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단편 - 대리운전

대리운전

byToB

자정 조금 전에 알람이 울렸다.


서비스 종료 안내. 그동안 대리운전 파트너로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금일 04시부로 배차가 중단됩니다.


그 아래에 재문의 십오 년이 정리되어 있었다. 총 운행 22,483건. 총 주행거리 617,000킬로미터. 평균 별점 4.92. 우수 파트너 배지 여섯 개. 지구를 열다섯 바퀴 돈 거리였다. 전부 남의 차로, 남의 집을 향해서. 십오 년이 넉 줄이었다. 넉 줄 밑에 버튼이 하나 있었다. 확인.


그는 확인을 누르지 않고 폰을 뒤집어 놓았다. 누르면 정말 끝날 것 같아서였다.


그는 제 손을 내려다봤다. 오른손 엄지 뿌리에 굳은살이 있었다. 남의 핸들을 십오 년 잡으면 그 자리에 박였다. 차종이 바뀌어도 박이는 자리는 같았다. 그 손으로 그는 취객의 문을 열었고, 흘러내리는 몸을 받쳤고, 토사물이 묻은 시트를 물티슈로 닦았고, 조수석에 놓인 남의 가족사진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기사들 단체방에는 마지막 인사가 올라오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가 물결처럼 이어지다가 누군가 물었다. 우리 인제 뭐 하냐. 한동안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한참 뒤에 누가 치킨집 창업 설명회 링크를 올렸고, 그걸로 그 방에 쌓인 십오 년도 끝났다.


마지막 콜은 한 시 십 분에 떴다. 강 사장이었다. 십이 년 단골. 앱이 종료되기 세 시간 전에 들어온 콜이 하필 그였다. 재문은 우연이라는 말을 잘 믿지 않았지만 이번만은 우연이었으면 했다. 마지막이 배려라면 갚을 길이 없었다.


노선은 외우고 있었다. 상가 삼층 노래방 앞에서 태워 강변도로를 타고 이십사 킬로미터. 십이 년 동안 노래방 이름이 세 번 바뀌었고 아파트 담장이 한 번 높아졌고 사장의 몸무게가 조금씩 술 쪽으로 기울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구간과 순서뿐이었다.




강 사장은 뒷좌석에 이미 실려 있었다. 몸이 술에 잠겨 찰랑거리고 있었다.


"기사님 오셨어."


"예. 모시겠습니다."


차는 재문이 처음 앉아 보는 종류였다. 문이 스스로 열렸고, 운전석에 앉자 시트가 웅, 하고 움직여 그의 몸을 고쳐 앉혔다. 표준 체형에 맞춰 조정되었습니다, 하고 차가 말했다. 그의 몸은 표준에서 십오 년쯤 벗어나 있었지만 차가 그 사정까지 알 리 없었다.


버릇대로 룸미러에 손이 갔다. 각도를 잡아 놓자 미러가 스르륵 제자리로 돌아갔다. 한 번 더 잡았다. 한 번 더 돌아갔다. 더이상은 건드리지 않았다.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탑승자님. 차가 말했다. 그는 이미 매고 있었다. 탑승자라는 호칭이 낯설었다. 기사도 아니고 손님도 아닌 말. 십오 년 만에 처음 들어 보는 자기 자리였다.


목적지가 확인되었습니다. 출발합니다.


핸들이 저 혼자 돌았다. 잘 돌았다. 그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재문은 두 손을 핸들 위에 얹었다가, 열 시와 두 시 방향에 얹었다가, 결국 무릎에 내렸다. 손이 갈 데가 없었다. 브레이크를 밟을 일도, 깜빡이를 넣을 일도, 끼어드는 차 앞에서 욕을 삼킬 일도 없었다. 십오 년 치 일이 앉아 있는 일 하나로 줄어 있었다.


"기계가 다 하는데, 저는 왜 부르셨습니까."


강 사장이 부스스 눈을 떴다.


"법이 그렇다며. 사람 하나는 앉아 있어야 사고 나도 보험금 나온다며."


