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아, 아닌가.
좋은 것은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엄마는 늘 기도를 하면 모든 것이 다 잘된다는 주의였다.
그래서 나의 일생에 전혀 서포트가 없었다. 왜? 기도하고 있으니까.
나는 상당히 불만이었으나
동시에 매우 만족했다.
우리 집의 모든 에너지와 자본은 언니에게 집중 투자 되었다.
왜? 장남이니까.
기억도 나지 않던 어린 시절부터 우리 방의 모든 벽은 상장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언니는 전국 대회란 대회는 모두 참석하고 엄마는 언니 뒷바라지를 위해 전국구로 뛰어다녔다. 장르는 가리지 않았다. 독창 대회, 과학 발명대회, 사생대회... 언니는 학교에서도 백일장 하면 장원이었다. 체력장, 멀리 던지기 같은 걸 하면 깃발도 없는 저 먼 곳의 공터로 던졌다. 아이들이 미리 몰려들었다. 그런 광경은 처음 볼 테니까. 전교등수야 말할 것도 없다. 언니는 완전체로 키워졌다. 어떤 종목이든 1:1로 붙으면 언제나 승리한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언니는 장남으로 키워졌다. 쇼트커트에 바지. 언니의 트레이드 마크다.
나는 늘 언니를 그렇게 소개한다.
"형님."
언니를 아는 사람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 인사만 나눠도 "휴~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추종자들도 멀리서 당최 다가서지 못한다. 언니는 등장하기도 전에 모두가 알아차린다. 싸늘하다. 찬바람이 쌩하니 분다. 사람들이 주섬주섬 옷깃을 여민다. 입을 열면, 모두가 얼어붙는다. 가차 없다.
초중고를 언니와 함께 다녔다. 나도 덩달아 유명인사였다. 누구누구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선생님들은 당연하고, 내가 모르는 이들도 나를 알았다.
중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교복을 입은 선배 무리가 지나가던 나를 불렀다.
교정 나무 아래 짝다리를 짚고, 체육복 바지를 한쪽만 무릎까지 걷은 이상한 복장이었다.
"야, 너 이쁘게 생겼다. 우리 파에 들어와!"
나는 힐끔 쳐다보고는 그냥 지나갔다.
다음날, 다시 그 무리와 마주쳤다.
"야, 너 생각해 봤어? 우리한테 오라니까."
나는 멈춰 섰다. 아무 말도 안 했다. 사실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 일은 처음 겪어봐서.
"뭐지?" 나는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그 무리 곁으로 다가온 한 선배가 말했다.
"얘 누군지 몰라? 00 동생이잖아."
"....."
그 말에 정적이 흘렀다.
"야, 보내줘. 보내줘."
나는 멍청하게 서 있다가 그 무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선배들의 정체를. 흑장미파? 패싸움을 하면서 일어난 무시무시한 일화들을 전해 들었다. 그러나, 아마 주먹질이라도 했으면, 당연히 언니가 승리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맞아봤다. 나는 그런 주먹은. 흠. 이길 재간이 없다.
언니가 완전체로 성장하게 된 그 시작은 어느 날 새벽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자고 있는데 아빠의 고함소리에 슬며시 눈을 떴다. 의식이 또렷해지면서 나는 꼼짝도 않고 말소리의 뜻을 헤아리고 있었다. 늘 있던 일이다. 아빠는 화가 많았다. 그러나 그날은 이상하게도 더 심했다. 심장이 뛰었다.
나는 아빠의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이 들었다. 새벽에 다시 잠에서 깨어 세탁실에 갔던 나는 그 광격을 보고야 말았다. 아빠가 애지중지하던 언니의 두꺼운 전과가 갈기갈기 찢겨서 세탁기 위에 놓여 있었다. 옥스퍼드 사전만큼이나 두꺼운 바카라을 찢어놓다니 그런 힘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날 아빠가 했던 말은 "이 따위로 할 것 같으면 공부하지 마!"였다고 한다. 그 전날 처음으로 언니는 전 과목 시험에서 1문제를 틀렸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의 성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첫째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었다.
이쁘고 착한 딸
집에서 내 담당이다.
그래서 정말 싫어한다. 이쁜 것도 착한 것도.
