약한지, 남에게 보이는 가면과 속의 진실이 얼마나 쉽게 벌어지는지를 뼈로 배운 거예요. 아내와의 삶이 그를 고통스럽게 했지만, 역설적으로 그를 거장으로 만든 자양분이었죠."
"죄의식이 자양분이 된 거예요?"
"네."
"그런 예술가나 천재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지만 저 같은 사람에게는 자양분이 될 게 없어요."
"지금 아버지의 시간을 찾아다니잖아요.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우리는 누구나 창작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술가 창작자를 만나고 있고 또 만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신지 님을 조금 더 일찍 만났다면 좀 나았을까요?"
오벨은 그냥 하늘을 향해 헛웃음을 터뜨린다.
나도 웃었다.
우리는 다리 밑을 지났다. 저쪽 산바카라로에 흰 개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목줄이 없었다. 오벨이 그쪽을 오래 보았고, 나는 못 본 척했다.
"신지 님은 이제 오만하셔도 됩니다. 저 앞에서는."
"그래요. 저번에는 로마를 꿈꾸는 뭐 그런 소리를 하셨는데."
"그냥 저 잘났다고 내세우는 사람 정도로 봤죠. 사실 제가 그쪽 방면에선 아는 게 없는 데다가. 그런데 AI로 이리저리 살펴보니 오만하셔도 돼요."
"맞아요. 사람들은 배운 것 존재하는 것과 비교할 수는 있었지만 저의 작업은 어떤 사례가 없어요. 예를 들면……"
"리미니 프로토콜이라고 있어요."
"리미니 프로토콜?" 오벨은 다시 스마트폰을 꺼낸다.
"리미니 프로토콜이요. 2000년에 결성됐어요. 다큐멘터리 연극 집단입니다. 전문 배우를 안 씁니다. 실제로 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무대에 세워요. 엔지니어, 콜센터 직원, 통계청 직원, 난민. 그 사람들이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 경험을 관객에게 직접 말합니다. 극장 안에만 있지도 않아요. 도시 전체, 트럭 화물칸, 공장. 《100% 도시》 시리즈는 그 도시 인구 통계 비율에 맞춰서 시민 100명을 뽑아 무대에 올립니다. 서울도 했고 광주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300여 명의 서울 시민들과 한강 프로젝트를 했지만 신문에는 한 줄도 안 나가죠."
"그 사람들도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마을영화하고 같은 거 아닌가요."
"그 질문이 사실은 피란델로예요."
"방금 그 사람이요?"
"《여섯 개의 등장인물을 찾는 작가》가 어떤 이야기냐면요. 극단이 연습을 하고 있는데 웬 여섯 사람이 극장에 쳐들어옵니다. 자기들은 어떤 작가가 쓰다 만 등장인물인데, 이야기를 끝내지 못하고 버려졌다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 이야기를 무대에 올려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배우들이 그 사람들을 연기해요. 그런데 그걸 보던 등장인물들이 비명을 지릅니다. 저건 우리가 아니다, 저건 우리가 겪은 게 아니다."
"그, 그러면요."
"리미니는 그 비명에 대한 100년 뒤의 대답입니다. 배우가 하면 거짓이 되니까 배우를 지워 버린 거예요. 콜센터 직원을 연기할 배우 대신에 콜센터 직원을 세웁니다. 난민을 연기할 배우 대신에 난민을 세우고요. 피란델로가 극장 안에서 던진 질문을, 리미니는 실제로 극장 문을 열고 사람을 들여보내서 풀었습니다. 그건 정말 대단한 겁니다."
오벨은 잠자코 걸었다.
"그런데요." 내가 말했다. "피란델로의 여섯 사람은 뭘 찾아왔죠?"
"작가요."
"그겁니다. 등장인물은 작가를 찾아옵니다. 작가가 있어야 존재하니까요. 자기 이야기를 갖고 있는데도, 그걸 무대에 올려 줄 사람이 따로 필요한 거예요. 리미니의 일상의 전문가들도 그렇습니다. 그들의 말은 전부 진짜예요. 꾸민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언제 나와서 무엇을 말하고 어디서 끊는지는 연출이 설계한 프레임이 정합니다. 자본주의, 세계화, 통계, 국경. 거대한 시스템을 해부하겠다는 정치슬롯적 이슈가 먼저 있고, 시민은 그 설계 안으로 초대돼요. 진실은 그 사람 것인데 구조는 작가 것입니다. 100명은 100명이 아니라 100%예요."
"통계의 대리인이라고 하셨죠."
