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경도傾倒되는 삶

‘경도傾倒’된 삶은 건강한 삶이 아니죠. 한쪽으로 치우쳐傾 넘어지는倒 삶을 좋은 삶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어떤 존재에게도 경도되지 않은 채로 사는 이들은 좋은 삶을 살까요? 그들은 그저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에 서서히 질식해 가는 삶을 살 겁니다. 그들은 무난한 삶 혹은 안정된 삶이라는 변명 뒤에 숨어서 암처럼 번져오는 무기력을 방치하고 있는 셈입니다.

삶을 바꾸고 싶다면, ‘경도’는 불가피합니다. ‘삶’은 너무 복잡하니 ‘몸’으로 이야기해 봅시다. ‘몸’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경도’되어야 합니다. 기꺼이 치우쳐 넘어져야 합니다. 자신에게 무난한 혹은 안정된 운동이 10이었다면, 적어도 20이나 30을 해야 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말하죠. “너무 힘들어요. 이건 좀 지나친 거 같아요.” 그리곤 너무 쉽게 다시 10으로 돌아가죠. 그 사람은 몸을 바꿀 수 없을 겁니다. 구부러진 등, 처진 뱃살, 계단도 오르기 힘든 체력으로 계속 살아가야 할 겁니다. 그 등, 그 뱃살, 그 체력은 그들의 무난한 혹은 안정된 삶의 상징입니다.

삶을 바꾸고 싶다면, ‘경도’되어야 합니다. 기꺼이 치우쳐 넘어질 태도가 필요합니다. 운동을 하던, 공부를 하던, 사랑을 하던, 삶을 바꾸고 싶다면, 각자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야 합니다. (이때 ‘각자만의 방식’은 가급적 자신이 정하면 안 됩니다. 자신이 정한 ‘각자만의 방식’은 대부분 경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계를 넘는 일은 반드시 ‘경도’를 지나야 합니다.

물론 ‘경도’된 삶은 좋은 삶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좋은 삶의 조건입니다. 굽은 등이 펴지고, 처진 뱃살이 빠지고, 계단 정도는 가뿐히 오를 만큼 체력이 좋아지는 과정은 치우쳐 넘어지는 과정일 겁니다. 하지만 그 ‘경도’의 과정이 지나고 나면, 비로소 곧은 등으로, 단단한 복근으로, 씩씩한 체력으로 ‘균형’ 잡으며 살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불행 속에서 계속 머무는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너무 빨리 ‘균형’ 잡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삶을 원하죠. 하지만 그네들의 균형은 굽은 등, 처진 뱃살, 허약한 체력 속에서 잡은 ‘균형’일 겁니다. 지금 불행의 균형(매너리즘!)에서 있다면, 기꺼이 ‘경도’되세요. 치우쳐 넘어지는 그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 안에서 ‘균형’ 넘어 ‘균형(성숙)’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될 겁니다.

진정으로 삶을 바꾸고 싶다면, 그곳이 어디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그 사람이 누구이든, 기꺼이 치우쳐 넘어질 수 있는 존재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너무 늦지 않게, 치우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때, 뜨겁게 ‘경도’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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