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담임일지도 모를 날들
요즘 차 안에서 화장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역대급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지난 주말에는 제주도로 강의를 다녀왔다. 일정이 여유롭지 않아 고민했지만, 제주도에서까지 나를 초청하는 데에는 하나님께서 뭔가 계획하신 뜻이 있지 않으실까 싶어 수락했다. 이틀간의 출장을 위해 교환 수업을 해야 했기에 두 주 전부터 무척 바빴다. 게다가 1차 정기고사 문제 출제까지 마치고 제출한 뒤에 떠나야 해서, 일이 겹쳐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 와중에 갑자기 병가를 내신 선생님을 대신해 2주째 임시 담임을 맡고 있다. 이 임시 담임은 아무래도 한 달 이상 이어질 것 같다. 교환 수업과 출제만으로도 벅찼는데 임시 담임 업무까지 겹치고 나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미뤄 둔 일이 많아도 나의 본업은 학교 일이다. 이 부분에 펑크가 나거나 잘못되면 다른 일들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다행히 임시로 맡은 반 아이들은 모두 내가 가르치는 3학년 영어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이다. 평소 관계를 잘 맺어 놓은 덕분인지 내가 담임을 맡은 것을 반기는 기색이다. 몇몇 아이들은 직접 환영의 말을 아끼지 않고 건네주기도 한다. 말도 잘 듣고, 중3이 되어서인지 스스로 알아서 눈치껏 잘해 준다.
그래도 정기고사가 다가오고 있어서 아이들은 많이 긴장해 있다. 늦게까지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고, 수업 참여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그러다 보니 조퇴를 하거나, 병원에 들렀다 오거나, 아침에 아프거나, 독감에 걸려 차라리 결석을 하는 등 여러 이유로 근태 상황이 생긴다. 이 모든 경우에 증빙 서류와 함께 신고서를 받아 두어야 하기 때문에 챙기느라 바쁘다.
또 이번 시험이 끝나면 곧 전기고등학교 원서 접수가 시작된다. 학생들이 어느 학교에 지원할지 수요 조사를 하고, 필요하면 지원도 해 줘야 한다. 연초에 조사한 바가 있긴 하지만, 중간중간 바뀌고, 포기하거나 새로 생기는 경우가 잦다는 것을 다년간 중3 담임을 해 본 경험으로 알고 있다. 벌써 과학고 1차에 합격해 2차 면접을 준비해야 하는 학생도 있고, 외고나 예고·체고, 특성화고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여러 명 있다.
오늘은 수학 시간을 빌려 영어 진도를 나가기로 어제 결정하고 아이들에게 공지했다. 시험 범위까지 나가는 데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표가 한 주 동안 골고루 퍼져 있으면 괜찮은데, 이 학급은 수·목·금요일에 수업이 몰려 있다. 출장 때 수업을 모두 교환해서 빠진 적이 한 번도 없는데도 시간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 이번 시험이 바로 수·목·금에 실시되어 시험 주간에는 이 학급 수업이 통째로 빠지기 때문에, 시험 전에 미리 시간을 확보해야 했다. 다행히 진도를 다 나가신 수학 선생님께서 시간을 빌려 주셔서 그 시간에 진도를 나가기로 했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지식샘터 강의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웹 씽크와이즈 협업 링크를 활용한 학생 참여 수업 사례를 소개하는 강의이고, 다른 하나는 하브루타 질문 중심 수업과 AI를 활용한 학생 과정평가의 방법과 사례를 소개하는 강의다. 월요일과 화요일 저녁에 연이어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강좌를 만들어 놓고도 바쁘다 보니 홍보조차 제대로 못 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출근 전에 서둘러 블로그에 강좌 안내글을 올리고, 지금 연재하고 있는 글의 링크도 함께 달았다. 그리고 영어교사 톡방과 고래학교 톡방에 공유했다.
지식샘터 강의는 적어도 두 달 전에 준비를 마치고 강좌 등록을 해야 한다. 강좌를 등록하면 한 달 동안 지식샘터에서 검토를 하고, 보완이 필요하면 강사에게 보완 요청을 한다. 최종 승인은 강의 직전 달 말에야 난다. 8월부터 지식샘터 강좌의 패턴과 템플릿이 완전히 바뀌어서 새로 만드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8월에는 웹 씽크와이즈 한 강좌만 열었고, 9월에는 하브루타를 하나 더해 두 강좌를 열게 되었다. 10월에는 바카라 쓰기 관련 강좌를 하나 더 신청해 둔 상태다. 지금 '검토 완료'라고 떠 있는데, 보완 요청이 분명히 올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오거나, 아니면 추석이 끝난 뒤에 올 것 같다. 보완 기간은 길어야 하루 이틀밖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걸 보완하느라 또 시간을 들여야 한다. 아무튼 예정된 일들은 다 해내야 하기에, 빠듯한 가운데서도 지금은 그래도 무리 없이 잘 해내고 있다.
거기에 태어난 지 5개월 된 손주를 육아하는 딸을 조금이라도 도우려 하고 있는데,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출퇴근 시간이 워낙 오래 걸리는 편이고,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하는 시간도 늦은 편이라 남편이 주로 딸네 집에 가서 아이 돌보는 일을 돕는다. 처음에는 남편이 가서 도와줄 때면 꼭 나를 불러 함께하게 했었다. 그런데 제대로 역할을 나누려면 혼자서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더니, 처음엔 나 없이는 못 하던 목욕도 이제는 혼자서 잘 시킨다. 나보다도 더 잘 손주를 케어하는 것 같다. 저렇게 사랑스러워하며 아이 보기를 기뻐하는 할아버지가 계신 손주가 부러울 정도다.
