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불확실성을
난 유치원 중퇴자다. 학원도 다닌 적 없다. 그런 것은 언니로 족하다. 내가 유치원 입학을 했다는 것도 순 거짓이다. 기억 못 할 것을 안 엄마는 내가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유치원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비싼 유치원은 보내줄 형편이 못 되었다. 나는 어릴 적 언니가 노란 유치원복을 이쁘게 차려입고 빨간 체리가 든 김밥 도시락을 넣은 체크무늬의 광택 나는 가방을 메고 유치원 소풍을 가는 장면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었다. 언니가 집에 오면 가방 속 바카라을 꺼내서 읽었다. 너무 가고 싶었다. 유치원을 가겠다고 떼를 쓰는 나에게 엄마는 투명하고 얇은 일회용 도시락 케이스에 담긴 김밥을 건네줬다. 한동안 언니 바카라에 글자를 알록달록한 색연필로 삐뚤빼뚤하게 따라 써놓았다가 엄마는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학교를 일찍 보내자." 심심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던 나를 엄마는 유치원 대신 학교로 보냈다. 불법적으로.
고등학교는 집에서 오분거리에 있었다. 신설 학교였다. 그 덕분에 엄마가 원했던 고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가까웠다. 학교는 삼 년 내내 공사 중이었다. 하루 종일 들리는 공사 소리는 아무리 익숙해도 낯설다. ㄷ자의 건물은 매년 하나의 획을 더해갔다.
도시락을 두 개씩 들고 다녔다. 점심 그리고 저녁. 아침마다 엄마는 도시락 여섯 개를 펼쳐 놓고 반찬들과 국을 담았다. 언니는 대학 때에도 꼼짝없이 공부를 했으니 십 년도 더 넘게, 아빠는 아직도 도시락을 갖고 다닌다. 엄마는 평생을 도시락에 정성을 쏟았다. 순식간에 알록달록한 도시락이 완성된다. 난 그걸 보며 허겁지겁 아침을 먹었다. 나는 학교 매점에서 파는 불어버린 라면이 먹고 싶었다. 아니면, 스테인리스 쟁반에 담겨 나오는 백반이나.
매일 변하는 것은 없었다.
새벽 6시에 학교로 간다. 수업을 듣고 보충 수업이 끝나면 저녁을 후다닥 쓸어 넣고, 남은 시간에 매일 저녁미사를 갔다. 야간자율학습은 밤 10시에 끝난다.
고 3 때 엄마를 졸라서 독서실을 끊었다. 한 달. 학교에서 작은 도로를 한 번 건너면 독서실이다. 문을 열면 낮은 평상에서 아이들이 컵라면을 먹고 있다. 참는다. 그걸 먹으면 필히 잠들어버릴 것이다. 좁은 바카라상에 고개를 떨구고.
난 새우탕을 좋아한다.
두꺼운 면발의 컵라면.
정말 먹고 싶었다.
새벽 2시. 엄마는 꼭 나를 데리러 왔다. 그렇지 않으면 러브레터를 꽂아두던 남학생들이 말이라도 걸 거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겨우 오분거리였는데. 그래서 독서실은 그만 다녔다. 새벽 두 시마다 엄마를 깨우는 것도 할 짓이 못된다. 왜 그 짧은 거리를 데리러 오냐 물어본 적은 없다.
나를 마중 나온다고 해도
삶의 불확실성은 지울 수 없는 것인데.
엄마나 아빠는 그랬다. 내가 평생 아무런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삶을 살기 바랬다.
대학 때 학생운동은 눈치 빠른 아빠에게 잡혀 시작도 못해봤다. 남산으로 끌려간다나. 말은 이렇게 하지만 아빠는 정말 오랫동안 화를 냈다. 나는 아빠의 고함소리에 지쳐 그만뒀다.
나는 대학 내내 성당의 주일학교 교사를 했다. 엄마의 바람이었다. 내게 기도를 시키면 엉뚱한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여름방학 겨울방학 그리고 매주 수요일 토요일을 성당에서 살았다.
그 흔한 배낭여행도 가지 못했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대학 축제도.
통금은 10시. 통학 시간은 편도 두 시간 반. 학교에선 아무리 늦어도 저녁 7시 반에 나와야 했다.
몰래 반항하는 언니와는 달리
나는 하라는 대로 했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잘 한다.
고3 때,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한 건 아니다.
대학 때라고 해서 달라진 것도 아니다.
바카라 속의 짧은 지문을 타고 나는 자유롭게 아무 곳으로나 돌아다녔다. 현실에서와는 달리.
다른 것들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나는 봉쇄수도원의 수녀님으로 평생 살게 될 줄 알았다.
이렇게 살게 되다니 말도 안 된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