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삼각’과 ‘제품의 경계’

2026 All-Day-Project (193/365)

byJamin

조쉬의 뉴스레터, 개발이 공짜가 된 시대... 를 읽고

1. 전도된 프로세스, 공짜가 된 구현

OpenAI의 코덱스 팀을 이끄는 앤드루 앰브로시노(Andrew Ambrosino)는 제품을 만드는 순서가 완전히 뒤집혔다고 말한다. 과거의 제품 개발 프로세스는 "구현은 비싸다"는 전제 아래 움직였다. 기획서(PRD)를 쓰고, 리서치를 하고, 와이어프레임을 그리며 앞단에서 위험을 최대한 걷어낸 뒤에야 비로소 개발에 착수했다. 프로토타입이나 디자인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구현이 공짜인 시대"다. 말 한마디면 백지상태에서도 그럴싸한 기능이 뚝딱 세워진다. 빌더(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이 AI라는 강력한 엔진을 쥐게 되면서, 이제 제품 팀의 최전선에는 수십 개씩 쏟아지는 프로토타입이 먼저 자리 잡는다. 기획이 개발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구현이 기획의 뺨을 치며 달려 나가는 형국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전통적인 PM의 무기였던 일정 관리, 명세서 작성, 화면 기획의 가치는 폭락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혼돈의 시대에 PM은 무엇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가?


2. 시작을 여는 PM의 무기: ‘질문의 깊이’


작고 기민한 조직일수록 이니셔티브(시작)는 여전히 PM의 몫이다. 하지만 빌더들이 AI를 활용해 치고 들어오는 속도가 무섭게 빨라진 지금, PM의 어설픈 기능 명세는 순식간에 파편화된 프로토타입의 폭풍으로 되돌아와 조직을 마비시키기 쉽다.


따라서 AI 시대 PM의 ‘시작’은 화면이나 기능의 나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지금 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가?"에 대한 극도로 날카로운 문제 정의와 '제약 조건(Constraint)'의 제시여야 한다.


빌더들이 AI로 무언가를 마음껏 만들어오는 환경은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마땅하다. 다만 기술적 흥미나 속도감에 취해 엉뚱한 방향으로 뛰지 않도록, PM은 비즈니스적 마지노선과 유저의 명확한 통점(Pain Point)이라는 단단한 프레임을 짜주어야 한다. PM과 빌더가 하나의 명확한 가설을 향해 발을 묶고 뛰는 진정한 의미의 ‘이인삼각(二人三脚)’ 협업은 바로 이 정교한 프레임워크에서 시작된다.


3. "그럴싸한 프로토타입은 제품이 아니다"


AI가 뱉어내는 결과물은 눈이 부시다. 탐색용으로 대충 띄워놓은 화면인데도 마치 내일 당장 출시해도 될 만큼 완성도 높아 보이는 착시(가짜 정밀함)를 일으킨다. 이 지점에서 수많은 조직이 "시각적으로 준비되었으니 그냥 내보내자"는 함정에 빠진다.


이때 PM의 진짜 안목과 취향(Taste)이 요구된다. 눈앞의 화려한 프로토타입을 보며 "이건 아직 제품이 아니다"라고 냉정하게 말할 수 있는 문지기(Gatekeeper)의 역할이다.


지금의 AI는 코드를 복잡하게 만들고, 지속 가능한 아키텍처나 장기적인 유지보수성, 유저가 실제로 앱에 잔류할지(Retention)에 대한 비즈니스 정합성을 고려하지 못한다. 앤드루의 지적대로 콘텐츠와 구현이 무한해진 세상에서 저품질 양산물(Slop)을 걸러내고 진짜 신호(Signal)를 가려내는 큐레이션 역량, 그것이 바로 AI 시대 PM이 가져야 할 최고 수준의 취향이다.


4. NNL 로드맵과 ‘재워두기’의 감각


"9개월 뒤 계획에 정밀함을 더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라는 선언은 단기 가설 검증과 큰 방향성의 소통을 철저히 분리해야 함을 시사한다. 가까운 것일수록 자세하게, 먼 것은 흐릿하게 다루는 NNL(Now, Next, Later) 방식은 이 시대에 가장 최적화된 로드맵 관리 문법이다.


여기서 PM은 'Later' 영역을 다루는 새로운 감각을 벼려야 한다. 과거의 Later가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열어보는 퀴퀴한 백로그 리스트였다면, AI 시대의 Later는 기술의 임계점을 기다리는 유연한 '대기실(Freeze & Defrost)'이 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의 AI 모델 지능으로는 구현하기 어렵거나 유저 경험이 조악한 아이디어라도, 방향성상 반드시 필요하다면 거친 프로토타입 상태로 일단 만들어 ‘재워두는(Freeze)’ 것이다. 그리고 기반 기술(AI 모델의 지능)이 도약하는 타이밍을 포착해, 잠들어 있던 아티팩트를 깨워 새 모델로 갈아 끼우고 'Now' 트랙으로 즉시 전환(Defrost)시키는 서핑 선수 같은 감각, 이것이 유연한 로드맵 운영의 핵심이다.


결론: 칸막이를 넘어 빈틈을 메우는 자


"두 명의 PM이 너무 가까이 붙어서 일하면 안 좋은 신호다"라는 말은 PM이 더 이상 자기 도메인의 칸막이 속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디자이너가 엔지니어의 언어를 쓰고, 엔지니어가 제품을 발의하는 역할 붕괴의 시대에 PM은 농구의 지역 방어(Zone Defense)처럼 조직의 빈틈을 찾아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

빌더들이 AI라는 무기를 쥐고 폭주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되, 제품의 철학과 비즈니스의 끈을 놓지 않는 균형 감각. 구현이 공짜가 된 시대에도 여전히 PM이 제품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이인삼각의 프레임'과 '제품의 경계를 나누는 안목'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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