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
거창한 포부나 계획이 없는 상태가 되면 무엇을 향해 좇아가지 않아도 되니 덜 분주하고 덜 괴롭지만, 자칫 무기력해질 수 있다.
이번 연휴가 그랬다. 아무 의욕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정의 달의 연휴기간 원래 나라면 아이들과 이벤트를 준비했을 텐데 내 몸과 마음이 따라 주지 않았다.
화장실 전등까지 깜박깜박거리더니 결국 전등이 꺼졌다. 캄캄한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아이들이 아우성을 쳤다. 동네 철물점에 갔더니 10만 원을 달래길래 결제하고 왔다. 남편에게 통보하니 본인이 하겠다고 취소하라며 다급히 연락이 왔다. 이른 저녁 공구들을 가져왔다. 조명가게에서 만원 주고 산 전등을 자랑하는 사람, 잠시 아이와 놀이터가 있는 사이 완벽하게 오래된 것을 새 조명으로 바꾸어 놓았다. 거기다 첫 이사 오던 날 샀던 좌식 테이블탁자가 나사를 나무에 단단히 박아야 해서 드릴이 필요했는데 해주지 않아 방치되었던 긴 좌식 탁자까지 조립을 완료했다.
삼겹살을 사서 탁자 위에 버너를 놓고 거실 한복판에서 구워 아이들과 함께 먹었다. 캠핑 온 거 같다는 아이들 말에 웃었다.
체력이 떨어지면서 멀리 가는 일도 줄고 문밖으로 외출도 줄었다.
정말 자연스레 나답게 사는 일, 나 다워 지는 일, 소란스럽고 분주한 많은 것을 걸러 내고 최소한의 것으로 일상을 꾸리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초라하고 구질구질해 보일 수는 있겠으나 단조로운 일상에서 한 가지는 얻는다. 활활 타오르던 장작 같았던 불씨가 차츰 줄어 촛불 하나에 겨우 남아있다. 불안 말이다. 불씨는 작아졌다.
모든 일에는 절차와 순서 질서가 있음을 알아간다. 내 속에 모든 불안이 잠식하고 그것을 덥고도 남을만한 안온함이 자리 잡아갈 때 비로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뼈대가 완성된다. 살이 붙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간다.
조금 더 이 상태로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가야겠다. 내가 해야 한다는 강박은 버리고,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상태로 최소한의 것에만 집중한다. 어린이날 선물로 킥보드를 사달라는 딸의 주문에 겨우 응답하고 인터넷 주문을 마쳤다.
요즘 나는, 불편해도 손수 바꾸려고 애쓰지 않는다. 어느덧 더러워서 앉기도 불편했던 소파도 교회 심방을 미루고 미루던 어느 날 남편이 소파를 바꿀 때가 되었다며 혼자서 새것을 번쩍 들고 왔다.
뜻밖의 선물 가운데 살아가는 요즘이다. 평소라면 신이 나서 펄쩍 뛰며 감사하고 기뻐해야 할 일인데 기쁨을 크게 표현하지 않고 살아간다.
기억되지 않는 하루도 무의미한 듯한 일상 속에서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알게 되는 게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