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명이라는 행위는 그것의 맞고 틀림을 떠나 인간과 자연의 통합된 인식을 바탕으로 삶의 숭고함과 그 범접할 수 없는 경외감을 준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끊임없이 순환하는 자연을 예측하려고 했던 노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 천 년간 인류가 행해온 삶의 근본적인 양식이다. 자연의 순환이라는 발상에서 인간에게 닥치는 운명과 미래 역시도 예측가능하며 그 길흉을 먼저 알아 자기 삶의 고난과 역경을 대비하려는 시도로 발전하였다.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들은 가치있는 삶을 살고자 할 것이다. 명리는 그것을 알려고 하는 사람에겐, 귀한 팔자든, 천한 팔자든, 귀격이든, 천격이든 모두 인간의 삶에 대한 경외감과 숙연한 태도를 갖게 한다. 명리가 과학적인가 라고 묻는 질문은 매우 기만적이다.
과학적인 것만이 모든 합리성의 유일한 근거라고 주장하며, 모든 인식의 형태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과학의 오만은 사실 우리들 삶의 정신적인 원리에 대해서는 별로 이치에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화된 현대 슬롯에서 과학의 지위는 마치 봉건주의 시대의 절대주의 군주와 같은 자리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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