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말이 더 친절하다

문법은 틀렸고, 사람들은 쓴다

bySusie 방글이




얼마 전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미국에 오래 사셨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한국 의사가 있는 병원을 선호하신다. 설명이 이해되고, 질문도 자유롭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하다고 하신다.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진다. 접수창구에서도 한국어, 대기실에서도 한국어, 진료실에서도 한국어. 잠시 한국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엄마 옆에 앉아 차트를 기다리는데 간호사가 다가왔다.


"어머님, 이쪽으로 오실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웃음이 났다. 아, 또 이 말이다.


작년 한국에 머물 때도 유난히 자주 들었던 표현이었다.


"앉으실게요."

"이쪽으로 오실게요."

"가운을 입으실게요."


한국에 있는 동안은 별생각 없이 들었다. 서비스업에서 쓰는 말투쯤으로 생각했다.


미국에 돌아와 다시 들으니 느낌이 조금 달랐다. 유행어라기보다 함께 이민 온 언어 같았다.


김치와 라면만 건너온 줄 알았는데 서비스용 존댓말도 태평양을 함께 건너고 있었다.


국어바카라 기준으로 보면 틀린 표현이다. 정확히는 "이쪽으로 오세요"가 맞다. 사람들은 계속 "오실게요"를 쓴다.


왜일까.


사람들은 문장을 정확하게 만들기보다 분위기를 먼저 맞추는 것 같았다. "오세요." 맞는 말이다. 조금 직접적이다.


"오실게요." 틀린 말이다. 묘하게 부드럽다. 안내처럼 들린다. 명령이 아닌 장면처럼 들린다.


"오실게요"라는 말이 어울리는 온도, 문장들이 조금 더 부드러워지는 자리.


이 지점에서 문법보다 더 강한 것이 하나 있다.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명령문을 공손한 형태로 바꿔낸 언어의 창의성이다.


살아 있는 언어는 늘 그렇게 불편함을 피해 다른 길을 만든다. 정확함보다 중요한 순간, 말은 감정을 먼저 선택한다.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은 환자다. 말은 직원이 함께 움직인다.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그 문장이 뒤에 숨어 있는 셈이다.


병원뿐 아니라 미용실, 카페, 호텔에서도 어렵지 않게 들린다. 정확한 표현보다 상대를 편하게 만드는 표현을 선택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 표현은 문법 논쟁보다 먼저 사람들의 입에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어색하다. 누군가는 틀렸다고 지적한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 어느 날 그냥 일상이 된다. 언어는 늘 그렇게 변해 왔다.


"앉으실게요"가 가장 자연스러운 자리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데 간호사가 또 말했다.


"어머님, 이제 나가실게요."


또 웃음이 났다. 진료를 받는 동안 어머님은 오셨고, 가운도 입으셨고, 이제는 나가신다. 오늘 하루 참 바쁘셨다.


엄마를 모시고 병원을 나서는 길,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을 떠나온 지 오래인데도 한국어는 여전히 이동 중이다.


어떤 말은 사전에 남고, 어떤 말은 사람들을 따라 국경을 건넌다. '오실게요'는 아마 후자인 모양이다.



살아 있는 말과 규칙 사이의 작은 틈. 맞춤법 검사기는 아직도 "오실게요"를 틀렸다고 한다.



틀린 말이 먼저 살아남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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