"다음 달부터는 그것도 없어진답니다."


"그래서 이번 달에 불렀지."


사장은 창에 머리를 기댔다.


"빈 차가 저 혼자 가는 거, 뒤에서 본 적 있어요? 나는 봤어. 꼭 내가 없는 세상을 미리 보는 것 같습디다. 세상이 아주 잘 굴러가. 나만 빼고. 이제는 그런 시대가 왔나봐."


"차는 좋은 걸 사셨습니다."


"아들이 사 줬어. 아버지 인제 대리 부르지 마시라고. 효도 한 번에 사람이 하나 잘렸지."


사장은 그 말을 하고 저 혼자 오래 웃었다. 웃음 끝이 술처럼 썼다.


차가 강변도로로 올라섰다. 코너에 들기 전에 미리 속도를 줄이는 품이 매끄러웠다. 저보다 낫네, 하고 재문은 직업적으로 인정했다.


램프를 내려서면 요철이 하나 있었다. 십이 년 동안 그는 그 앞에서 늘 미리 속도를 죽였다. 뒷좌석의 잠을 흔들지 않는 각도와 속도가 있었다. 저 앞에, 하고 입을 떼려는데 차가 먼저 부드럽게 비껴 지났다. 그는 뗀 입을 다물었다.


이 차 어딘가에는 그의 운전도 들어가 있을 것이었다. 새벽마다 찍힌 궤적이 어디론가 올라간다는 건 알고 있었다. 수만 명의 밤 운전이 반죽처럼 섞여서 이 매끄러움이 되었을 것이다. 소금처럼, 이름은 남지 않는 방식으로. 저 혼자 도는 핸들 속에는 그의 손목도 조금은 녹아 있는 셈이었다. 그게 위로인지 도둑맞은 것인지, 그는 끝내 정하지 못했다.


"우리 공장에도 들어왔어, 작년에."


사장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뭐가요."


"팔. 로봇 팔. 팔만 들어왔어. 몸통은 안 오고 팔만 있더만. 그 팔이 우리 반장 삼십 년 일을 여섯 달 만에 배우데. 반장은 그 팔 가르치는 일을 여섯 달 하고 나갔고."


"사장님은요."


"나는 사장이니까 못 자르지. 대신 아들이 그래. 아버지, 이제 공장은 파는 게 일이에요. 만드는 게 아니라."


"그래도 사장님은 십이 년을 저만 부르셨습니다."


"앱에 기사 지정이라는 게 생겼을 때, 내가 그거 제일 먼저 눌렀을 거요. 수수료를 더 받아 가더구먼. 사람 정하는 데 돈을 받아. 나는 그게 세상에서 제일 싼 돈이라고 생각했는데."


재문은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면 값이 붙을 것 같아서였다.


사장은 잠깐 조용하더니 덧붙였다.


"기사님. 우리 집사람도 모르는 내 술버릇을 기사님이 알지."


"압니다."


"뭔데."


"떠드시다가 우시다가 주무십니다. 꼭 그 순서로 하시죠."


사장이 픽 웃었다. 웃고는, 순서대로 했다.




집 앞에 차가 섰다. 도착했습니다, 하고 차가 말했다. 시동이랄 게 없어서 차는 그냥 조용해졌다.


재문은 사장을 바로 깨우지 않았다. 히터를 한 칸 올렸다. 바깥은 영하였고, 잠에서 막 깬 몸에 찬 공기가 닿으면 속부터 상한다는 것을 그는 계기판 밖에서 배웠다. 숨이 한 매듭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어깨를 짚었다.


"사장님. 댁입니다."


사장은 부스럭부스럭 지갑을 꺼냈다. 결제는 이미 앱으로 끝나 있었다.


"결제되셨습니다."


"아니까 이러지."


접힌 지폐가 재문의 손에 억지로 쥐어졌다.


"요즘 세상에 현금 받는 대리가 어딨습니까."


