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가 아니라 섬김이다

세네카의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와 디모데전서 3장 사이에서

bySunny Sea


주일 설교 시간, 목사님이 바카라 한 권을 소개하셨다. 요즘 서점 매대에 가면 베스트셀러로 놓여 있는 바카라, 『세네카, 오늘을 빼앗기고 있는 당신에게』. 영문 제목은 'Seneca: Life is Not Short'다. 인생은 짧지 않다는 것이다. 2천 년 전 로마 철학자의 글이 지금 이토록 많은 사람에게 읽힌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목사님은 그 바카라을 디모데전서 3장의 바울의 말씀과 나란히 놓으셨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 그리고 사도 바울.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한 사람은 황제의 궁정에, 한 사람은 감옥과 길 위에 있었다. 흥미롭게도 세네카의 형 갈리오는 사도행전 18장에서 고린도의 총독으로 바울의 재판을 기각했던 인물이다. 두 사람의 세계는 생각보다 가까이 맞닿아 있었다.


교회는 지금 항존직 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래서일까. 오늘 말씀은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았다.



짧은 인생이 아니라, 낭비한 인생


이 바카라의 중심에는 세네카의 대표작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가 있다. 세네카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잘 쓸 줄만 안다면 인생은 충분히 길다는 것이다. 분주함과 욕심과 남의 시선에 끌려다니느라 정작 자기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는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이 문장 앞에서 38년의 교직을 돌아본다. 퇴직을 3년 앞둔 지금, 시간은 더 이상 막연히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남은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세네카의 질문은 2천 년을 건너와 내 앞에 놓였다.


같은 덕목, 다른 뿌리

바울은 디모데전서 3장에서 교회를 섬길 감독과 집사의 자격을 말한다. 절제하며 신중하며, 다투지 않고 관용하며, 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집사는 정중하고 일구이언하지 않으며,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놀랍게도 세네카가 강조한 덕목과 많이 겹친다. 절제, 신중, 관용. 세네카는 네로에게 『관용에 관하여』라는 글까지 바쳤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세네카의 덕은 인간의 이성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셀프 컨트롤'에 뿌리를 둔다. 바울의 덕은 성령의 이끄심에 자신을 맡기는 데서 흘러나온다. 같은 열매처럼 보여도 뿌리가 다르다. 바울은 3장을 이렇게 맺는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덕의 근원이 나의 의지가 아니라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께 있다는 고백이다.


스승의 가르침은 왜 제자를 지키지 못했나

세네카는 어린 네로의 스승이었고, 즉위 초기 국정을 보좌한 조언자였다. 그러나 네로는 결국 어머니를 죽이고 폭군의 길을 걸었으며, 마침내 스승에게까지 자결을 명했다.


이유는 여럿이다. 견제 없는 절대 권력, 아첨하는 주변 사람들, 권력 다툼 속의 불안. 그리고 불편하지만 정직하게 짚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세네카 자신도 검소함을 가르치면서 막대한 재산을 모았고, 권력의 잘못을 묵인하거나 변호해야 하는 자리에 서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가장 뛰어난 스승조차 자기 자신을 끝까지 다스리지 못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교사로서 오래 멈춰 섰다. 아이들에게는 학습만큼이나 정서가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나는 『SEL 31 CHaT 루틴 슬롯정서학습 컬러링북』과 『 CHaT 루틴 마음 색칠하기 컬러링북』을 집필했다. 그리고 그 바카라으로 아이들과 함께 활동하며 영어 명언 학습과 슬롯정서학습을 해 왔다. 감정을 알아차리고, 멈추고, 선택하는 힘을 기르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그 시간이 마음이 쉬어 가는 힐링의 시간이었다고,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교사로서 참 고마운 피드백이었다.


그 가르침은 분명 소중하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그 너머를 보게 했다. 인간의 컨트롤은 아무리 훌륭해도 불완전하다. 가르치는 나 역시 그렇다. 절제는 결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결국 누구에게 나를 맡기느냐의 문제로 돌아간다.


이름은 달라도, 모두 섬기는 사람

'집사'로 번역된 헬라어 '디아코노스'는 본래 식탁에서 시중드는 사람, 곧 섬기는 사람을 뜻한다. 높은 자리가 아니라 낮은 자리다.


교회마다 직분의 체계는 조금씩 다르다. 장로, 권사, 안수집사, 서리집사. 부르는 이름도, 맡는 역할도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그 모든 직분은 결국 하나님의 일을 맡은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하나로 모인다. 직분은 계급이 아니라 섬김의 다른 이름이다. 바울이 집사의 직분을 잘한 사람은 아름다운 지위를 얻는다고 했을 때도, 그 지위는 섬김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지 섬김의 목적이 아니었다.


항존직 선거를 앞두고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누가 그 자리에 어울리는가"보다 "누가 이미 섬기고 있는가"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먼저 와서 문을 열고, 말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며, 다툼 앞에서 관용을 택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어떤 직분을 받든, 받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고 있다.


새로운 일꾼들을 기다리며

나 역시 이미 직분을 받아 섬기고 있는 사람으로서, 오늘 말씀은 먼저 나를 향한 질문이었다. 나는 자리를 지키고 있는가, 섬김을 살고 있는가. 직분을 받은 지 시간이 흐를수록 익숙함이 경건을 대신하지는 않았는지 조용히 돌아보게 된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어떤 분들이 세워지면 좋을지, 요즘 기도하며 살피고 생각하는 중이다. 아마 다른 성도들도 어떤 분을 뽑아야 할지 마음이 분주할 것이다. 후보가 된 분들 가운데에도 내가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인지, 감당할 수 있을지 부담을 느끼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후보에서 사퇴하는 분도 있다. 그 고민의 무게를 알기에, 그 마음 또한 귀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한 가지 기도가 생겼다.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 맡길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 자리가 주어졌을 때 더 열심히 섬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세워지기를. 직분을 명예의 자리로만 여기지 않고, 그 자리를 통해 그동안 다 하지 못했던 섬김을 마음껏 펼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사람이기를. 자신의 의지로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에 기꺼이 자신을 맡기는 사람이기를.


세네카는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했다. 바울은 그 시간을 누구에게 맡겨야 하는지 알려 주었다. 둘을 나란히 놓고 보니 하나의 답이 보인다. 인생이 짧지 않으려면, 나를 다스리려 애쓰는 데서 멈추지 말고 나를 이끄시는 분께 맡겨야 한다는 것.


새로 세워질 일꾼들과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는 우리 모두가, 자리가 아니라 섬김으로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오늘 내가 받은 말씀이다.





#신앙에세이 #인문학 #세네카 #디모데전서 #섬김 #사도바울 #인생은짧지않다 #시간의가치 #오늘을사는지혜 #스토아철학 #디모데전서 #성경묵상 #기독교신앙 #철학과신앙 #삶의우선순위 #시간관리 #인생의지혜 #자기성찰 #고전읽기 #온라인카지노스토리 #에세이 #이선 #EduSunny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댓글창은 누구의 공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