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카 4th - 수다쟁이 Minolta AF V&D
초여름의 명동은 늘 계절을 헷갈리게 만든다. 누군가는 한여름처럼 가벼운 반팔 차림으로 걷고,
누군가는 봄의 끝자락에 머문 듯 얇은 기능성 패딩을 꼼꼼히 걸친 채 발걸음을 옮긴다.
일교차는 10도 가까이 벌어졌다.
고층 빌딩이 빚어낸 그늘 아래 공기는 서늘하다 못해 차갑다.
하지만 볕 아래로 한 걸음만 내디뎌도 한낮의 7월처럼 뜨거운 열기가 피부로 쏟아진다.
하늘은 티 없이 맑고 푸르렀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수많은 외국어가 뒤섞인 거리의 소음은 이 오래된 도시의 심장박동처럼
빠르고 활기차게 울린다. 나는 낡고 투박한 카메라 하나를 오른쪽 손목에 감고 명동의 복잡한 골목 사이를
걷고 있었다.
박찬호 부럽지 않은 수다쟁이 카메라
한때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박찬호 선수의 별명은 ‘투머치 토커’다.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을 정도로 말이 많다는 유쾌한 뜻이다. 사진계에도 그런 별명을 붙일 만한 카메라가 있다. 필름 카메라 애호가라면
주저 없이 이 모델을 떠올릴 테다. 오늘 산바카라을 함께하는 주인공은 미놀타(Minolta) AF V&D다.
미놀타의 자동초점(AF) 콤팩트 라인업 중에서도 유별난 모델이다. AF-S, AF-V, V&D, Talker까지 이름만
들어도 꽤 거창하다. 1980년대 일본 전자회사들이 품었던 첨단 기술을 향한 집착이 이 작은 플라스틱 덩어리 안에 가득 담겼다. 카메라를 조금 만져본 사람이라면 모델명 끝에 붙은 'D'를 보며 자연스레 '데이터백(Data back)'을 떠올린다.
필름 우측 하단에 주황색 빛으로 촬영 날짜나 시간을 찍어주던 낭만적인 기능이다. 내 카메라의 D는
수명을 다해 죽어 있었다. 뒷면의 작은 액정은 희미했고 날짜를 새겨주는 기능은 멈췄다.
세월은 인간에게도 그렇지만 정밀한 전자기기에게 생각보다 훨씬 잔인하다.
기계가 말을 건네던 낭만의 시대
이 카메라의 진짜 정체성이자 가장 큰 의문은 바로 'V'에 있다. 뒤판을 무심코 뒤집어 보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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