"그러니까 받아요. 세상에 없는 걸로 줘야, 준 게 되지."


사장이 신을 꿰는데 뒤축이 꺾여 있었다. 늘 그랬다. 재문이 몸을 숙여 그것을 폈다. 십이 년 동안 한 번도 값을 매겨 본 적 없는 동작이었다. 사장은 그 손을 잠깐 내려다봤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으로 무언가를 말했다.


사장은 차 문을 붙들고 일어서다 말고 돌아봤다.


"기사님은 인제 뭐 하시게."


"글쎄요. 운전 말고 한 게 없어서."


"운전만 한 게 아니지."


사장은 현관 쪽으로 비틀비틀 가며 말했다. 뒷말은 없었다.


차는 주인을 내려놓고 저 혼자 지하 주차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재문은 그 뒷모습을, 뒷모습이라는 말이 차에게 허용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잠깐 지켜봤다. 내려가는 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거리는 비어 있었고, 비어 있는 채로 움직였다. 무인 택시들이 드문드문 미끄러져 다녔다. 한 대가 그의 옆에서 속도를 늦췄다. 첫 탑승 오십 퍼센트 할인. 탑승하시겠습니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차는 반 블록쯤 나란히 따라오며 한 번 더 물었고, 세 번째는 묻지 않았다. 데려갈 수 없는 것을 이해한 것처럼 먼저 나아갔다.


그는 걸었다. 대리 십오 년의 절반은 이 길이었다. 태워 준 사람은 집에 닿고, 태워 준 사람은 걸어서 돌아오는 길. 예전에는 이 시간에 기사들을 실어 나르는 승합차가 돌았다. 조수석부터 짐칸까지 파스 냄새 나는 사내들이 끼어 앉아, 서로의 콜 지도를 훔쳐보며 졸던 차. 그 승합차도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다.


모퉁이 편의점 앞을 지났다. 예전에는 기사들의 명당이었다. 컵라면 물을 받아 놓고 폰 화면을 들여다보던 자리. 지금은 무인 점포였다. 안에 사람은 없는데 불은 환했다. 불 켜진 빈자리라는 게 세상에 저렇게 많아지고 있었다.


빈 사거리에서 무인차 두 대가 빨간불에 정확히 서 있었다. 보는 사람이 없어진 규칙을 기계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는 늘 건너던 대로 발을 내밀다가 거두었다. 파란불을 기다렸다. 여기 사람이 하나는 있다는 걸, 어디에다 대고인지도 모르게 보여 주고 싶었다. 파란불은 오래 걸렸다. 오래 걸려도 되는 처지가 된 것이, 조금 우스웠다.


십오 년 동안 그의 밤에는 값이 붙어 있었다. 기본요금, 거리 할증, 심야 할증, 우천 할증. 비가 오면 그의 한 시간은 비싸졌고 눈이 오면 더 비싸졌다. 값이 오르내리는 동안 그는 자기가 값나가는 사람인 줄 알 때도 있었다. 새벽 네 시부로 그 값은 전부 영이 될 것이었다. 값이 영이 되는 것과 사람이 영이 되는 것은 다른 일이라고, 그는 걸으면서 몇 번이고 생각했다. 다른 일이어야 했다. 다르다는 증거를 대라면 댈 것이 마땅치 않아서, 그는 증거 대신 오늘 밤을 꼽았다. 히터 한 칸, 숨의 매듭, 꺾인 뒤축, 우는 순서. 기계가 못 해서가 아니라, 시켜 본 적이 없어서 목록에 없는 일들.


네 시 정각, 주머니 속에서 폰이 짧게 떨었다. 내용은 꺼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첫차까지는 한 시간쯤 남아 있었다. 동쪽 하늘이 묽어지고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접힌 지폐가 만져졌다. 앱을 거치지 않은 오늘 밤의 유일한 돈. 사람이 사람 손에 쥐여 준. 지폐는 네 번 접혀 있었다. 접힌 자국마다 사장의 주머니 온기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착각이었고, 착각이어도 상관없는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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