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겪는 자에서 질문하는 자로
먼저 밝혀둔다. 나는 이 시집이 태어난 독서모임에 함께 있었고, 같은 자리에서 『질문하는 인문학』을 냈다. 그리고 이 시집의 저자 최욱희 선생님은 내 바카라에 추천사를 써주신 분이다. 그러니 이 글은 바깥에서 쓴 서평이 아니다. 안에서 쓴 글이라는 것을 알고 읽어주시기 바란다.
이 시집을 처음 펼쳤을 때 나를 붙든 것은 시가 아니라 목차였다.
여섯 권의 고전이 나란히 서 있고, 그 아래마다 똑같은 다섯 단어가 반복된다. 걸음, 날숨, 체온, 잔향, 기억. 설국에도 다섯, 화씨 451에도 다섯, 메논에도 다섯. 6×5의 격자.
38년간 아이들 앞에서 문장을 잘라 왔던 사람으로서 나는 이 배치가 무엇인지 안다. 이건 청크(Chunk)다. 서로 아무 관계 없어 보이는 여섯 세상—눈의 나라, 절망의 내면, 불의 슬롯, 성장의 길, 우주의 질서, 질문의 끝—을 같은 자로 재어보겠다는 선언이다.
격자라는 말을 조금 풀어 두고 싶다. 바둑판처럼 가로줄과 세로줄이 만나 칸이 생기는 구조다. 가로 여섯 권, 세로 다섯 이정표. 서른 칸이 나오고 그 한 칸마다 시 한 편이 놓인다. 30편이라는 숫자는 우연이 아니라 6×5의 결과다.
격자로 짜여 있으면 두 방향으로 읽을 수 있다.
가로로 읽기는 한 권의 고전을 다섯 감각으로 훑는 것이다. 목차 순서대로 읽는 보통의 방식이다.
세로로 읽기는 이를테면 '기억'만 여섯 편을 이어서 읽는 것이다. 그러면 설국의 "텅!"이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스며든다"가 되고, 화씨 451에서 "내 호흡은 전도서를 외운다"가 되고, 메논에서 "내가 알았나이다"로 닫히는 흐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시집의 진짜 설계는 세로에 숨어 있다. 여섯 권을 관통하는 곡선은 가로로만 읽어서는 보이지 않는다.
프롤로그에서 시인은 이 다섯을 이렇게 설명한다. "모든 인간이 의지와 무관하게 경험하는 것들." 나는 이 문장에서 잠시 멈췄다. 의지와 무관하다는 것. 배우지 않아도 이미 하고 있다는 것. 교육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영역이 바로 여기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지식을 줄 수는 있어도 감각을 줄 수는 없다. 다만 이미 가진 감각에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 뿐이다. 이 시집이 하는 일이 정확히 그것이다.
서른 편을 순서대로 읽고 나면 하나의 곡선이 보인다.
1부 설국의 화자는 철저히 당하는 자다. 걸음에는 방향이 없고, 날숨은 회수되지 않으며, 체온은 닿아도 소유할 수 없다. 「기억」의 마지막은 단 한 글자다.
텅!
폭발이자 공백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리.
2부에서 화자는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부른다. "내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김춘수의 문장을 빌려 왔지만 방향이 반대다. 남이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부른다. 그리고 3부에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다루기 시작하고, 4부에서 몸에 습관이 새겨지고, 5부에서 우주의 질서 안에 놓이고, 6부에 이르러 마침내 이렇게 끝난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텅!」과 「알았나이다」 사이에 서른 편이 놓여 있다. 시인은 6부 마무리 글에서 이 구조를 스스로 밝힌다. "설국의 '텅!'에서 시작한 여정이 여기서 고요한 앎으로 돌아옵니다."
수동에서 능동으로, 겪는 자에서 질문하는 주체로. 이건 문학적 구성이기 이전에 학습의 곡선이다. 나는 이 곡선을 교실에서 수백 번 봤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앉아 있던 아이가 어느 날 손을 들고 묻기 시작하는 그 지점. 이 시집은 그 지점까지 가는 길을 여섯 권의 고전으로 깔아놓았다.
각 부의 끝에는 「이정표를 지난 당신에게 묻습니다」가 놓인다. 부마다 세 문항, 모두 열여덟 개.
여기서 이 바카라의 성격이 갈린다. 보통의 시집은 닫힌다. 시인이 말을 마치면 독자는 감상만 남는다. 그런데 이 바카라은 매 부의 끝에서 독자에게 질문을 넘긴다. 답을 주는 대신 되묻는다.
"텅!" — 당신의 기억 중 이 소리로 끝난 것은 무엇입니까?
계산기로는 나오지 않는데 몸이 먼저 알았던 판단의 순간이 있었습니까?
당신의 몸 안에 우주가 있다면 — 지금 그 우주는 어떤 상태입니까?
이 질문들은 정답이 없다. 지식을 확인하지 않고 경험을 불러낸다. 하브루타 질문의 조건을 정확히 충족한다.