"네. 여전히 작가의 설정에 묶인 등장인물인 거죠. 다만 배우가 아니라 본인이 자기 배역을 맡았을 뿐입니다."
"신지 님의 마을영화는요?"
"거꾸로예요. 작가를 찾는 등장인물이 아니라, 등장인물을 찾는 작가들입니다."
나는 그 말을 하고 나서 잠깐 스스로 놀랐다. 나는 이 문장을 처음으로 꺼냈다. 순전히 피란델로 탓이다.
"마을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증언하러 나오는 게 아니에요. 자기 삶을 재료로 상상의 이야기를 지어냅니다. 없는 인물을 만들고, 안 일어난 일을 일어나게 하고, 죽은 사람을 살려서 마당에 앉혀요. 그래서 다큐가 아니라 극영화여야 합니다. 증언은 이미 있었던 걸 확인하는 거고, 극은 없었던 삶을 한 번 살아 보게 하는 거니까요. 자기 이야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살아내는 거예요."
"거짓말이네요."
"극영화니까요. 순대 할머니가 리미니에 나가면 85살 자영업 노인의 노동 시간이 데이터로 무대에 올라갑니다. 그건 사실이고 아프고 정확해요. 마을영화에서는 할머니가 자기의 꿈과 자신을 이야기하는 여자로 나옵니다. 도망친 남편을 다시 만나서 이번에는 할머니가 먼저 차 버려요. 옆에서 손자가 그 남편의 아이 역을 하고, 온 마을이 웃습니다. 통계로는 못 하는 걸 극에서는 합니다."
"가면을 쓰는 거군요."
"쓰되, 자기가 고른 가면입니다. 그게 피란델로하고 갈리는 데예요. 피란델로의 가면은 시대와 구조, 남이 씌운 거고 벗을 수가 없어요. 안토니에타는 평생 질투에 미친 아내라는 가면을 쓰고 죽었습니다. 마을영화의 가면은 자기가 골라 쓰고, 상영이 끝나면 마당에서 벗습니다."
"상영이요."
"닫힌 상영관이 아니라 마당에서 해요. 나온 사람이 보는 사람이고, 보는 사람이 나온 사람입니다. 옆에서 국을 끓이고, 외지에서 온 사람이 그 국을 얻어먹고, 영화가 그대로 잔치가 됩니다. 촬영부터 상영까지 축제여야 하지요. 리미니의 관객은 표를 사서 들어왔다가 흩어지는 도시의 익명 관객이에요. 우리는 흩어질 데가 없어요. 다들 여기 살거든요. 개인의 상상에서 시작해서 옆집 사람 상상하고 부딪히고, 그게 공동체의 상상이 되고, 축제로 끝납니다. 끄트머리국제마을영화제에서요."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릴게요."
나는 걸음을 멈췄다. 이 말은 서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가 먼저 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리미니는 2000년에 시작했고, 저는 2003년 시작했지요. 그 사람들 이름도 한참 뒤에 알았어요. 순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그러면 뭐가 중요한가요."
"상대가 누구냐죠. 리미니의 상대는 도시와 자본의 시스템이에요. 통계와 국경과 물류. 그걸 지적으로 정확하게 해부합니다. 훌륭해요. 그런데 제 상대는 그게 아닙니다. 제 상대는 글로벌 플랫폼이에요."
"플랫폼이요."
"지금 지구에서 감정을 만드는 건 몇 개 회사입니다. 그 사람들이 슬픔의 길이를 정해요. 몇 분에 울고 몇 초에 웃는지, 사랑은 어떻게 생겼고 복수는 어떻게 하는 건지. 시골 할머니가 텔레비전 앞에서 우는 방식까지 그쪽에서 설계한 겁니다. 감성을 제조해서 전 세계에 동시에 배급하는 거예요."
"감정을 만든다고요."
"그것만이 아니에요. 화두도 그쪽에서 냅니다. 올해 인류가 무엇을 이야기할지, 무엇이 문제인지,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지를 정해서 내려보냅니다. 우리는 그 화두 안에서만 생각해요. 그 바깥에서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렸습니다."
"마을은요."
"마을은 그 감정을 수입해서 씁니다. 자기 슬픔이 따로 있는데도요. 자기 마을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할 때도 드라마에서 배운 집단 무의식 감성으로 말해요. 복수, 경멸, 미움, 그리고 사랑. 그게 전부 배급받은 겁니다. 껍데기로 사는 거죠. 자기 땅 자기 삶의 깊은 이야기는 숨기고요."
