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히테의 ‘자아’는 이중적이다. 우리에게 ‘나-대상’ 사이의 일관성(통일성)을 부여해 줌으로써 일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동시에 그 ‘나-대상’ 사이의 일관성(통일성)으로 인해 우리를 집착으로 빠뜨리곤 한다. 집착하는 삶보다 불행한 삶도 없다.
‘밥(과거)’은 분명 ‘밥(현재)’이다. ‘자아’를 가진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밥을 던지거나 밥에 물을 주지 않고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한가? 다시 묻자. 정말 ‘밥’은 ‘밥’인가? 그렇지 않다. 과거의 어머니가 해주었던 ‘밥’과 지금 사랑하는 이가 해주는 ‘밥’은 같은 밥일 수가 없다. 우리는 종종 과거 어머니의 ‘밥’을 그리워하느라 지금의 ‘밥’ 맛을 놓치곤 한다. “이 맛이 아니야!”
‘사랑’은 분명 ‘사랑’이다. ‘자아’를 가진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때문에 동정과 연민, 존경, 우정이라는 감정을 사랑이라 오해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한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다시 ‘사랑’하게 되더라도, 과거의 ‘사랑’과 지금의 ‘사랑’이 같은 사랑일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말하지 않던가. “이건 사랑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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