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라는 형태는 신이 가진 하나의 표현 방식일 뿐이다. 즉, 신은 전체다.
날 오랜 시간 괴롭힌 난제가 하나 있다. 신이 전체라면 그 전체는 도대체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내 의식 수준으로는 무에서 유가 나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낸 창조주를 상정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 물음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럼 창조주는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물음 끝에 벽을 만났지만 애초에 벽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이가 있었다. 스피노자다. 스피노자는 신이 곧 자연이라 말했고 여기까지는 나의 세계관과 동일하다. 여기서 자연은 우거진 숲이나 푸른 바다 같은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의 총합(실체)을 의미한다. 즉 그 또한 전체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전체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즉 벽(경계)이 없다고 한 것이다. 그에게는 신 자체가 최초의 원인이다. 그냥 그렇다고 한다. 삼각형의 내각을 모두 더하면 180도가 되는 데에 별다른 이유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신이 최초의 원인인 그의 세계관 속에서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다. 시간을 상정하면 신 이전의 존재를 자연스레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고 보면 신이 곧 무한함과 연결되는데 내게는 꽤나 논리적이라고 느껴진다. 스피노자가 하는 말을 듣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세워진 벽이 천천히 허물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완전히는 아니다. 나는 여전히 벽을 만져보기도 하고 주변을 걷기도 한다. 벽 너머에 무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스피노자도 논증한 게 아니다. 그저 하나의 의견이자 정의일 뿐이다. 언젠가는 나 역시 이 벽을 허물게 될까? 모르겠다. 앞으로 계속 궁구 하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