오벨이 나를 보았다. 나는 그 눈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극영화여야 합니다. 다큐로는 그걸 못 이겨요. 증언은 감정을 못 만들거든요. 감정을 만드는 쪽하고 싸우려면 이쪽도 감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마을 사람이 자기 손으로 감성을 짓고 자기 손으로 화두를 내야 해요. 그게 아니면 영원히 감성의 식민지입니다."
"그, 그건 아까 하신 말씀하고 다른데요."
"뭐가요."
"아까는 마을 사람이 작가라고 하셨잖아요. 지금은 싸운다고 하시고요."
"같은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창작자가 되어야 하고 모두가 창작자가 되는 대안이에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넘어갔다.
"제가 100개 마을을 20년 넘게 유랑했다고 했죠. 2019년에 100개째를 끝냈고, 그 뒤로도 2024년까지 계속했습니다. 100개째를 끝내던 해에 불이 났어요. 다 탔습니다. 그러고도 끝냈어요. 주차장을 다니면서 했습니다. 차 세워 놓고 그 옆에 앉아서 회의하고, 주차장 벽에다 대고 시사하고요. 100개 마을 100편을, 극장도 예산도 국가도 없이, 불난 자리에서 주차장 다니면서 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리미니를 기억하지만 저는 기억하지 않으려 하죠."
"그쪽의 100은 퍼센트예요. 도시 하나를 100명으로 요약한 비율이죠. 통계학적으로 정확하게 뽑은 표본입니다. 제 100은 실물이에요. 100개의 마을, 100편의 극영화, 100번의 잔치. 요약된 게 하나도 없습니다. 100% 도시는 한 도시를 100명으로 줄입니다. 저는 100개 마을을 한 편도 안 줄였어요."
오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동의로 읽었다.
"양이 질이 되는 지점이 있어요. 한 마을에서 한 편 만든 사람은 실험을 한 겁니다. 100개 마을에서 100편을 만든다면 구조가 바뀌지는 못해도 그 가능성이 있을지 알았어요. 저는 오히려 고립되어 버렸어요. 그러니 전 더 오만해야 합니다. 그 구조에 겸손한 사람은 그 앞에서 아무것도 못 해요. 겸손하면 예산을 기다리게 되고, 예산을 기다리면 그쪽 화두를 받아 오게 됩니다. 제 오만은 성격이 아니라 조건이에요. 불난 자리에서 주차장 다니면서 100편을 하려면 그것 말고는 연료가 없습니다. 그건 제 아버지가 준 기질입니다."
"전 신지 님을 감당하지 못해요. 현재로서는."
"영웅이 되겠다는 게 아닙니다. 어느 것이 지금 평범한 사람들한테 필요한 것인지 .우리는 길을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영웅은 혼자 서서 우러러보라고 하지만, 길을 낸 사람은 뒤에 오는 사람이 그 길로 걸어오게 하잖아요."
"신지 님."
"네."
"100개 마을 이름을 다 기억하세요?"
"당연히 기억하지요."
오벨은 한참을 걸었다. 물소리가 났다.
"저는요." 그가 말했다. "제 이야기로 살아 본 적이 없어요."
"무슨 말인가요."
"아내가 쓴 이야기 속에 살았어요. 딸이 제 딸이 아니라는 것도 아내가 정했고요. 저는 그걸 나중에 통보받았어요. 20년을 두 사람의 사랑, 내 아내와 내 친구가 만든 사랑, 각본 안에서 산 거죠. 제가 쓴 것도 아닌데요."
"……."
"그래서 왜 내가 이렇게 남의 사랑의 희생자가 된 이유를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금 아버지를 찾아다니는 겁니까."
"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아야……."
"저번에 저더러 오만하다고 하셨죠." 내가 말했다. "로마를 꿈꾸는 것 같다고."
"그냥 잘난 척하는 게 싫었던 것 같아요. 이겨 먹으려는 행동 같아서요."
"저는 오만해요. 아직도 그게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안으로 편입시키지 못하는 권위 없는존재는 갈등하거나 배척하거나 폴리페모스화 시키게 되죠"
대학 친구가 하나 있었다. 병원에서 우연히 방송을 보고 나에게 달려왔다. 이거다, 이게 세상을 구할 정치적 행위다, 하면서. 몇 번을 같이 했다. 그런데 친구라는 게 오히려 일을 방해하기도 했다. 일은 수직적인 것인데, 친구 사이에서는 그게 잘 안 됐다. 결국 그 친구는 네가 그렇게 잘났냐, 하고 경멸하며 나를 떠났다.
