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질문: 문장이 완벽하게 명확한데도 재작업이 벌어진다면?
4-2 명확함은 친절이다의 보론. 명확하다고 다 통하지 않는다 — 같은 단어, 다른 도메인
핵심 질문: 문장이 완벽하게 명확한데도 재작업이 벌어진다면?
4-1에서 우리는 "상대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가정하라 배웠습니다. 선한 의도를 전제하면 갈등의 절반은 사라집니다. 그런데 나머지 절반은 의도가 아니라 언어에서 옵니다. 선한 의도를 아무리 넉넉하게 깔아줘도, 같은 단어를 서로 다르게 알아듣는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원글은 명확한 요청의 공식을 알려줬습니다.
What(무엇을)-When(언제까지)-Why(왜). 이 공식대로 완벽하게 채운 문장을 하나 보겠습니다.
PM 은수가 백엔드 개발자 도현에게 보낸 메시지입니다.
"결제 실패 시 사용자에게 명확한 에러 메시지를 보여주세요(What).
이번 스프린트 안에요(When).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서예요(Why)."
문장 구조로만 보면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THINK 체크리스트도 통과합니다. True, Helpful, Necessary, Kind — 다 갖췄습니다. 도현도 "네, 하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스프린트 마지막 날, 은수가 배포된 화면을 열어보니 사용자에게 뜨는 문구는 이랬습니다.
ERROR_CODE: PG_TIMEOUT_408
도현 입장에서는 이것도 "명확한 에러 메시지"였습니다. 로그를 뒤지는 다음 개발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한 메시지니까요. 은수가 상상한 문구는 전혀 달랐습니다. "카드 잔액을 확인해주세요" 같은, 사용자가 다음에 뭘 해야 할지 아는 문장. 같은 단어 "명확함"을 두고 두 사람은 정반대의 것을 그렸습니다.
명확함의 기준은 화자의 도메인 안에서 정의된다. 상대가 다른 전문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 문장 구조가 What-When-Why를 완벽히 갖췄어도 핵심 명사 하나의 의미가 통째로 어긋나 있을 수 있다. 진짜 명확함은 문장 형식이 아니라 "이 단어가 상대의 세계에서도 같은 뜻인가"를 확인하는 데서 완성된다.
원글이 인용한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를 떠올려봅시다. Newton(1990)의 Tapper-Listener 실험에서, 노래를 아는 사람이 손가락으로 리듬만 두드리면 상대가 알아맞힐 확률을 50%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2.5%만 알아맞혔습니다. 아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걸 상대도 안다고 가정합니다.
우리는 보통 이 저주를 "전문가와 초보자 사이"의 문제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은수와 도현은 둘 다 전문가입니다. 은수는 PM으로서, 도현은 백엔드 개발자로서 각자 자기 도메인에서는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지식의 저주가 한 번 해소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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