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의 월급

by선비천사

월급날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볼 때마다, 습관처럼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이건 땀의 대가가 아니라, 견뎌낸 스트레스의 대가다."


삼십 년이 넘는 세월, 매달 같은 날짜에 찾아오던 그 익숙한 입금 알림은, 한 인간이 '사립학교'라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톱니바퀴 속에서 마찰을 견뎌낸 시간에 대한 위로금이었다. 몇 년마다 전근을 다니며 숨을 돌릴 수 있는 공립과 달리, 처음에 발을 들인 그 교정에서 청춘을 바치고 뼈를 묻어야 하는 사립의 세계. 눈을 뜨면 매일 똑같은 얼굴들을 마주해야 했고, 벗어날 수 있는 곳이란 어디에도 없었다.


쉬는 시간의 교무실은 늘 묘한 정적으로 채워지곤 했다. 겉으로는 차를 나누며 허허허 웃고 서로의 경조사를 챙기는 친밀한 사이였지만, 그 온기 밑바닥에는 서로의 생채기를 너무나 잘 아는 데서 오는 팽팽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수십 년을 한 지붕 아래서 부대끼다 보니, 누구의 기질이 어디로 튀는지, 어떤 단어가 누구의 자존심을 긁는지 숨소리 하나만으로도 감지할 수 있었다. 날카로운 직설을 날리는 동료의 결을 알면서도, 그저 "저 사람은 원래 저러니까" 하며 허허 웃어넘겨야 하는 날들의 연속. 마음에 안 든다고 등을 돌릴 수도, 관계를 끊어낼 수도 없었기에 모서리가 닳아 마모될 때까지 참고 또 견디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퇴근길 산 자락에 올려놓은 발걸음은 일의 피로 때문이 아니었다. 낮 동안 교무실에서, 혹은 연수실에서 서로의 모난 면을 감당해 내느라 부풀어 오른 가슴속 감정의 앙금을 식히기 위해서였다. 정작 수업을 하고 아이들과 교감하는 본연의 일은 나를 다치게 하지 않았다. 나를 피 말리게 한 것은, 피할 기약조차 없는 울타리 안에서 타인의 날 선 성정을 온몸으로 받쳐내야 하는 인간관계 그 자체였다. 이 지독한 소모전 앞에서 나는 가끔 바위에 기대어 물었다. 과연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오롯이 일에만 몰입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문득 이 정갈한 교무실의 바카라상마다 사람 대신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들이 앉아 있는 풍경을 떠올려 본다.


그들의 교무실에는 찻잔 덜그럭거리는 소리나 억지웃음소리 대신 조용한 전류음만 흐를 것이다. 누구도 상대의 표정을 읽지 않는다. 읽을 필요도 없다. 전류는 흐르지만 감정은 흐르지 않는다. 상처받을 일도 없고, 미안해할 일도 없다. 승진이나 평가를 두고 묘한 신경전을 벌일 일도 없다. 각자의 에너지 소비량에 맞춰 필요한 전력만 배분받는다. 그곳에는 소모적인 참음도, 참다못해 터지는 한숨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산바람을 맞으며 그 완벽하게 정돈된 공간을 가만히 반추해 보면, 묘하게 서늘한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갈등이 단 1그램도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란, 역설적으로 서로에게 아무런 온기도 느끼지 못하는 냉동고와 같다. 로봇은 동료의 날카로운 말에 밤새 분통을 터뜨리지 않지만, 지친 동료의 어깨를 가만히 짚어주는 따스한 손길도 알지 못한다. 우리가 서로의 모서리에 긁히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미운 정과 고운 정이 엉켜 만든 지독한 유대감 때문이었다.


로봇은 결코 모서리가 닳지 않는다. 그래서 상처도 없겠지만, 서로를 품으며 둥글어질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월급은 어쩌면 노동의 대가만이 아니라, 사람 곁에서 사람을 견뎌낸 시간의 대가인지도 모른다.


마찰이 없다는 것은 아무런 울림도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서로의 모서리에 긁히며 살아간다. 그래서 때로는 상처를 입고, 때로는 서로를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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