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은 그렇다. 가장 진실된 마음일 때 할 수 있는 선택이다. 불편을 피하다 보면 불행이 슬금히 와있다. 편리는 24시간 꺼지지 않는 2배의 삶을 선물했지만, 24시간 사라지지 않는 과잉 생산성을 향한 열정도 함께 선물하며... 야금야금 로맨스와 여유를 갈취한다.
#1
손님이 오거나 미팅이 있는 날, 선택적 출근을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집중적으로 더 많이 한다. 내심 대표가 출근하지 않는 사무실이 얼마나 평화로울지 혹은 자유로울지 짐작하면서. 실은 나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대표실이 있는 사옥이 생긴다면 다를 것 같긴 하다. 암묵적으로 꼭 대면할 일이 있을 때 사무실 출근룰을 정해놓으니 출근하는 일이 불편한 일이 돼버렸다. 어찌어찌 이런 패턴에 적응하다 보니 출근하는 날은 일처리를 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집중적으로 온 힘을 다하게 된다. 결국은 사람을 보면서 하는 일처리가 아주 효과적이다. 할 말도 정리해서 한 번에 전하고, 준비도 하고, 분위기 전환도 비교적 쉽다. 홀로이 일할 때도 출근할 때도 허투루 쓰는 시간이 더 줄어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주의 집중력을 끌어다 쓰면서 생산성을 올리는 대표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대체 대표님을 뭘 할까를 생각하는 직원들. 대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특단의 조치이기도 했다. 참견하는 거 안 하려고 나온 도망이다. 사무실 밖에서 운영하는 조직을 바라본다. 우리는 적정한 거리를 시절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가면 그만인 것을. 보이는 것보다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2
에어컨 없이 생활한 지 2.5년이 지났다. 동거인이 2년 동안 한여름엔 해외로 연수를 떠나셨기에 나만 감당 가능하면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했다. 재난이 아닌 이상,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쨍쨍하면 쨍쨍한 대로 모든 날씨를 즐기는 타입이기에 자신 있었고, 2년... 어렵지 않았다. 사실 별걸 다 해보긴 했다. 아이스팩 안고 자기, 대나무 자리, 전기차에서 잠깐 쉬기, 카페로 피신하기... 남들은 불편하다지만 개의치 않았기에. 그런데 동거인이 해외 연수를 거부하면서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남들이 볼 땐 기후변화로 인한 온도 상승이 갱신되고 있는 시점에서 왜 이런 짓을 벌이느냐 하겠지만 기후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다고 그 경험을 동거인께도 선물하고 싶었다고 위스퍼링 하겠다. 우리는 언제든 에어컨을 달 수 있다. 살 수 있다. 한번 견뎌보자. 이렇게. 어디 가든 에어컨이지 않나. 더운 여름날 집을 들어서면 공기가 약간 후덥지근하다. 어제는 동거인이 박사 수업 듣는다고 아침부터 집 나간 내게 혼자서라도 수박을 사서 먹겠노라 선포했다. 돌아와 보니 수박의 3분의 2를 먹고 나머지를 모두 손질해서 얼려두기까지 했더라. 그제는 친구랑 주말인데 7시에 일어나 한강 수영장에 다녀오시기도 했다. 나는 통풍이 잘 되는 치마만 입기 시작했다. 에어컨 없는 여름은 동거녀에게는 부지런함을 나에게는 여성성과 자연과 함께하는 더 많은 시간을 선물했다. 한강 산바카라을 하러 가면 집 보다 시원하다. 그러니 좋아할 수밖에. 일부러 겪는 역경에 동거인을 동참시키며 눈치를 종종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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