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빡침4.

분리수거도 안 되는 것들

byChanghee


우리 아파트는 일주일에 두 번 분리수거를 내놓을 수 있다. 목요일과 일요일이다.


나는 평소에 페트병 라벨을 뜯고, 캔은 헹구고, 택배 상자는 테이프를 떼서 납작하게 접어 분리수거용 가방에 넣어둔다.

날을 잡아 한꺼번에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매일 해놓으면 오히려 편하다.
귀찮지만 이미 습관이 되었다.


그렇게 곱게 분류한 걸 들고 내려가면 분리수거장은 늘 같은 풍경이다. 그 앞에 서면 매번 같은 생각이 든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지난주 일요일에는 종이류 포대 앞에서 걸음이 딱 멈췄다.

치킨 배달 쇼핑백이 배달 온 모습 그대로 꽂혀 있었다.
안에는 마시고 찌그러뜨린 맥주 캔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종이 포대에 캔이라니.


하필 그게 내 눈에 보였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옆에는 치킨 뼈가 있었다.

이영자 씨가 먹은 것처럼 살만 야무지게 발라낸 뼈였다.
먹는 솜씨 하나는 인정한다.

게다가 무만 쏙 빼먹고 남은 국물을 용기째 쇼핑백 바닥에 두고 갔다.
그 쇼핑백이 종이 포대에 들어가 있었다. 포대 바닥은 이미 축축해지고 있었다.


맥주도, 치킨도, 무도 다 해치운 사람이 마지막 한 단계에서 멈춘 것이다.


쇼핑백을 열어서 안의 것들을 갈라놓는 일. 그 한 단계를.


그 옆에는 시뻘건 비닐봉지가 있었다. 김치를 담았던 비닐을 헹구지도 않고 그대로 넣은 것이다. 붉은 국물이 봉지 밑으로 번져서 옆에 있던 멀쩡한 비닐들까지 물들이고 있었다.


누군가 정성껏 헹궈서 내놓은 비닐들이었을 텐데.


CCTV를 확인하고 싶었다. 진심이다.

뭘 어쩌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얼굴이 궁금했다.
이런 걸 내놓고도 태연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을 그 얼굴이.


집에 와서 아파트 커뮤니티 게시판을 열었다가 더 맥이 빠졌다.


"배달 음식 용기는 헹궈서 버려야 하나요?"


몰랐다는 글이었다. 악의 하나 없는 순진한 말투였다. 처음 알았다며 고마워하는 댓글도 달려 있었다.


그래, 모를 수 있다. 모르면 물어보면 된다. 적어도 그 사람은 알려고 했으니까.

그런데 우리 동 엘리베이터 게시판에는 분리수거 방법이 붙어 있다.
그림까지 곁들인 친절한 안내문이다. 분리수거장 벽에도 붙어 있다.


우리는 문맹도 아니다. 글자를 읽을 줄 안다. 그런데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러니까 내 빡침의 정체는 무식이 아니다. 무심이다.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아서 그렇다.


나중에 누가 치우겠지, 알아서 분류하겠지. 대놓고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예 아무 생각이 없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리고 그 아무 생각 없음의 뒷감당은 고스란히 남이 한다.


분리배출의 기본 원칙은 간단하다.

비우고, 헹구고, 분리하고, 섞지 않는 것.

페트병 라벨을 떼고, 캔에 남은 음료를 비우고, 종이 상자의 테이프를 제거하는 일.
치킨 뼈는 일반쓰레기로, 국물을 비운 치킨무 용기는 깨끗이 헹궈 재질에 맞게 버리는 일.


모두 외우기 어렵다면 안내문을 보면 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휴대전화만 들여다보지 말고,
바로 옆에 붙은 안내문도 한 번쯤 읽어보라는 얘기다.


"분리수거 다 소용없어요. 어차피 재활용 안 됩니다."

어쩌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 또 묻게 된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내가 아무리 헹구고 떼고 접어도 옆 포대에서는 김치 국물이 번지고 있는데.


목요일이 됐다.

나는 오늘도 페트병 라벨을 뜯고 있다.

의미가 있어서는 아니다.

그냥 내 손에서 나가는 건 내가 바카라임지고 싶어서다.


오늘도 깨끗하게!

누가 본다고... 그래? 내가 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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