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에 맞는 커피를 찾아서.
콜드브루는 왜 내 입맛에 안 맞을까?
나는 점드립으로 내린 커피를 아주 애정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콜드브루라고 불리는 커피 중 상당수는 내키지 않는다.
처음에는 차이가 투과식과 침지식에 있다고 생각했다.
점드립은 물이 원두층을 지나간다.
침지식 콜드브루는 원두가 같은 물 안에 오래 머문다.
그래서 점드립에서는 맛의 경계가 비교적 선명하고, 침지식에서는 맛이 조금 더 둥글고 한데 섞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찾아보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전에 친구에게 선물 받아 신나게 사용했던 빈플러스 M550도 침지식이 아니라 점적식이었다.
어라.
그렇다면 나는 단순히 ‘투과식은 좋아하고 침지식은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다.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하다.
저온 추출에서는 추출 방식뿐 아니라 원두, 로스팅 정도, 분쇄도, 물의 온도, 추출 시간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빈플러스 콜드브루 더치커피 메이커 기구 M550
오래전, 친구가 커피 행사 부스에 갔다가 빈플러스의 콜드드립 메이커를 사서 선물로 준 적이 있었다. 정말 한동안 신나게 내려마셨다.
이걸 쓰면 원두 소비량이 급증한다.
한 번 내려놓고 냉장보관으로 오래 두고 마셔도 되지만, 있는데 안마실리가 없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대용량 원두를 사게 되었다.
냉장고에서 하루 두면 완성.
처음 이 기구가 나왔을 때 정말 놀라웠다. 더치커피 메이터는 상온에 두는 정도의 크기를 봐왔던 터라 이렇게 깔끔하게 냉장보관이 되는 녀석을 만들다니 대단하다 생각했다.
거대한 더치커피 메이커들은 정말 관리를 잘해야 한다. 위생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카페에서는 주기적으로 결과물에 대한 위생 검사를 받아야 한다. 상당히 까다롭고 돈이 많이 들 수도 있는 기구다.
빈플러스 메이커는 냉장고에 들어가니 그런 면에서 아주 깔끔하고 멋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점적식 콜드드립 방식은 내 취향은 아니다. 그래서 이 메이커는 보내줬다.
콜드브루와 더치커피는 일반적으로 같은 의미로 사용하지만 조금 다르다.
더치커피 VS 콜드브루
1. 더치커피(콜드드립)
찬물이나 얼음물을 한 방울씩 분쇄 원두 위에 떨어뜨려 원두층을 통과시키는 투과식 추출이다. 계속 새로운 물이 원두와 접촉하면서 성분을 씻어내기 때문에 향미의 윤곽이 비교적 선명하고, 단맛·쓴맛·로스팅 향이 분리되어 느껴진다. 농축감이 있으면서도 끝맛은 비교적 깨끗하다. 대신 추출 속도가 지나치게 느리거나 분쇄도가 너무 고우면 쓴맛과 떫은맛이 강해질 수 있다.
잘 만들면 쌉쌀함, 로스팅 향, 단맛이 선명하고 끝맛도 비교적 깨끗하다.
내가 좋아한다는 점드립이 이 지점과 맞닿는다.
2. 콜드브루(침지식)
더 넓은 용어다. 본래 뜨거운 물이 아니라 낮은 온도에서 추출한 커피 전체를 뜻한다. 그러나 요즘 카페에서는 대개 침지식 immersion을 의미한다. 분쇄 원두를 찬물에 몇 시간에서 반나절 이상 담가둔 뒤 걸러내는 침지식 추출이다. 같은 물에 원두가 오래 잠겨 있으므로 맛이 점차 평형에 가까워지고, 산미와 쓴맛의 모서리가 줄어든다.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둥글며 묵직하지만 향미의 경계가 흐려지고, 원두에 따라 나무맛·곡물맛·텁텁함이나 밋밋함이 느껴질 수 있다.