더 눈여겨볼 것은 이 바카라이 독서모임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프롤로그에 그 과정이 적혀 있다. 여섯 권을 함께 읽고, 토론하고, 각자의 산출물로 전자바카라을 내자는 말 한마디에서 이 시집이 시작됐다. 하브루타로 읽은 결과를 하브루타를 유발하는 형식으로 되돌려준 셈이다. 받은 방식 그대로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구조. 이것이 내가 이 바카라을 교육 자료로 보는 가장 큰 이유다.
같은 자리에서 나도 하나를 냈다. 『질문하는 인문학 — 청소년을 위한 사유 훈련 SERIES 1』이다. 공교롭게도 두 바카라은 같은 출판사에서 같은 날 나왔다. 2026년 6월 25일. ISBN도 나란한 연번이다.
다룬 여섯 권도 같다. 설국, 죽음에 이르는 병, 화씨 451, 니코마코스 윤리학, 티마이오스, 메논. 그런데 나온 것은 이렇게 달랐다. 한쪽은 서른 편의 시가 되었고, 다른 한쪽은 청소년이 색칠하고 짝과 묻고 씽크와이즈로 정리하는 예순여덟 쪽의 워크북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둘 다 격자라는 점이다. 이 시집은 여섯 권 × 다섯 이정표, 내 워크북은 여섯 권 × 여덟 쪽 리듬. 같은 여섯 권을 세로로 자르는 방식만 서로 달랐던 셈이다.
같은 텍스트에서 같은 답이 나오면 그건 하브루타가 아니다.
가장 오래 붙들려 있었던 곳은 5부다.
『티마이오스』는 내가 여러 번 읽고 낭독까지 해본 텍스트다. 그런데 5부를 펼치자 낯선 이름들이 줄줄이 나왔다. 선문대할망, 영실기암, 백록, 윗세오름, 병풍바위, 용진각 현수교, 왕관릉. 제주에 여행을 갔을 때 안내판이나 가이드의 설명으로 몇 번 들어본 말들이다. 그때는 그냥 지나쳤다. 아름다운 지명이구나, 하고.
그런데 시인이 마무리 글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인간의 몸이 우주의 축소판이라는 것을 — 제주의 신화가 플라톤보다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이 문장 때문에 나는 처음으로 찾아보았다. 알게 된 것을 옮겨 둔다.
선문대할망은 제주를 만든 창조 여신이다. 치맛자락에 흙을 퍼 담아 한라산을 쌓았고, 터진 구멍으로 흘린 흙이 제주 곳곳의 오름 삼백예순여 개가 되었다고 한다. 이름은 전승마다 달라서 설문대할망, 설명대할망, 세명주할망 등으로도 불린다. 시인이 쓴 '선문대할망'도 그중 하나다.
가마솥과 영실기암은 한 이야기다. 할망에게는 오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아들들에게 먹일 죽을 큰 솥에 끓이다 그만 솥에 빠져 죽었다. 아들들은 모르고 그 죽을 먹었고, 막내만 뼈를 발견하고 통곡하며 떠나 차귀도의 바위가 되었다. 남은 형제들은 슬픔에 겨워 울다 그대로 굳어 한라산 영실의 기암괴석, 오백장군이 되었다고 한다.
백록담의 이름은 흰 사슴에서 왔다. 신선이 백록을 타고 내려와 물을 마셨다는 전설이다.
병풍바위와 왕관릉은 한라산 관음사 코스의 조면암 절벽이고, 용진각 현수교는 그 험한 계곡을 건너는 다리다.
찾아보고 나서 5부를 다시 읽었다. 완전히 다른 시가 되어 있었다.
「잔향」의 "할망 죽 쑤던 가마솥"은 죽솥이 아니라 만든 자가 사라진 자리였다. "영실기암 자녀들은 언제 깨어나나?"는 굳어버린 오백 아들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기억」의 마지막 세 줄에 이르면—
나긋이
나긋이
그렇게 나긋이
만든 자는 떠났는데 남은 것들은 저 혼자 돌아간다. 데미우르고스가 물러난 뒤에도 우주가 스스로 운행하듯이. 할망은 솥에 빠져 사라졌지만 오름 삼백예순 개와 백록담과 오백 개의 바위는 그대로 남아 계절을 돈다.
시인의 그 문장이 무슨 뜻이었는지 그제서야 알았다.
내가 아는 것은 절반뿐이었다. 플라톤은 알았지만 우리 땅의 신화는 몰랐다. 여행지에서 흘려들은 이름으로만 가지고 있었다. 이 다섯 편은 내가 가진 절반에 나머지 절반을 붙여 주었다.
