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제일 힙한 달러샵, 파이브빌로우

불황에도 나 홀로 성장 중인 미국판 다이소

by적응형이방인

해외살이 중 한국에 대한 그리움은 사실 아주 사소한 순간에 찾아온다.


한국에선 집 앞 다이소에 슬리퍼 차림으로 나가 1,000~2,000원이면 고민 없이 집어 들던 생활용품들이, 이곳에선 7달러, 10달러씩 몸값을 높여 부를 때 오는 그 묘한 허탈감 같은 것 말이다.

딱히 큰돈은 아니지만 괜히 손해 보는 기분, 그리고 사소하지만 꼭 필요한 물건 하나를 찾기 위해 넓디넓은 마트를 헤매야 하는 답답함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정말 그리워했던 건 다이소의 저렴한 가격 그 자체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용돈을 쥐고 들어가 세상 진지하게 자기만의 보물을 고르던 그 뒷모습, 그리고 갈 때마다 유행하는 아이템이 바뀌어 있어 딱히 살 게 없어도 한 번쯤 들러보게 만들던 그 역동적인 ‘재미’였다.


다이소가 우리에게 준 건 저렴한 생활용품만이 아니다. 트렌드를 아주 가볍고 경쾌하게 소비할 수 있게 해주는 놀이터 같은 경험이었던 셈이다.




세상에서 가장 힙한 달러샵

그래서 한동안 미국판 다이소를 찾아 헤맸다. 균일가샵인 Dollar Tree나 Dollar General 같은 곳들은 분명 저렴하긴 한데, 거기는 철저히 ‘생존을 위해 가는 곳’이었다. 다이소처럼 괜히 들러 구경하고 싶은 재미나 여유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파이브 빌로우(Five Below)다.

이 리테일러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이해하면 쉽다.
'10달러 안팎의 가격으로, 요즘 유행하는 소품·장난감·간식을 모아놓은 미국식 트렌드 잡화점'이다.


단순히 싼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가볍게 구경하다가 하나쯤 사고 나오게 만드는’ 구조를 가진 공간이다.

한국의 다이소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재미’라는 감각은 꽤 비슷하다.


이름처럼 원래는 5달러 이하 제품만 팔던 곳이지만, 지금은 ‘Five Beyond’라는 코너를 통해 6~10달러대, 많게는 20~30달러 제품도 함께 판매한다.



십대들의 놀이터, 어른들의 충동구매 존

이 브랜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누구를 위한 공간인지 보면 된다. 파이브 빌로우는 용돈으로 소비를 시작하는 십대를 핵심 타깃으로 만든 매장이다. 미국 아이들이 부모 도움 없이 스스로 물건을 고르고 결제하는 경험을 하는 곳.


‘내 돈으로 내 취향을 선택하는 첫 소비 경험’을 만들어주는 공간이다.


우리 어릴 때 문구점에서 스티커 하나, 연필 하나를 한참 고민하며 고르던 그 감각에, 미국식 디자인과 트렌드를 얹어놓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실제로 가보면 아이들만의 공간은 아니다.

아이들은 신나서 고르고, 어른들은 “이건 왜 이렇게 잘 만들었지?” 하면서 하나둘 집어 든다.

장난감, 간식, 인테리어 소품, 팬시 제품, 그리고 유명 브랜드를 따라 만든 ‘듀프(저가 대체 제품)’까지 필요한 것보다 ‘갖고 싶은 것’이 더 많은 공간이다.



가격이 아닌 트렌드에 반응하는 '속도'

특히 상품 회전이 빠른 것도 특징이다. 몇 주만 지나도 매대 구성이 눈에 띄게 바뀌고, 틱톡이나 유튜브에서 본 제품들이 바로 매장에 들어온다.

그래서 한 번 가본 곳인데도 다시 가게 되고, 갈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제품의 절반 이상을 중국에서 소싱하여 판매 가격은 낮게 유지하면서도 ‘지금 유행하는 것’을 빠르게 공급하는 방식이다.


결국 파이브 빌로우는 가격이 아니라 트렌드에 대응하는 속도로 경쟁하는 리테일러에 가깝다.


이 전략은 미국 시장에서도 제대로 통했다.

미국 내 매장 수는 어느덧 2,100개를 넘어섰고, 연 매출은 50억 달러를 돌파하며 매년 15% 이상의 견고한 신장률을 기록 중이다. 미국의 소비 침체와 오프라인 채널의 위기 속에서도 이런 확장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건, 그만큼 사람들이 이곳이 주는 경험과 재미에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사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도 파이브 빌로우는 참 유용한 공간이다.


미국의 온갖 ‘무슨 데이’에 한번 쓰고 버릴 소품을 준비할 때나, 아이들에게 칭찬할 일이 있어 작은 보상을 해주고 싶을 때 이곳만큼 만만한 곳이 없다. 그러다 보면 내 손에도 작지만 귀여운 예쁜 쓰레기(?)가 하나쯤 들려 나오기도 하지만 말이다.


결국 파이브 빌로우는 다이소를 완전히 대신하진 못해도, 적어도 그때의 ‘고르는 재미’만큼은 꽤 비슷하게 채워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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