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합장合掌을 한다. 합장은 두 손바닥을 합해 마음이 한결같음을 나타내는 불교의 예법 중 하나다. 그런데 이 합장을 부처 앞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들의 그림 앞에서,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의 동상 앞에서도 합장을 한다.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의아하게 보곤 한다. 유럽 어느 현대 미술관에 있는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 유럽 어느 시내에 있는 스피노자의 동상 앞에서 중년의 동양인 남자가 합장을 하는 모습은 떠올려 보라. 마치 종교적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은 얼마나 생경한가.
나는 왜 합장을 하는가? 15년 동안 ‘철학(이성)’을 공부하며 내가 도달한 곳은 ‘종교(믿음)’였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칸트 역시 이러한 과정을 겪었다. 누구보다 이성적인 철학을 중시했던 칸트가 끝내 이른 곳은 ‘종교’적인 것들이었다.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실천이성의 요청’이란 개념을 말한 바 있다.
이 요청들은 이론적 교리들이 아니라, 실천적 관점에서 필연적 가설들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사변(이론)적 인식을 확장하지는 않지만, 사변 이성의 이념들에 객관적 실재성을 주며, …이 개념을 정당화해 준다. 『실천이성비판』 엠마누엘 칸트
칸트가 말하는 ‘요청’은 이론적인 교리(가르침)가 아니다. 이는 “실천적 관점에서 필연적 가설들이다.” 즉, 인간이 도덕(양심)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이론적으로는 증명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가정(믿음)해야만 하는 것들이다. 쉽게 말해, 칸트는 이론적 ‘논증(철학)’에 앞서 ‘믿음(종교)’이 필요하다고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이 ‘요청’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이것들은 영혼의 불사성, … 자유, 신의 현존의 요청들이다. 『실천이성비판』 엠마누엘 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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