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재주가 많았던 나는 일부러 나서려고 하지 않아도 자꾸, 자주 도드라졌다. 그 재주라는 것들이 이를테면 예체능적인 - 체육이나 음악이나 노래나 춤 같은 - 것은 아녔고 공부라던가 글쓰기, 그림 그리기, 말하기 같은,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었기에 나는 그것들을 계속 열심히 하고 잘함으로써 나의 평범함을 감추고 어른들에게 주목받거나 계속 사랑받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내가 내 아이에게 하는 것처럼 “그것들을 잘해서가 아니라, 잘하지 않아도, 너는 존재 자체로 소중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 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면 지금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내가 그것들을 어느 정도로 잘하거나 잘하고 싶은 건지는 잘 몰랐다. 다만 살려고, 존재하려고 했다. 어떤 것들은 재미가 있고 좋아하는 일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인정받는 일이었다. 나에게 존재 가치는 곧 ‘인정받는 일‘과 결이 같았다. 나는 그렇게 내 평범성을 감추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내가 얼마나 평범한지 잘 알았고, 그래서 자꾸만 숨고 싶었다. 나의 재주는 인류의 평균에 비하면 잘하는지 몰라도 정말로 세상을 바꿀 대단한 재주는 아녔다. 직업으로 삼을 만큼인지도 확신이 없었다. 아니, 실은 내가 무엇을 직업으로 삼고 한 사람의 몫을 하며 제대로 된 인간으로 살 수 있을 거란 상상을 하지 못했다. 그런 미래를 그리지 못했다. 나는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이 두 가지 상태는 늘 혼재되어 있었다. 무엇이 타고난 본래의 나에 더 가까운지, 무엇이 슬롯화되었거나 환경적 요인으로 만들어진 건지 구분하기 어렵다. 재주 많고 자신감 있고 정의감 넘치며 나대길 좋아하는 내가 진짜 나인지, 숨고 싶고 평범하게 조용히 지내고 싶은 내가 진짜인지 정말로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그냥 어떤 상태일 때에는 이런 내가 튀어나오고, 다른 상태일 때에는 저런 나 속에 숨는다. 어떤 날은 ‘나대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가 ‘숨고 싶은‘ 나에게 그것은 게으름이라고 타박한다. 비겁하다고, 너는 상처받기 싫은 것뿐이라고 구박을 한다. 그러면 ’숨고 싶은‘ 나는 “내가 어떤 고생을 하고 살았는지 네가 몰라서 그래.” 라며 변명을 늘어놓는다. 또는 “이게 원래 진짜 나야. 너는 가짜야. 인정 욕구에, 성공 욕망에 길들여져 만들어진 존재야. 버림받기 싫어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하며 반대로 날을 세운다. 이 모든 주장은 영원히 나를 슬프게 한다. 그리고 나는 어느 순간 지쳐버렸다. 이 싸움에서 누구의 편을 들기도 어렵다. 그럴 만도 한 게 나도 이제 마흔 중반이다. 싸움이 끝나길 기다렸다 뭔가를 하기에는 나도 내 나름대로 바쁘고 할 일이 많다. 아이도 키워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집안 살림도 굴러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일단, 이런 나 저런 나를 필요한 때에 그때그때 적절히 꺼내 쓰는 훈련만이라도 하기로 했다. 밖에서 보기에 이상하고 변덕스러워 보일지라도 하는 수 없다. 먹고살려면 재주를 꺼내 쓰고, 그러다 힘들어지면 적당히 숨고. 다른 이들의 평가나 기대에 의지해 휩쓸리거나 움직이기보다 나의 상태를 점검하며 천천히 움직인다. 나는 마치 기능은 많은데 엔진이나 차체는 너무 쪼끄만 자동차와 같다고 생각한다. 대단히 효율이 낮다. 그래서 자주 정비해 주고 쉬어주고 또 다음 일을 하고… 그렇게 조금씩 점점 더 먼 목적지나 어려운 길을 선택해 보는 것. 요즘 내가 일상을 굴리는 방식은 이렇다. (그래도 최소한 운전대는 내가 쥐고 있다.)
긴 우울의 터널을 어느 정도 지나왔다고 생각해서 나름의 슬롯생활 체험도 해보고, 이런저런 일을 시도해 보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또 도드라지려고 한다. (나의 알량한 재주와 욕망들은 내가 숨고 싶을 때에도 주바카라맞게 자꾸 도드라져서 나를 흔들어놓는다.) 그러면 또 조심한다. 도드라지다가 꼬꾸라질 수 있다. 안돼, 천천히 가야 해. 얼마 전 타로카드 점을 보았는데, 어찌 알았는지 내가 능력은 가지고 있지만 무언가 닫혀 있고, 그것을 발휘할 추진력을 내고 있지 않다고 했다. (눈을 가리고 칼을 든 양손으로 가슴을 막고 있는 카드가 나왔다.) 그러면 나는 또 고민한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데 안 하고 있는 걸까?
정말이지 영원히 물음표인 인생이다. 아무리 쫓아도 정답지는 없는 것 같으니, 그냥 오늘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수밖에. 틀려도 어쩔 수 없고. 틀리면 또 내일이 있잖아. 매일 조금씩 늙어가긴 해도 어쨌든 매일 리필되는 하루가 있으니 안심이다. 나의 속도를 잃지 않는 일, 지금의 내게는 그것만이 중요하다.
“살아 있는 경우라면 누구라도 변덕을 부릴 수 있고 그래도 된다.”
- 김채원, <별 세 개가 떨어지다>, 2026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