실력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 좋다. 억울하다.
그러나 뭘 해도 언니를 넘어설 수가 없었다. 아, 딱 한번 언니가 성적이 떨어진 적이 있다. 그날 나는 언니를 이겼다. 그것도 성적으로. 음하하하. 나는 의기양양해서 집에 갔지만, 언니의 성적으로 집안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내 성적표 아무도 관심 없다. 나는 "이쁘고 착한 딸"이면 되니까. 그건 그냥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래서 성적표를 보여준 적도 없다.
난 생각했다.
"아,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그 이후, 언제나 공부만 하던 언니는 아빠 몰래 반항을 했다. 그날 새벽에도 아빠의 화는 쩌렁쩌렁 울렸다. 늘 있는 일이다. 아빠의 화는 때와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이유도 전혀 개연성이 없다. 심지어 전조조차 없다.
나는 세상에서 만난 빌런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다. 가끔은 좀 웃기다.
왜냐하면 내가 태어나서 만난 빌런 중 최고봉은 아빠다. 여러모로.
언니의 비밀스러운 반항을 아빠가 찾아낸 것이다. 언니와 내 바카라상은 모두 아빠 취향이다. 바카라상 서랍 속까지. 아빠의 갑작스러운 검열로 일명 '쓸데없는 것들'은 하나 둘 사라져 갔다. 쓰레기통 속으로. 바카라상 주인이 없어도 늘 그랬다. 하교를 하고 집에 와서 놀랍도록 미니멀리즘으로 변해버린 바카라상을 만나는 것은 일상이었다. 하필 그날 아빠가 발견한 것은 언니의 작문 과제였다. 제목은 장래희망. 부제는 "나는 현모양처가 꿈이다." 그 아래 언니의 이름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글은 이렇게 시작했다. "나는 과학자가 되기 싫다. 의사도 되기 싫다." 그날 언니는 아빠에게 맞았다. 그 회초리는 나와 친한 아이였다. 언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녀석은 언니에게 굳은 다짐을 남겼다.
"반항은 아무도 모르게 한다."
나는 성적으로 맞아본 적은 없다. 당연하다.
아무도 내 성적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고등학교 때, 나는 조각을 파거나 그림을 그린다고 밤을 새웠다. 당연히 미대를 갈거라 생각했다. 하고 싶은 공부만 했다. 이를 테면 국어. 당시 수능은 신세계였다. 나는 황홀했다. 대하소설 같은 것은 영 취향에 맞지 않았던 내게 짧은 단문의 장르 불문이라니. 시중에 나온 모든 국어, 문학 자습서와 문제집들을 풀고 또 풀었다. 실은 그 지문이 너무 재미있었다. 당시 나를 정말 괴롭히던 선생님이 있었다. 과목은 국어. 별명은 개거품. 껀수가 생기면 수업은 바로 종료다. 남은 시간 내내 칼날 같은 고함소리를 들어야 했다. 나는 타깃이 되었다. 그 선생님이 나를 괴롭혔던 이유는 있었다. 그분은 유명한 페미니스트였다. 언니를 광적으로 좋아하던 그 선생님은 내가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나를 미워했다. 추측은 아니다. 반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여러 번 나를 두고 욕을 했다. 물론, 거기에는 나도 있었다. "내 외모는 내 의지가 아니다." 그렇게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복수했다. 가장 어려운 문제들을 고르고 골라 매일 가서 질문했다. 무해한 웃는 낯으로. 매일 하루에 넘기는 국어 문제집 한 권 이상은 풀었던 것 같다. 수능 초창기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지문들이 문제집에 실렸었다. 현대시 같은 아무리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감각들. 촤르르르 접어서 옆에 딱 끼고 교무실로 간다. 음하하하.
그래서 나는 소문이 생겼다. 국어에 미친 애라고.
아뿔싸. 그게 문제가 될 줄이야.
나의 성적은 올랐다. 아빠는 그것을 감지했다.
"미대? 안돼."
평생을 아무도 관심도 없던 나의 실력은 절체절명의 순간 나의 삶 전체를 바꿔놓았다.
나는 인정받지 못해서 자유로웠고,
인정받는 순간 자유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