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시리즈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야기
나는 단수가 아니다 — 세 개의 시리즈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야기
지난 한 달 동안 세 개의 시리즈를 썼다. "함께 간다는 것", "만드는 사람들의 협업법", "시스템이 나를 데려다준다". 총 26편. 쓸 때는 각각 별개의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다 쓰고 나서 한 발 물러서서 보니 이 셋이 하나의 이야기였다는 걸 알게 됐다.
"함께 간다는 것"은 밖을 향한 질문이었다. 왜 함께해야 하는가. 두 사람의 신뢰에서 시작해 세 사람의 역학, 팀의 소통 비용, 회사의 구조, 경쟁자 사이의 협력, 국가 규모의 약속까지. 규모가 달라질 때마다 문제의 성격이 질적으로 변한다는 걸 따라갔다. 죄수의 딜레마, 트라이어드, 던바의 수, 거래비용, 코피티션, 공유지의 비극. 우리가 매일 겪으면서도 이름을 몰랐던 것들에 이름을 붙이는 여정이었다.
"만드는 사람들의 협업법"은 그 "함께"를 실제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넷플릭스의 "프로 스포츠팀" 모델에 의문을 품으면서, 제품팀에 필요한 건 선수의 마인드셋이 아니라 단장의 시선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사람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리듬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무엇을 볼 것인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무엇을 그만둘 것인가, 어떤 문화를 만들 것인가. 팀이라는 시스템을 만드는 이야기.
"시스템이 나를 데려다준다"는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온 이야기였다. 팀의 시스템은 열심히 설계하면서, 정작 내 삶의 시스템은 공사 중이었다는 고백에서 시작했다. 2년 전에 세운 "귀찮으면 하거나 무시하기"라는 한 줄짜리 규칙이 의외로 살아남았다는 데서, 목표보다 시스템이 먼저라는 발견으로 이어졌다.
밖에서 안으로. 왜에서 어떻게로. 이론에서 실천으로. 이 흐름이 자연스럽게 생겼는데, 계획한 게 아니었다. 쓰다 보니 이렇게 됐다. 그리고 그 사실 자체가 세 번째 시리즈의 핵심 메시지—시스템이 방향을 만들어준다—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세 시리즈를 가만히 놓고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단어가 반복되고 있었다. 시스템.
첫 번째 시리즈에서 두 사람 사이의 신뢰를 이야기할 때, 팃포탯이라는 전략을 소개했다. 먼저 협력하고, 배신당하면 한 번 되갚고, 상대가 돌아오면 바로 용서하는 것. 이건 "착한 사람이 되자"는 도덕적 권유가 아니었다. 신뢰를 만드는 시스템이었다. 규칙이 있고, 트리거가 있고(상대의 행동), 피드백이 있다(다음 라운드의 결과). 세 사람의 관계에서 중재자가 작동하는 것도, 던바의 수 안에서 팀을 작게 유지하는 것도, 코즈의 거래비용을 줄이는 회사의 구조도, 오스트롬의 공동체가 스스로 규칙을 만든 것도—전부 시스템이었다. 사람의 선의에 기대지 않고, 구조가 작동하게 만드는 것.
두 번째 시리즈는 더 직접적이었다. 팀의 조합을 설계하고, 사람을 키우는 구조를 만들고, 리듬을 설계하고, 지표를 세우고, 평가 기준을 바꾸고, 포기의 원칙을 세우고, 문화를 습관으로 만드는 것. 매 편이 "어떤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7편에서 "문화는 선언이 아니라 습관이다"라고 쓴 순간, 나는 이미 세 번째 시리즈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던 거다. 조직의 습관을 이야기하다가 결국 개인의 습관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으니까.
세 번째 시리즈에서는 그 시스템을 나 자신에게 적용했다. 목표 대신 시스템, 의지 대신 에너지, 완벽한 계획 대신 최소 시스템, 의지력 대신 환경 설계, 자바카라 대신 복구 장치, 한 우물 대신 스킬 스태킹. 팀을 위해 고민했던 것들이 결국 나에게도 필요했다.
이 세 겹을 관통하는 하나의 통찰이 있다면,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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