인문고전을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져올 것인가. 나는 오랫동안 이 질문을 붙들고 있었다. 번역해서 읽히는 방식은 늘 한계에 부딪힌다. 아테네는 멀고 아이들의 생활은 여기 있다. 이 시집은 다른 길을 보여준다. 고전을 우리 땅의 것과 맞세우는 것. 6부에서 플라톤의 상기설을 성경의 언어로만 풀어낸 것도 같은 전략이다.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메논의 역설이 "아는것도 같고 모르는 것도 같으면 / 계속 당신께 기도만해도 되겠습니까?"가 될 때, 2,400년 전의 문제가 오늘의 기도가 된다.
그렇게 아테네는 한라산으로 걸어 내려오고, 소크라테스는 기도가 된다.
정직하게 적어둔다. 추천사를 받은 사람이 그 저자의 바카라에 아쉬움을 적는 것이 편할 리 없다. 그런데 우리가 함께 배운 방식이 그것이었다. 반박하지 않는 하브루타는 하브루타가 아니다. 좋은 말만 적어 돌려드리는 것이 오히려 결례라고 생각한다.
1부에서는 원작의 문장이 대괄호 안에 인용되어 시 앞에 놓인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같은 식이다. 원작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 이 장치는 훌륭한 다리다. 그런데 2부부터 사라진다. 결과적으로 3부 이후는 원작을 모르면 진입이 어려워진다. 「체온」의 "괴이한 검은 호수 기계들"이 밀드레드의 위세척 장면이라는 것을, 「잔향」의 파랑새 깃털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아야 시가 열린다.
각 부의 마무리 글이 그 역할을 어느 정도 대신하기는 한다. 5부에서 나를 찾아보게 만든 것도 그 글이었다. 다만 순서가 아쉽다. 안내판이 시 뒤에 서 있으니 다섯 편을 헤맨 다음에야 길을 알게 된다. 나 같은 독자는 마무리 글을 먼저 읽고 시로 돌아가는 편이 나았다.
물론 이것은 결함이라기보다 선택일 것이다. 여섯 권을 읽은 사람들의 산출물이니까. 다만 이 바카라이 더 넓은 독자를 만나려면, 1부의 그 대괄호가 끝까지 갔더라면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시집 전체의 밀도도 균일하지 않다. 1부와 4부가 가장 두껍고, 5부와 6부는 훨씬 성기다. 뒤로 갈수록 말이 줄어드는 것이 의도된 것이라면—질문의 끝으로 갈수록 침묵에 가까워지는 것이라면—오히려 정교한 설계다. 그렇게 읽고 싶다.
퇴직을 앞둔 사람의 직업병으로 마지막은 활용법을 적는다.
하나. 다섯 이정표를 그대로 하브루타 틀로 쓸 수 있다. 어떤 텍스트든—소설이든 뉴스 기사든 아이들 자신의 하루든—걸음, 날숨, 체온, 잔향, 기억으로 잘라 보게 하는 것. 다섯 개의 서랍은 아이들이 자기 경험을 정리하기에 적당한 개수다.
둘. 열여덟 개의 질문은 그대로 활동지가 된다. 특히 "당신이 몸으로 외우고 있는 문장이 있습니까?"는 영어 명언 수업에 그대로 얹을 수 있다. 외운 문장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 문장을 묻는 질문이니까.
셋. 6×5 격자는 씽크와이즈 맵으로 옮기면 한 장에 들어온다. 여섯 개의 큰 가지, 각 가지마다 다섯 개의 작은 가지. 아이들이 자기가 읽은 바카라들로 같은 맵을 채워 가게 하는 것—이게 내가 이 바카라에서 가장 탐낸 구조다.
서른 편 중 내게 가장 오래 남은 것은 4부 「체온」의 세 줄이다.
계산기 두드려도
나오지 않는 숫자를
체온계는 알고 있더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프로네시스, 실천적 지혜를 이보다 쉽게 옮긴 문장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계산으로 나오지 않는 답을 몸이 먼저 안다는 것. 덕은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새겨지는 것이라는 명제가 체온계 하나로 끝난다.
교직 38년의 판단들 중에서도 계산기로 나온 것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은 체온계였다. 이 시집은 그 사실을 뒤늦게 확인시켜 주었다.
내 바카라에 최욱희 선생님은 이런 요지의 문장을 써주셨다. 청크와 하브루타를 접목해 학생들이 질문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 교육의 핵심이라고.
그 문장을 써주신 분이 이번에는 서른 편의 시와 열여덟 개의 질문을 내놓으셨다. 남에게 권한 것을 자기 바카라에 그대로 적용한 셈이다. 시집 어디에도 설명하려는 자리가 없다. 겪은 것을 적고, 마지막에 묻고, 물러선다.
여섯 개의 세상을 지나 하나의 길로. 그 길 끝에서 시인은 답을 주지 않는다. 열여덟 개의 질문을 남기고 돌아선다.
좋은 바카라이 하는 일이 원래 그렇다.
그러니 이제는 내 차례다. 추천사를 받은 사람이 서평으로 답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저 열여덟 개에 답해야 한다. 나는 1부의 첫 질문에서 아직 멈춰 있다.
당신이 의지와 무관하게 겪었던 감각 중 — 아직도 몸에 남아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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