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천국과 지옥은 해석에서 비롯된다
지난주 수요일에 어머니 휴대전화를 바꿔드렸다. 8년 넘게 쓴 어머니 휴대전화는 카지노톡 업데이트가 안 되어 가족 단톡방에서 강제 추방(?)될 위기에 임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아날로그 인간이라 휴대전화에서 어플보다는 문자와 사진, 통화 정도만 사용한다. 나와 달리 휴대전화 중독자가 아니기 때문에 전화기는 흠 간 곳도 없이 깨끗하다. 그렇지만 용량이 너무 적어 추억이 담긴 사진을 보관하기도 힘들어서 결단을 내렸다. 작년에 출시된 40만 원대의 기기. 시니어 요금을 적용하면 괜찮겠다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개통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내게 대리점 과장님이 전화했다. 자신이 착각해서 기기값을 지원하는 대신 우리가 원하는 시니어 요금 적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5G와 LTE 요금은 차이가 꽤 난다. 문제는 통신사를 변경했기 때문에 이전에 사용했던 통신사 대리점에서 다시 승인받아 재개통을 해야 한단다. 전화 온 날, 다시 대리점으로 들리긴 힘들어서 다음날 가기로 했지만, 다른 대리점에서 서울로 출타. 결국 주말 지나 오늘에서야 다시 대리점을 찾아갔다.
10시 개장 시간에 맞춰 어머니와 찾아갔더니, 다른 대리점 사장님이 기기를 가지고 오느라 문을 열지 않았단다. 어머니는 알바 가기 전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낭패다. 속으로 기도드리며 30분을 기다리니 과장님 휴대전화로 다른 대리점 사장님이 도착했다고 연락 왔다. 문제가 또 발생했다. 다른 대리점에 손님이 많아 어머니 개통이 늦어지는 거다. 아니, 우리 잘못도 아닌데 언제까지 기다리란 말인가? 순간 화가 났다. 마음 같아서는 무작정 기다리는 불편함에 신고라도 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오늘 일을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좋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12시가 다 되어서야 재개통이 이루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지난주 주문한 친필사인본 그림바카라을 읽었다.
"지금 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당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 <<나는 정말 나무가 되었다>>, 오하나 쓰고 홍시야 그림, 쥬쥬베북스, 2026
어느 사람이 나이에 따라 나무의 심경을 궁금해한다. 결국 자신도 나무가 되어 살다가 다시 사람이 되어 나무와 소통해 가는 과정을 그린 바카라이다. 어릴 적 저런 생각을 했다. 생전 노름꾼 아버지로 살고 싶지 않았을 때는 마음이 지옥이어서 신을 원망했다.
"차라리 저를 나무로 만드시지 그랬어요? 그럼 영혼도 없었을 테고,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놓고 고민에 휩싸일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사람이 위로가 안 되어 가로수를 쳐다보며 마음을 달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가 떠올랐다.
저자는 힘겹게 어머니 휴대전화를 재개통한 내게 묻는다.
"당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한 마디로 말하기 힘들어 거꾸로 질문했다.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떤 해석을 거치느냐에 따라서 같은 일이라도 천국이 될 수 있고, 지옥도 될 수 있다. 외부에서 불행이나 행복을 찾기보다 내면 상태에 따라, 아니, 어떤 해석도 하지 않고 그 자체로 바라본다면 어떨까.
글쓰기는 내게 그런 것이다. 어떤 스펙을 지녔는지, 팔로우 수가 얼마나 되는지, 집안 재산과 명성이 어디만큼 왔는지 묻지 않는다. 재지 않는다. 외모도, 친구 수도, 재산도, 그 어떤 것도. 그냥 쓰고 싶으면 쓰면 그만. 쓰면 된다. 잘 쓰고 못 쓰고, 인정받고 인정받지 못하고는 나중 일이다. 쓰고자 하면 쓰면 된다. 한 번 쓰고 고치면 된다. 바카라 읽고 생각하다 뭔가 떠오르면 접목시키거나 다시 수정하면 된다. 퇴고를 거쳐 어딘가에 응모하기도 한다. 글쓰기는 삶의 에너지이다. 잘나서 쓰는 글이 아니고, 잘나기 위해 쓰는 글도 아니다. 그저 나로 살기 위해, 나를 지탱하기 위해 쓸 수밖에 없어 쓰는 것이다. 이 자체가 행복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행복하진 않다. 일을 쉴 때는 일하는 사람이 부럽다. 일할 때는 쉬는 이가 부럽다. 이 땅은 홀로 살 수 없고 다른 이들을 보며 해석하게 된다. 해석을 멈추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그 자체가 행복이다. 불행의 반대말이 행복이 아니듯 행복의 반대가 불행도 아닌 것처럼.
나무의 마음을 궁금해한 사람은 나무가 되어 해와 달과 바람으로 충분히 행복해한다. 해와 달과 바람은 늘 마주하는 것이다. 지구 한편에선 전쟁으로 그조차 사치가 된 사람들이 있다. 가엾게 살고 싶어서는 아닌데 자신의 뜻과 달리 그렇게 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생각하면 때로 일상이 사치인 것 같아 미안하다. 아무튼 최신형 노트북은 아니지만, 자판을 두드리며 여기에 글 쓰는 오후, 낙원이다.
"이번 주 숙제는 행복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세요. 반대로 불행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도 좋고요. 누군가에게는 행복이든 불행이든 생각할 틈조차 없이 하루하루가 지옥인 이들도 많을 텐데요. 전쟁이 하루빨리 그치길 기원합니다. 기후 온난화인지 벌써 덥더라고요. 일교차 크니 감기 조심하시고, 일상이 무탈하길 바랍니다."
p.s. 휴대전화 여파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나 봅니다. 멤버십 구독 설정을 누를 겨를도 없이 발행해 버렸네요.
유료 구독자분들에게는 언젠가 신간 나오면 답례를 해야겠죠? :D (이번만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