나는 할아버지가 목욕을 시켜 놓고 재우는 동안 들어가서, 인계를 받아 아예 잠을 재우는 역할을 할 때가 많다. 딸은 저녁이 되어 남편이나 내가 교대해 줄 때에야 비로소 혼자 밖에 나가 필라테스를 하거나 병원에 다녀온다. 딸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잠시 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요즘의 일상이다. 아이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최대한 시간을 내서 곁에서 도우려 한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가 해야 할 일들, 바카라 쓰기나 강의안을 조금 더 들여다보는 일은 한밤중으로 몰리게 되고, 틈틈이 해내지 않으면 어려워진다. 그래서 아침에 화장할 여유도 없이 출근길에 오르고, 차 안에서 간단히 화장을 할 수밖에 없다.
다행인 것은 요즘 스틱형 메이크업 도구가 편리하게 나와 있다는 점이다. 지난 명절에 조카가 쓰는 것을 보고 '아, 이런 것도 나와 있구나' 하고 알게 되어 구매해 두었는데, 들고 다니며 쓱쓱 화장하기에 정말 편리하다. 집을 나서기 전에 기초 화장은 미리 해 두고, 그 위에 스틱으로 바른 뒤 솔로 살살 펴 바르면 뚝딱 화장이 끝난다.
머리 손질할 시간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오늘도 긴 머리를 손질할 틈이 없어, 틀어 올려 큰 핀 하나로 고정하고 집을 나섰다.
임시 담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원래는 기간제로 들어오는 사람이 대체하는 분의 모든 일을 맡는 것이 맞겠지만, 한 달만 근무하는 사람이 담임까지 해야 한다면 아마 지원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또 학교 관리자나 다른 선생님들, 학부모들 모두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정상적으로 잘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중3 담임 경험이 많고, 마침 그 반의 부담임으로 배정되어 있었던 터라, 내가 맡아 주었으면 한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그냥 아무 말 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열심히 차를 몰아 학교 근처에 도착했다. 평소 일을 줄이고 빨리 처리하는 데, 그리고 이렇게 급박하고 시간이 없는 가운데서도 일을 해내는 데 참 큰 도움이 되는 것이 AI다. 내 생각을 말로 하면 글로 적어 주는 음성 인식(STT) AI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지금 이 글도 출근길에 휴대폰으로, 운전하다 쉬는 틈틈이 쓰고 있다. 앉아서 글을 쓸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먹을 추석 음식으로 LA갈비는 이미 지난 주말에 다 재어 두었다. 맏며느리로서 그 음식을 가지고 내일 온 가족이 모이는 시댁에 간다. 함께 만두도 빚고 이야기도 나누며,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여유를 나누려 한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조금 달라졌다. 어린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를 힘들지 않게 잘 돌보는 것이 온 식구의 관심사이자 배려의 마음이 되었으니, 아이에 맞춰 명절 풍경도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할머니로서 신경을 조금 더 써야 할 부분이다. 그래도 모두가 곁에서 잘 도와주니, 어려움 없이 추석 명절을 잘 보낼 수 있으리라 본다.
오늘은 추석 바로 전날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명절을 배려해서인지, 오늘은 수업 시간을 단축해 평소보다 조금 일찍 끝난다고 한다. 게다가 오늘은 점심시간 급식 지도까지 맡은 날이라, 짧아진 하루가 오히려 더 촘촘하게 채워질 것 같다. 일찍 끝나는 것이 좋기는 한데, 수업 시간 1분이라도 아쉬운 내 입장에서는 한 시간에 5분씩 잘려 나가는 것이 너무나 아쉽기도 하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 입에서 떨어지는 말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학생들 앞에서, 나의 열정적인 수업은 목소리와 제스처를 점점 더 크게 만든다. 이런 학생들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예년에도 아이들과의 관계나 수업 시간은 좋았고 재미있었지만, 올해처럼 내가 의도하는 대로 잘 따라 주고 다 소화해 내면서 오히려 내게 힘이 되어 주는 학생들을 만난 건 처음이다.
그런데 학교에 들어서자 여러 선생님들이 머리가 달라졌다며, 예쁘다는 말을 건네주셨다. 조금 의아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기분이 좋았다. 가끔 시간이 없어 대충 핀 하나 꽂고 나선 날, 의외로 예쁘다는 좋은 피드백을 받는 경우가 있다. 전혀 꾸미지 않고 그냥 슬쩍 한 머리나 옷차림인데, 정작 나는 너무 바빠 어쩔 수 없이 급하게 한 것인데, 뜻밖에 다른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경험을 몇 번 해 보았다. 오늘도 바로 그런 날이었다. 고구마를 먹은 듯 바쁘고 힘든 나날이지만, 그런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힘나게 하고 즐겁게 만들어 준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아이들이 내가 담임을 맡아 준 것을 고마워하고 좋아하며 잘 따라 주니, 한 달이 넘을지도 모를 이 시간도 큰 무리 없이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이 학생들이 내 교직 생활의 마지막 담임 학급, 마지막 우리 반 아이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정성을 다해 아이들을 대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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