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누구의 것인가

2026 All-Day-Project (185/365)

byJamin

결과가 나에게 돌아오는 사람 에 이어서


결과는 누구의 것인가 — AI가 일을 대신하는 시대의 프로


지난 글에서 나는 프로를 "결과가 자기에게 되돌아오는 사람"이라 적었다. 솔랭은 한 판을 흘려보내지만 프로는 한 경기를 평판으로, 연봉으로, 다음 시즌으로 떠안는다고. 그 정의가 마음에 들어서 한참을 거기 머물렀다.


그런데 글을 닫고 나서 한 가지가 걸렸다. 그 정의는 조용히 무언가를 전제하고 있었다. 결과가 '내 손'에서 나온다는 것. 내가 직접 만든 것이기에 그 결과가 나에게 돌아온다고, 별 의심 없이 믿고 있었다. AI가 정확히 그 전제를 흔든다.


한 몸이었던 두 가지


결과를 둘러싸고 그동안 두 가지가 한 몸으로 붙어 있었다.


하나는 저자됨. 이 결과가 누구의 손에서 나왔는가. 다른 하나는 귀속. 이 결과가 잘못됐을 때 누구에게 돌아오는가. 우리는 이 둘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만들었으니 내 바카라임이고, 내 바카라임이니 내가 만든 것이었다. 둘은 용접되어 있었다.


도구도 이 용접을 깨지 않았다. 망치는 내 손의 연장이었고, 엑셀의 수식도 결국 내가 짠 것이었다. 도구가 아무리 정교해도 저자는 여전히 나였다. 그런데 AI는 다르다. AI는 저자됨을 가져가면서, 귀속은 가져가지 않는다. 코드를 짜고 초안을 쓰고 분석을 돌리는 손은 점점 기계의 것이 되는데, 그게 틀렸을 때 해고당하고 사과하고 평판을 잃는 자리에 기계는 앉지 않는다.


AI는 노동을 가져가지만 바카라임은 가져가지 못한다. 그래서 결과의 귀속은 자동화되지 않는다.


이게 "AI가 다 하면 프로는 필요 없다"는 흔한 불안이 절반만 맞는 이유다. 자동화되는 건 저자됨이지 귀속이 아니다. 프로의 자리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옮겨간다.


저자에서 보증인으로


어디로 옮겨가는가. 만드는 자리에서, 판단하고 보증하는 자리로.


예전에는 매끄럽게 잘 빠진 결과물 자체가 실력의 증거였다. 깔끔한 코드, 유려한 문서, 그럴듯한 분석은 그걸 만들 줄 아는 사람만 내놓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AI는 매끄러움을 거의 공짜로 찍어낸다. 정합성의 인플레이션이다.


유려함이 더는 실력의 증거가 아니게 되면, 무엇이 좋은 결과인지 가려내는 판단이 희소해진다. 만드는 게 싸지면, 무엇을 만들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이 출력이 정말 괜찮은지를 판단하는 일이 비싸진다. 예전 글 식으로 말하면, 정합성은 기계가 채워주지만 가치는 여전히 사람이 골라야 한다.


지난 글에서 신뢰의 근간은 '프로라면 이 정도는 한다'는 기대라고 했다. AI 시대에 그 기대의 내용이 바뀐다. '저 사람은 기계가 뱉은 걸 그대로 넘기지 않는다.' '저 사람이 통과시켰으면 믿어도 된다.' 프로는 점점 가장 잘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 나갈 자격이 있는지 판단하고 거기에 자기 이름을 거는 사람이 된다.


저자에서 보증인으로. 다른 글에서 나는 한국이 지켜야 할 단 하나가 심판의 중립성이라고 적었는데, 개인의 차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셈이다. 생산이 흔해질수록, 판정하고 보증하는 자리의 무게가 커진다.


새로운 가짜 프로


지난 글에서 가장 위험한 건 영광은 가져가고 바카라임은 외주화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AI는 이 외주화에 완벽한 알리바이를 준다.


"AI가 그렇게 썼는데요." 결과가 틀렸을 때 기계를 탓하는 것. 저자됨이 기계로 넘어갔으니 귀속도 같이 넘어갔다고 착각하는 것. 그러나 저자됨과 귀속은 이미 분리됐고, 넘어간 건 저자됨뿐이다. 바카라임은 그대로 내 자리에 남아 있다. 기계 핑계를 대는 순간, 그는 보증을 안 한 것이고 — 보증을 안 했으면 프로가 아니다.


여기에 더 미묘한 함정이 있다. 직접 땀 흘려 만들 때는 결과가 내 것이라는 감각이 노동의 마찰과 함께 따라왔다. 밤새 짠 코드는 누가 말 안 해도 내 것이었다. 그런데 AI가 30초 만에 뽑아준 결과물에는 그 마찰이 없다. 마찰이 사라지면 '내가 만들었다'는 감각도, 그래서 '내가 바카라임진다'는 감각도 함께 옅어진다. 검토 없이 그냥 넘기고 싶은 유혹이 따라온다.


이건 게으름이라기보다 일종의 마취다. 자유에 관해 쓰면서 두려움이 사라진 자유가 가장 위험하다고 했는데, 일에서도 비슷하다. 바카라임의 감각이 마취된 채 내보내는 결과물이 가장 위험하다. 그래서 AI 시대의 프로는 흘러간 귀속을 의도적으로 다시 떠안아야 한다. 다시 읽고, 따져 보고, 이름을 걸기 전에 한 번 더 멈추는 것. 지난 글의 기록과 저널이 결과를 나에게 되돌려놓는 장치였다면, 이제는 그런 장치가 하나 더 필요해진 셈이다.


그래서, 이름을 거는 일


솔직히 말하면, 이 글도 AI에서 왔다. 그런데 어떤 문장을 남기고 어떤 문장을 버릴지, 무엇이 내 생각으로 내보낼 가치가 있는지는 내가 정했다. 그리고 이 글이 얕거나 틀렸다면, 그건 AI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다. 이름을 건 건 나니까.


어쩌면 이게 AI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정직함이다. 노동이 싸지고 흔해질수록, 무엇이 프로를 프로이게 하는지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잘 만드는 능력은 점점 기계와 나눠 갖게 되겠지만, 결과를 떠안는 자리는 나눌 수 없다. 기계는 거기 앉지 못한다.


"결과가 나에게 돌아온다." 이 한 문장은 AI 시대에 폐기되는 정의가 아니다. 오히려 자동화의 물이 차오를 때 끝까지 잠기지 않는, 프로의 유일한 핵으로 남는다. 프로는 가장 잘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끝내 자기 이름을 거는 사람이다 — 그리고 그 자리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전히 사람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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