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힘든 날에는 아무도 묻지 않았습니다.
평생 남 챙기다 보니, 내 마음은 아무도 몰랐다
평생 남을 먼저 챙기며 살았습니다.
밥은 먹었는지,
춥게 입고 나가지는 않았는지,
돈은 부족하지 않은지,
오늘 하루는 괜찮았는지.
나는 늘 누군가의 하루를 먼저 물었습니다.
가족이 피곤해 보이면 먼저 눈치를 봤고,
자식이 힘들어 보이면 내 일처럼 마음이 쓰였고,
배우자의 표정이 어두우면 괜히 내가 더 조심스러워졌습니다.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내가 조금 더 참으면 집안이 조용해지고,
내가 한 번 더 양보하면 누군가 덜 힘들어지고,
내가 괜찮다고 말하면 모두가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자주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힘들어도 괜찮다고 했고,
서운해도 별일 아니라고 했고,
속상해도 그냥 넘겼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강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나도 서운한 날이 있었고,
나도 기대고 싶은 날이 있었고,
나도 누군가가 먼저 알아봐 주기를 바란 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번 괜찮다고 말하기 시작하니
사람들은 정말 내가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당연한데,
나는 그것마저 서운했습니다.
“나는 매번 알아봐 줬는데.”
“나는 말하지 않아도 챙겼는데.”
“왜 내 마음은 아무도 모를까.”
그런 생각이 마음속에 조용히 쌓였습니다.
누군가의 밥을 챙기면서도
정작 나는 대충 끼니를 때웠고,
누군가의 걱정을 들어주면서도
정작 내 걱정은 말하지 못했고,
누군가의 마음이 다칠까 봐 조심하면서도
정작 내 마음이 다친 건 모른 척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고 나니
나는 어느새 남의 마음을 살피는 데는 익숙한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에는 서툰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가끔은 아주 작은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습니다.
“오늘 힘들었지?”
“너는 괜찮아?”
“이번엔 네 마음부터 말해도 돼.”
그런 말 한마디면 충분했을지도 모릅니다.
큰 위로를 바란 것도 아니었습니다.
대단한 보상을 원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내가 늘 챙기던 사람들 중 누군가가
한 번쯤은 내 마음도 챙겨주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잘 모릅니다.
늘 웃는 사람도 속으로는 무너질 수 있고,
늘 챙기는 사람도 사실은 돌봄받고 싶을 수 있고,
늘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도 정말 괜찮은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참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참는 데 익숙해진 사람일 뿐입니다.
말해도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해서,
괜히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누군가에게 짐이 될까 봐
그냥 조용히 삼키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오랫동안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남의 마음은 잘 알아채면서
내 마음은 자꾸 뒤로 미뤘습니다.
남이 서운할까 봐 조심하면서
내가 서운한 건 참았습니다.
누군가가 힘들다고 하면 바로 달려가면서
정작 내가 힘들 때는
“이 정도는 괜찮아”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고 싶습니다.
남을 챙기지 않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족을 사랑하지 않겠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저 내 마음도 그들 마음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늦게라도 인정하고 싶습니다.
내가 지켜온 집,
내가 버텨온 시간,
내가 참아온 말들.
그 안에는 아무도 몰라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내가 먼저 알아주면 됩니다.
“나도 많이 힘들었구나.”
“나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구나.”
“나도 참 오래 애썼구나.”
그 말을 남에게 듣지 못했다면
오늘은 내가 나에게 해주면 됩니다.
평생 남 챙기며 살았다고 해서
내 마음까지 끝까지 뒤로 밀어둘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남의 표정부터 살피기 전에
내 마음의 안부를 먼저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괜찮은 척하느라
참 오래 애썼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알았습니다.
내 마음도
누군가의 마음만큼이나
소중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