더치커피라는 명칭은 특히 한국·일본에서 많이 쓰는 말이고, 네덜란드에서 콜드커피를 그렇게 부르는 건 아니다. 해외에서는 보통 cold drip, Kyoto-style coffee, slow drip 같은 이름을 더 많이 쓴다. 일본식 교토 드립 장비가 대표적인 점적식 콜드커피 문화로 알려져 있다.
더치는 ‘선명하고 구조적인 저온 추출’,
콜드브루는 ‘둥글고 통합된 저온 추출’이다.
투과식 추출 VS 침지식 추출
1. 투과식 추출(percolation)
물이 원두층을 지나가면서 성분을 뽑아내는 방식이다. 계속 새로운 물이 원두와 접촉하기 때문에 추출력이 유지되고, 맛의 윤곽과 분리감이 비교적 선명하다. 드립커피, 점드립 더치, 에스프레소가 여기에 속한다.
2. 침지식 추출(immersion)
원두를 물에 담가둔 채 일정 시간 우린 뒤 분리하는 방식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과 원두 사이의 농도 차가 줄어들어 추출이 점차 완만해진다. 맛은 대체로 둥글고 균일하며 부드럽게 느껴진다. 프렌치프레스, 커핑, 일반적인 침지식 콜드브루가 여기에 속한다.
커핑(cupping) VS 에스프레소 테이스팅
위에서 말하는 커핑은 커피 평가를 위해 맛보는 표준화된 관능평가 방식이다. 커핑 할 때 주로 사용하는 추출 방식은 침지식으로 하기 때문에 위에 적었다. 커핑은 보통 분쇄 원두에 뜨거운 물을 직접 붓고 몇 분간 그대로 둔 다음, 표면의 크러스트를 깨고 향을 맡고, 식어가는 과정에서 숟가락으로 맛을 본다. 그래서 브루잉 방식 분류상으로는 침지식이 맞지만, 목적은 원두의 향미, 산미, 단맛, 바디, 결점 등을 비교 평가하는 것에 있다.
에스프레소 테이스팅은 카페에서 원두를 평가할 때 에스프레소로 내려서 맛을 본다. 이것은 전문용어인 커핑과는 방법과 절차가 다르다.
나는 콜드브루를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침지식 콜드브루는 별로고, 점적식 콜드드립은 그것보다는 낫다.
그렇다고, 카페에서 콜드브루를 주문하지는 않는다.
부드러운 커피보다 맛이 선명한 커피를 좋아한다.
단맛과 쓴맛, 로스팅 향이 한데 뭉개지기보다 각각의 경계가 살아 있고, 농축되어 있으면서도 구조가 느껴지는 쪽이 좋다.
물론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뭐든 잘 마신다.
스페셜티 커피를 좋아한다고 해서 믹스 커피의 놀라운 맛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투과식 자체라기보다 그 방식에서 자주 나타나는 어떤 감각일지도 모른다.
내가 모카포트와 에스프레소, 점드립에 끌리는 데에도 공통점이 있다.
중력이든 증기압이든 펌프의 압력이든, 물이 커피층을 통과하면서 계속 새로운 성분을 끌고 나온다.
그래서일까.
나는 진한 커피보다 구조가 있는 커피를 좋아하는 것 같다.
커피 향의 종류들과 드립 방식별 차이
궁금하긴 하다.
점적식 콜드드립 커피는 향이 정말 강하다. 응축된 향.
나는 커피의 향을 무척 애정한다. 그러나 위의 방식으로 추출된 커피의 응축된 향과는 조금 다르다.
미묘하지만 확실하게 다르다. 나는 어떤 향을 좋아하는 것일까.
