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아들이는 검은 물

교감은 어쩌면 타인의 체험에 가 닿을 수 없다는 것의 인정이다.

bystephanette

드ㅡㄺ 드륵 득.

밧줄의 둔탁하게 긁히는 소리가

나를 밤으로 데려간다.


칠흑 같은 밤

그것을 처음 경험했을 때,

나는 밤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나.

첩첩산중의 어떤 청소년 수련장이었다.

대강당의 레크리에이션이 잠시 멈추고 쉬는 시간이었다.

후끈 달아오른 실내 공기에 창문을 열었다.

알루미늄의 조악한 샷시 틀을 밀고 나는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아 - "

내가 내쉰 숨에서는 미처 소리가 되지 못한 기체가 새어나갔다.

나는 그대로 얼었다.

어둠은 그 짙은 밀도로 내 코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형체도 원근도 응집된 고체와 같은 공간만이 있었다.

그 속으로 나의 몸은 사라지고 있었다.


몸이 사라졌다. 말 그대로.

나는 어둠 속에서 나의 경계를 잃었다.

그것이 내가 겪은 밤이다. 밤. 어둠.


순간 멈춰버렸던 나의 몸을 겨우 움직여 창의 안쪽으로 시야가 들어왔을 때,

정적은 끝났다. 문득 시끄러운 소음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게 영원 같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솔메이트와 모임이 파하고 밤거리를 걷고 있었다.

언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20대? 30대? 40대? 전혀 시간을 알 수 없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연결되는 것들이 전무하다.


"릴리,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잉? 뭔데?"

"가 보면 알아."

그는 고가도로를 지나 하천 지류가 흐를 법한 도로 아래의 어둠을 가리켰다.

그곳은 계단을 한참 내려가서야 닿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어둡다.


"여기 계단으로 내려가면 돼."

"계단이 안 보여."

솔메이트는 핸드폰으로 손전등을 켰다.

그래도 계단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상한 노릇이다.

바로 옆은 차들이 쌩쌩 달리고, 간판과 신호등 불빛이 알록달록 빛나고, 높은 빌딩들은 너무 화려해서 눈이 부실 지경이다.


그 바로 아래 어둠은 존재자체를 잃고 놓여있었다.

나는 그의 발걸음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갔다. 천천히.

순간 중심을 잃을 뻔하면서 내려다본 그곳은 희미하게 천이 흘러가는 아주 검은 흐름이 얼핏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계단을 내려다봤다. 조금 기다리면 서서히 그 모양이 나타난다. 흐린 검은 공간은 높낮이를 구분하기 어렵다. 어둠에 눈이 적응하는 속도보다 주변이 어두워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


마침내 마지막 바닥에 도착했다. 나는 잠시 멈췄다.

"여기 뭐가 있어?"

"잠시만 저기로 가야 해."

"언제 와 봤어?"

"응. 네가 좋아할 것 같았어."

"그래? 뭔데?"


나는 밤을 본 적 있다. 그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지만 나는 그때의 얼음이 되었던 내 몸의 감각을 안다. 내키지 않았다.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로 와 봐."

그는 몇 걸음 앞에서 말했다.

솔메이트는 발걸음이 빠르다.

같이 걸으면서 옆에서 걸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상하게도 늘 그는 몇 걸음 앞에서 걷는다.

나는 내 속도로 걷는다. 빠르게 따라잡아도 잠시일 뿐, 어차피 같은 걸음으로 걷기는 어렵다.


"그냥 돌아가자."

"이거 봐야지. 도시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아?"

그의 말에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것도 없다.

"무서운데."

"다 왔어."


나는 그의 옆으로 조심조심 걸어가서 멈췄다. 막상 도착하니 그는 별다른 말이 없다.

침묵.

나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하천변의 시멘트 도로다.

길게 늘어선 열주처럼 커다란 기둥들이 차도 아래를 바치고 있었다.

하늘로 넓게 열린 그 위에는 검은 하늘과 잘 보이지도 않는 흐린 별이 하나 둘.

나는 하천을 내려다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것은 그 칠흑 같은 어둠.
내 존재를 지웠던 그곳이다. 찐득한 밀도로 모든 것들을 삼켜버리는.

하천은 나에게서 떨어져 있다.

그러나 그 어둠은 내 몸을 빨아들인다. 내 형체는 조금씩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상한 곡선을 그린다. 반투명한 색채들이 내 몸에서 시작해서 검은 물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침묵.


그가 곁에 있는지 잊고 있었다.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릴리?"

"응?"

"나도 네가 느끼는 걸 느꼈으면 좋겠어."

그의 워딩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느낌의 말이었다. 아니다. 뭐라 표현하기 어렵다.


"네가 감각하는 걸 내가 느낄 수도 있을까?"

이런 말도 아니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때 이미 검은 물에 정신이 혼미해져 있었다.
그가 하는 말은 그저 웅얼거림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는 나를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이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말을 했다.

나는 그런 말을 하는 그가 신기했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안다고 해도 절대로 말로 하지는 않는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해도

타인이 어떤 것을 느끼는지

그 정도가 얼마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지

그런 것들을 알아차리기란 정말 미묘하면서도 섬세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일이다.


그는 나를 부러워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을 듣고서야 그와 나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게 되었다.

"아, 이건 나 혼자만이 아는 거구나."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이미 그가 말로 했으니까.

그래서
문득 외로워졌다.


흐려져서 보이지도 않는 별빛과 어두운 밤하늘 아래

짙은 검은 물.


그와 나는 같은 곳에서

완전히 다른 것을 경험했다.


검은 물에 휩쓸려 사라지고 있는 순간.


그게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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