그 뒤에 나는 미안하다고 했다.하지만
"세상의 예술을 완성시킬 수 있는 시간이예요. 시대의 운명을 거절할 수가 없어요.맞아요.
"무, 무슨 말인가요."
"피란델로는 1934년에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아내를 40년 가둬 놓고, 그 여자를 재료로 쓴 희곡으로요. 저는 그 사람이 못 한 걸 했어요. 저는 평범한 사람들을 창작자로 만들었고 모든 사람을 창작자로 만들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오만한 게 아니라, 세상은 진정한 창작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지 않아요."
오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었다.
"마을영화에서는 작가가 마을 사람이라면서요."
"그렇죠."
"그러면 신지 님은 뭔가요."
"저는 끄집어내는 무당이고 통합하는 창작자이지요."
우리는 시장 쪽으로 되돌아 걷고 있었다. 오벨이 갑자기 멈춰 섰다.
"저는 아까부터 그 할머니 생각을 했어요."
"순대요?"
"저번에 그 영국 여자 작가 얘기 하셨잖아요. 여자가 글을 쓰려면 자기 방과 자기 돈이 있어야 한다고 한."
"버지니아 울프요."
"연 500파운드라고 하셨죠. 고모가 남긴 돈."
"기억하시네요."
"그 할머니가 그걸 한 거 아닌가요."
나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85살에 자기 솥이 있고, 자기 자리가 있고, 자기 돈이 있잖아요. 오늘 몇 개 삶을지를 남한테 안 물어보고 정하고요. 울프가 평생 갖고 싶어 한 게 그거라면서요. 방 하나하고, 자기 돈."
"울프는 그걸 갖고 있었어요. 유산도 있었고 출판사도 자기 거였고요."
"그런데 강에 들어갔잖아요."
물소리가 났다. 나는 그 소리가 그날따라 크게 들린다고 생각했다.
"학교 나온 그 할머니는 10년을 누워 계셨다면서요." 오벨이 말했다. "학교도 안 나오고 이름도 안 남을 할머니는 60년을 서 계시고요. 저는 그게 실패한 사람 이야기 같지가 않아요. 울프가 쓰기만 하고 못 산 걸, 그 할머니는 쓰지 않고 살고 계신 거죠. 그, 그리고 제 생각에는요." 오벨이 말했다. "할머니는 신지 님 영화가 필요 없을 수도 있어요."
"필요 없다니요."
"아까 그러셨잖아요. 마을 사람은 작가를 찾는 등장인물이 아니라 등장인물을 찾는 작가라고요. 할머니는 벌써 그거 아닌가요. 자기 이야기를 살고 계시잖아요."
"그럴 수도 있어요.이미 버지니아 울프이니깐요 "
나는 그날 집에 와서 오래 앉아 있었다.
오벨은 아버지 장례를 전시로 하겠다고 했다. 아버지의 사진과, 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녹음된 말로. 아버지는 지금 요양병원에서 말을 잃어 가고 있다. 단어가 하나씩 빠져나가고, 나중에는 이름도 빠져나갈 것이다.
우리 존재는 스스로 말을 잃는다 해도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남는다.
피란델로의 아내는 40년 동안 병원에 있었고, 그동안 남편은 그 여자를 재료로 세계적인 희곡을 썼다. 지금 누구도 안토니에타 포르툴라노를 그 자신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질투에 미쳐 로마 거리를 뛰어다닌 아내로 기억한다. 남아 있는 건 그 여자를 본 남자의 말뿐이다.어쩌면 그 시대와 실존의 부조리와 불안 에 희생 당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작가를 찾는 등장인물은 결국 그 작가의 문장으로만 남는다.
나는 목소리 없는 사람들에게 표현의 권리를 돌려주는 시대가 분명히 왔다고 생각한다. 나의 목소리도 억압되어 있었다. 인간은 궤도를 달리는 기차가 아니다. 창작자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존재다. 데이타센터의 열기로 인해 빙하 아래 숨겨진 창작자, 주인공 유전자를 드러내는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이다. 존재를 확인하려면 노래부르고 춤추고 창작하는 삶이 아니면 안되는 물질이 아니라 정신의 시간이 오고 있다. 나는 한동안 가지 않은 정신과 병원 앞에 있었다. 나를 '망상장애(Delusional Disorder)' ‘조현병(schizophrenia)' 그 어울리지 않는 진단을 내린 그 무식하고 오만한 의사와 오늘 이야기를 해야겠다.(수정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