내가 좋아하는 에스프레소·모카포트 쪽의 향은
뜨거운 물이 로스팅된 원두에서 휘발성 향을 빠르게 끌어내면서 생기는 구운 견과류, 캐러멜, 초콜릿, 토스트, 약간의 스모키 함 같은 ‘뜨겁고 갈색인 향’에 가깝다. 뜨거운 추출에서는 저온 추출보다 로스팅 향, 쓴맛, 떫은맛 같은 감각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다만 커피 향을 만드는 푸란류(furans)와 피라진류(pyrazines)의 양과 비율은 추출 온도뿐 아니라 시간과 원두, 로스팅 정도에 따라서도 달라지기 때문에 단순히 ‘뜨거운 추출에서 더 많이 나온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와는 달리 점적식 콜드드립은
낮은 온도에서 오랜 시간 추출되기 때문에 향의 구성이 달라질 수 있다. 최근 점적식 냉추출(ice drip)과 일반적인 침지식 콜드브루를 비교한 연구에서는 꽃향과 과일향에 기여하는 리날룰(linalool)이 점적식 냉추출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났다. 낮은 온도가 이런 휘발성 향을 보존하는 데 유리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점적식 콜드드립의 향은 아주 선명할 수 있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구운 견과류, 캐러멜, 초콜릿 같은 따뜻한 로스팅 향보다는 꽃, 과일, 시트러스처럼 밝고 향수에 가까운 방향의 향이 두드러질 수 있다.
나는 와인 중에서도 한 모금만 마셔도 향수에 온몸을 담가버리는 듯한 와인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가격은 백만 원대를 넘어간다.
황홀하긴 하나 너무 강하다.
경계없이 집어삼켜지는 것은 질색이다.
비싸다는 것과 내 취향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래서 고급 와인보다는 파셰타(fascetta)가 붙어 있는 비교적 저렴한 와인을 주로 산다.
이탈리아 DOCG(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 e Garantita) 와인 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축에 속하는 화이트 와인을 꽤 애정한다. DOC도 무방하다. 아주 잘 만든 끼안띠도 좋아한다.
사실, 레드 와인 취향은 완전히 다르지만.
레드 와인은 말벡 같은 쪽을 좋아한다. 말벡은 보통 검은 자두, 블랙베리 같은 짙은 과실향이 중심이다. 거기에 산지와 숙성에 따라 흙, 담배, 가죽, 코코아, 향신료, 약간의 스모키함이 따라온다. 특히 너무 잼처럼 익은 스타일보다, 산도와 탄닌이 살아 있고 흙내·가죽·허브 쪽이 받쳐주는 말벡이면 딱 내 취향이다.
와인코너에서 추천 받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직원들도 내가 가면 좋아한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 와인 전공자가 아니라서 사용하는 특이한 표현 때문일지도 모른다.
검은 과실향이 먼저 지나가고, 그 아래에 흙과 가죽과 담배 냄새가 낮게 남는 와인.
나는 그 흙 냄새를 아주 애정한다.
그러나, 같은 가격에 만족도가 높은 쪽은 아무래도 화이트 와인이다. 레드 와인은 넣어두자.
생각해 보니 나는 이탈리아의 비교적 소박한 화이트 와인 중에서, 향이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고 산미와 미네랄감, 과실향의 경계가 또렷한 쪽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커피에서도 비슷한 것 같다.
향이 강한 커피를 좋아한다. 그러나,
커피에서도 향에 풍덩 담가버리는 와인 같은 쪽은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흠.
배워가다 보면
나의 취향을 정확하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알면 선호하는 커피를 가장 좋은 방식으로 내려 마실 수 있다.
나의 커피 취향을 찾아서.
오늘도 계속된다.
사족
주문한 드리퍼가 안 온다.
스테인리스 필터로 원두를 드립 하기는 좀 미안하다.
택배를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크리스마스 새벽처럼.
오늘은 브루잉 대신,
얼음이 찰랑거리는 레몬물을 마시고 있다.
레몬 1개 + 갈아놓은 생강 + 얼음 한가득 + 시럽이나 설탕 없음.
흠. 레몬물에 넣을 적당한 허브를 키우고 싶다. 아직 아이스 아이비 화분도 도착을 안했다. 당분간 참아보자.