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프레소 한정판 캡슐머신은 별도 가수 장치가 붙어 있다. 잘도 숨었다.
알고보니, 부정한 맛을 좋아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충격적이게도.
캡슐 커피만 주야장천 마시다가 질려버렸다.
네스프레소 버츄오 머신이 나온 이후 계속 그것만 마셨다. 몇 년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버츄오 머신을 처분하고,
네스프레소 한정판 머신만 남았다. 오리지널 버전이다.
구입한 이유는 당연히 이뻐서다.
시티즈 플래티넘 C 스테인리스 스틸
각진 스테인리스 디자인이다.
좋은 점은 따로 있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곳이 별도로 달려 있다. 수구는 커피가 나오는 바로 뒤에 숨어 있다.
캡슐커피로 에스프레소를 내린 뒤, 가수를 하면 깔끔한 물만 더할 수 있다. 물 버튼도 별도로 있다.
이 모델은 네스프레소 홈페이지 머신 제품 목록에서 사진으로는 찾을 수 없다.
왜 숨겨놨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숨겨져 있다.
네스프레소 판매점에 시음을 할 때, 내려주는 머신이다.
한정판이라 판매점 전시도 되어 있지 않다. 아는 사람만 살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 아래 '시티즈 플래티넘 D 모델' 사진을 클릭하고 들어가면 위의 각진 모델을 볼 수 있다.
네스프레소도 LG처럼 훌륭하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놓고
정작 홍보에 별 관심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당연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에스프레소 캡슐을 통과하지 않고 물을 더하는 건 뭐가 좋을까?
'가수'라고 한다.
가수는 뭐가 좋아?
가수의 핵심은 더 추출하지 않고 농도만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했던 20g 원두 / 260g 추출 + 물 40g을 생각하면, 마지막 40g은 커피층을 통과하지 않았다. 그래서 300g 전부를 드리퍼에 부었을 때처럼 뒤쪽의 성분을 추가로 뽑지 않고, 이미 얻은 커피만 희석했다.
정해진 레시피대로 정해진 양의 커피만 추출한다.
그래서 브루잉에는 저울이 필요하다.
가수의 장점
쓴맛·떫은맛의 밀도가 낮아진다. 특히 다크 로스트처럼 후반부 추출에서 거친 맛이 따라오는 원두에 유리하다.
단맛과 향을 구별하기 쉽다. 너무 진하면 여러 맛이 한 덩어리로 느껴지는데, 농도를 조금 낮추면 카지노·캐러멜·구운 설탕 같은 요소가 분리될 수 있다.
후미가 깨끗해진다. 깔끔한 맛에 기여한다.
추출도와 음용 농도를 따로 조절할 수 있다. 이게 제일 재미있는 부분이다. 원하는 성분까지만 뽑아놓고, 마시는 농도는 나중에 물로 맞출 수 있다.
전문용어로 '부정한 맛'을 줄일 수 있다.
그렇다,
커피를 내리는 사람들은
부정을 싫어한다.
커피에서는 이런 불쾌하거나 거친 맛을 부정라고 한다.
표현이 정말 특이하다고 생각했었다.
부정이라.
부정을 부정한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쓸데없는 좋지 않은 맛을 없애는 것이 브루잉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알고보니, 부정한 맛을 좋아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충격적이게도.
그러나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부정한 맛이 좋을 수도 있지.
최상의 커피는 언제나
내 입맛이 기준이다.
원두 20g으로 커피 300g으로 전부 추출하는 것과
260g으로 추출한 뒤 40g 가수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마지막 40g도 커피층을 지나가면서 계속 추출하고,
후자는 260g 시점에서 추출을 끊은 채 농도만 낮춘다.
그래서 후자가 더 깨끗하고 덜 거칠게 느껴진다.
자이언트 스텝스 같은 다크 로스트에는 특히 꽤 합리적인 방법이다. 초콜릿과 바디는 충분히 뽑되, 끝의 거친 부분은 덜 가져오고 물로 농도를 푸는 방식.
같은 한 잔에서 가수 0g로 마시고
그다음에 가수 20g
그 뒤에 40g을 순서대로 맛을 보면, 자신의 취향을 찾을 수 있다.
진짜 재미있는 지점은,
끝까지 커피를 내리지 않고 정해진 양만 내린 뒤에
가수를 하는 것이 언제나 진리는 아니다.
좋은 원두는 길게 드립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때그때 달라요.
그것이 브루잉의 묘미.
요즘 브루잉의 레시피와 가이드가 원두마다 나온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전문가들의 지침대로 브루잉을 해보는 재미.
그리고
내 취향대로 조금씩 변화시켜 가는 재미.
그런 재미다.
추출은 언제 멈출 것인가.
가수는 얼마나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