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배는 어느 쪽인가

아삭함과 부드러움 사이에서 달라지는 기준의 감각

bySusie 방글이




배는 배인데, 어느 나라에서는 부드러워야 맞고 다른 나라에서는 아삭해야 맞다.


처음엔 단지 취향의 차이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질문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맛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가장 좋은 상태라고 믿는가."


한국에서 배는 단단하다. 손에 들었을 때 묵직하고, 껍질 안쪽에 긴장감이 살아 있는 상태가 자연스럽다. 아삭함은 하나의 기준처럼 작동한다. 선명하고, 분명하고, 형태가 잘 유지된 상태.


그래서 한국 배는 언제나 "아직 괜찮은 상태"로 유지되는 쪽이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 흐물 해 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더 이상 관리 가능한 범주가 아니라, 어딘가 기준에서 벗어난 상태로 이동한다.


반대로 미국에서 만난 배는 조금 다르다.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단단함보다는 부드러움이 먼저 들어온다. 과육이 입안에서 쉽게 풀리고, 씹는다는 느낌보다 받아들인다는 느낌에 가깝다.


부드러움은 어떤 의미에서는 완성된 상태처럼 느껴진다. 같은 배인데도 기준이 다르다. 어디에서는 아삭함이 안심이 되고, 어디에서는 부드러움이 가장 맛있는 순간이 된다.


겉으로 이미 좋은 상태라고 말하는 배.


아직 완성이라고 부르기 전의 배


안쪽에서 천천히 상태가 바뀌고 있는 배.


이 차이는 결국 기준이 놓여 있는 자리의 차이처럼 보인다.


한국의 배는 '밖에서 판단되는 과일'에 가깝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단단함으로 상태를 가늠한다. 형태가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고, 그 상태가 신뢰가 된다.


반면 미국의 배는 '안에서 완성되는 과일'처럼 느껴진다. 겉으로 보이는 단단함보다, 입안에서 풀리는 순간이 더 중요하다. 같은 배를 먹으면서도 서로 다른 순간을 가장 좋은 상태라고 믿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 생각은 배에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형태가 유지된 상태를 믿고, 누군가는 변해가는 상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결국 같은 배를 두고도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를 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생각보다 자주, 아주 사소한 장면에서 드러난다.


예를 들면 마트 과일 코너에서, 배 하나 앞에서 잠깐 멈추는 순간처럼.


미국 마트에서는 같은 배 앞에서 잠시 맴돌게 된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살짝 눌러보면 미묘하게 다른 반응이 온다.


"이건 지금 먹어야 하나, 아니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하나."


그 순간 배 하나가 작은 선택의 문제가 된다. 괜찮겠지, 아직 아니겠지, 오늘이 맞겠지. 짧은 협상이 시작된다. 가끔은 배보다 내가 더 타이밍을 살피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이런 망설임이 비교적 짧다. 단단한지, 흠집이 없는지 보면 이미 판단이 끝난다. 상태는 눈으로 충분히 읽히고, 선택은 빠르고 명확하다.


반면 미국의 배는 집에 가져온 뒤에도 계속 상태를 바꾼다. 어제는 멀쩡했는데 오늘은 갑자기 달라져 있다. 예고 없이 부드러워진다.


한국 배는 보통 시원하게 먹으려고 냉장고에 넣어둔다. 상태를 유지하는 느낌에 가깝다. 반면 미국 배는 주방 한쪽에서 조용히 자기 시간을 보낸다. 문제는 그 시간이 늘 내 예상보다 빠르게 흐른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끔은 배라는 과일이, 상태를 유지하기도 하고 바꾸기도 하는 방식으로 느껴진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배를 고르는 건지 상태를 읽고 있는 건지 조금 헷갈려진다. 배 하나인데도 사람마다 가장 좋은 순간이 다르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재미있어진다.


그리고 결국 다시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나는 어떤 쪽에 더 익숙한 사람인가. 아삭한 상태를 기준으로 삼는 쪽인가, 부드러워지는 순간을 받아들이는 쪽인가.


생각이 여기까지 오면 조금 웃기다.

마트에서 배 하나 고르면서 이런 생각까지 하는 사람이 과연 배를 잘 고르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그런데도 결국 장바구니에는 배가 들어간다.

그리고 집에 와서 다시 한번 확인한다.


지금 이 배는, 어느 쪽의 배인지.


잘라 놓은 배가, 잠깐 웃고 있었다.


결국 배는 배인데, 우리는 그걸 다르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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